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호수 찾아 문앞까지 배달
연말 한 호텔 앞 로비. 입실 수속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투숙객들. 진열장을 둘러보다 널부러진 여행가방 사이로 뛰노는 아이들. 이 어수선한 북새통을 한 신입 직원이 물 흐르듯 멈춤 없이 지나간다. 배달음식과 각종 객실용품을 잔뜩 이고도 단숨에 엘리베이터 앞으로 직행한 그가 땀 한 방울 흘리는 법 없이 말끔한 얼굴로 남긴 한마디. "다음에 타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주제넘지 않은 침착함과 한결같은 공손함으로 무장한 그는 바로 '자율주행 배송로봇'이다.
13일 현대자동차그룹은 호텔과 주상복합단지에서 로봇을 활용한 자율주행 배송 서비스 실증사업을 시작했다. 미래 자동차 핵심 노하우인 전동화·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너머의 모빌리티 분야까지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해당 사업은 경기도 수원의 주상복합단지 '광교 앨리웨이'와 경기도 화성시 소재 '롤링힐스 호텔'에서 진행된다. 이는 지난 2021년 3월 우아한형제들과 배송·물류로봇 연구개발 목적으로 체결한 업무협약의 일환이다. 배송 서비스에 투입된 로봇은 지난 1월 현대차그룹이 국제소비자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공개한 플러그 앤 드라이브 모듈(Plug & Drive Module·PnD모듈)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배송로봇은 구동을 담당하는 하부 PnD모듈 위에 저장 공간이 결합된 형태다. 상단 저장 공간에 필요한 물건을 두고, 장착된 화면을 통해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PnD모듈에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돼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화된 경로를 찾아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장애물 앞에서 멈추지 않고, 자연스레 회피할 수 있어 기존 서비스 로봇 대비 빠르고 안전한 배송이 가능하다.
일례로 '광교 앨리웨이'에서의 서비스는 고객이 주상복합단지와 연결된 쇼핑센터에서 주문한 음식을 로봇이 정확한 동·호수를 찾아 각 세대 현관 앞까지 배달하는 D2D(Door to Door) 방식이다. 배송로봇은 무선통신으로 공동현관문을 열어 아파트 내부에 진입하고, 엘리베이터 관제 시스템과 연동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뒤 주문 세대로 배송한다.
이밖에도 '롤링힐스 호텔'에서 투숙객들은 별도의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 챗봇을 통해 간단한 식음료와 객실용품을 주문할 수 있다. 주문한 물건이나 음식을 로봇이 직접 투숙객의 방문 앞까지 배달하고, 실시간 배송조회도 가능하다.
배송로봇은 문 열림을 감지하고 사람을 인식해 고객이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자동으로 저장 공간을 개방하고, 서비스 대상 고객을 구분해 적절한 화면과 음성을 송출한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와 연동된 신호로 사람의 도움 없이 층간 이동이 가능하며, 엘리베이터 안의 인원을 파악해 탑승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판단도 가능하다.
최근 물류·유통업계는 로봇이 실내·외를 오가며 사람의 도움 없이 현관문 앞까지 배송하는 '라스트마일'(Last Mile: 소비자에게 가는 최종 단계) 배송에 주목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체 상품 운송 과정에서 드는 비용의 53%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앞까지 가는 마지막 단계 '라스트마일'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라스트마일 배송이 유통 효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실증사업 결과를 토대로 서비스를 보완하여 운영 로봇 대수와 시간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로보틱랩스 현동진 상무는 "공용화가 가능한 PnD모듈을 기반으로 개발된 배송로봇은 부드러운 회피가 가능한 자율주행이 적용돼 복잡한 환경에서도 더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다"며 "이번 실증사업을 통해 대형 리조트와 같이 배송 서비스가 필요한 다양한 공간으로 사업을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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