"내년 3월까지 세부적 실행계획 담은 로드맵 완료"
지난 10월 26일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가 공식 출범했다.
탄녹위는 앞으로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추진전략을 심의하고 이를 토대로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 감축수단별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이행 로드맵을 수립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탄녹위가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내용은 실현가능성이 높은 이행로드맵을 수립하는 것과 이해관계자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이다. 관성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아닌 사회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염두에 두고 연도별 감축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한편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어갈 녹색기술 100선을 선정하고, 앞으로 이를 구체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 4대 전략과 12대 추진과제를 주도할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민간위원장을 맡은 김상협(59) 카이스트 부총장을 만나 앞으로 탄녹위의 방향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기후변화는 인내자본···자본주의 대전환이다"
우리는 지금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주주자본주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가다. 단기적인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주주자본주의만 생각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는 없었을 것이다. 길게 보고 투자한 오너경영의 성과라는 것이 역설적이다.
기후변화 대응도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하는 페이션트 캐피탈 즉 '인내자본'이다. 주주자본주의처럼 단기적 업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는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시스템까지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전환이고, 문명의 변화다.
대전환은 위기이자 기회다. 위기를 뜻하는 '리스크'(risk)는 암초라는 뜻의 포르투칼어 'risicare'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에는 역경을 뛰어넘어 도전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리스크를 성장의 기회로 삼지않을 도리가 없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자본가로서 탄소중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시멘트, 그린스틸, 그린푸드 등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엄청난 투자의 기회로 바라보면서 지금 전세계 ESG를 이끌고 있다. 블랙록에서 녹색투자를 총괄했던 브라이언 디스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고 있고,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도 블랙록 출신이다. 기후특사로 임명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정멤버다. 이는 미국이 기후변화를 환경문제를 넘어 경제와 안보 즉 '돈과 권력'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코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극복하고 지도에 없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세계 최대 풍력회사인 덴마크의 베스타스(Vestas)가 탄생한 배경에도 오일쇼크가 있었다. 당시 덴마크는 중동하고 관계가 안좋아서 오일 수급이 거의 끊길 위기에 처하자 에너지 절약운동과 함께 대체에너지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계적인 풍력 강국이 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 성장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도 기후위기를 성장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시절에 배터리에 엄청나게 투자한 덕분에 오늘날 한국산 배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것처럼, 우리는 지금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녹색기술을 찾아내야 한다.
탄소중립위원회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새로 출범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탄소중립만 목표로 한다면 포스코 공장 4곳만 가동중단시키면 12%를 감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탄소중립에는 '성장' 키워드가 없기 때문에 녹색성장과 합친 것이다. 일본에서 지난해 탄소중립하면서 내놓은 것이 '녹색성장보고서'이고, 2015년 파리기후정상회담 직전에 만든 법이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전환법이다.
탄녹위는 새로운 성장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탄녹위는 핵심 키워드로 'ROI'(Responsibility, Order, Innovation)를 내걸고 있다.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임(R)'있게 추진해야 하고, 예측가능하도록 '질서있는 전환'(O)을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I)'이다.
과거에 반도체를 새로운 먹거리로 찾아냈듯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녹색기술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솔직히 반도체는 정부가 찾아낸 것이 아니잖나. 그래서 새로운 먹거리 발굴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면 정부가 뒷받침해주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민간주도 혁신경제다.
◇"탄소중립···민간과 지방정부가 중심축"
탄녹위는 2023년 3월까지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이행'(NDC) 로드맵을 부문별·연도별 실행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굉장히 어렵고 중요한 일인데 시간은 촉박하다. 실행가능성 높은 로드맵을 수립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의견을 듣고 있다. 각계각층과 소통없이 로드맵을 수립하면 자칫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기술혁신은 민간주도로 이뤄져야 한다. 2020년 국내 탄소중립 관련 연구개발(R&D) 규모는 약 8조8000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82%가 민간에서 투자했다. 정부도 최근 3년간 관련 예산을 연평균 13.3% 늘리고 있지만 민간에서 에너지 수요관리와 에너지 저장,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이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새 정부는 민간 주도로 임무중심 탄소중립 기술이 발굴되도록 판을 짤 것이다. 지난 10월에 탄소중립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녹색기술 100선'을 발표한 바 있다. 2030 NDC,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분야별 민간 전문가 의견을 수렴, 탄소감축 기여도, 탄소감축 비용효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 중점 기술 분야를 선별해 선정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을 좀더 구체화하고 더욱 집중할 분야를 찾는 일만 남아있다. 기획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임무 중심의 로드맵을 수립할 것이다. 민간협의체 구성 등 탄소중립 연구개발 전주기에 걸쳐 민간의 역할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탄소중립 정책은 중앙정부가 수립하지만 실질적인 이행주체는 지방정부다. 경제와 사회, 생활의 변화가 실제로 이뤄지는 공간이 지자체 단위다. 내가 제주도에서 '카본프리'를 몇 년간 실행해보니, 전력망을 보강하고 백업시스템을 갖추는 등 인프라 구축은 모두 지방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더라. 지역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체계를 구축해 상향식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도 설치해야 한다. 현재 4대 광역시가 위원회를 설치했고 연말까지 10곳이 더 설치할 예정이다. 또 지방마다 탄소중립지원센터도 마련해야 한다. 이 센터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고 중앙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17개 광역시는 지원센터 지정을 완료했다. 2027년까지 센터를 100개로 늘릴 예정이다.
◇ "2040년 해상풍력 비중 더 커진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5%다. 결코 높지 않다. 이 비중을 2030년까지 21.5%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 목표다. 지난 정부에 비해 비중이 하향 조정됐지만 합리적이고 실천가능한 범위에서 확대하기 위한 차원이다. 지난 4년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연간 1%포인트(p) 증가했지만 2030년까지 연간 1.6%p씩 늘리는 수준이다. 2036년까지는 30%초반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탄녹위는 RE100에 참여하는 국내기업들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앞으로 신재생 발전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3월까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NDC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믹스 등 관련내용을 좀더 세밀하게 검토해볼 예정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입지조건이 좋은 편이 아니다. 수력과 바이오 자원도 제한적이고, 주민들의 반발도 크다. 그러나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여건을 고려하면 '해상풍력'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는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이 87대 13이다. 태양광은 소자본이 이익실현을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다. 그만큼 비리도 많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해상풍력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을 60대40으로 맞추고, 2040년에 이르면 태양광보다 풍력비중이 높도록 해야 한다. 풍력은 강한 바람보다 일정하게 부는 바람이 중요하다. 베스타스도 한국을 부유식 해상풍력의 최대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해상풍력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아시아 등 다른 나라에도 진출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국제협력의 여지가 굉장히 많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탄소중립하겠다고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했다가는 큰일난다.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은 일찍이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터지면서 원전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러시아에 의존한 채 탈원전을 한 결과다. 미국도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연구중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무탄소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원전은 무탄소에너지원의 양대 기둥이다. 탄소중립 달성에 있어 핵심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좌파에너지, 원전은 우파에너지라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20% 감축 목표"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다소비 국가다.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량과 폐기량은 더 증가했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석유다. 따라서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순환경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독일과 영국 등은 이미 플라스틱세를 도입해 탈플라스틱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플라스틱을 생산할 때 재생원료 30%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독일은 일회용 페트병을 생산할 때 재생원료 25%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은 플라스틱 포장세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2021년보다 2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전 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했다. 재생원료 사용 목표율을 2023년 2%에서 2030년 30%로 점차 늘리고, 포장기준과 음식배달용기 두께, 재질기준 등을 마련하고, 일회용품 사용규제를 강화하고, 다회용기 사용확대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플라스틱 규제가 '폐기'나 '재활용'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대책은 원료·생산, 제품·포장 설계, 소비 등 전 단계에서 규제 강화와 인센티브 등을 통해 폐플라스틱 발생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카본프리만큼 '웨이스트프리'도 중요하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걱정이 없는 곳이 되도록, 앞으로 탄녹위는 탈플라스틱 대책에 대한 이행상황을 철저히 점검하고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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