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지구] 플라스틱 60%가 PE·PP인데...재생원료 기준이 없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4-06-26 0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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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13편] 식품용기부터 의료용품까지 광범위
품목 대신 재질별 수거해야...유럽은 '공정 승인' 확대
한번 생산되면 사라지는데 500년 이상 걸리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대기와 토양, 강과 바다. 심지어 남극과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국제적인 플라스틱 규제가 마련되려는 시점을 맞아, 플라스틱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고 아울러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기업을 연속기획 '플라스틱 지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근 선진 각국에서는 페트(PET) 이외의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재질에 대해서도 재생원료 의무비중을 확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재생원료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수출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PE와 PP의 국내 수요는 지난 2023년 기준 388만톤으로, 전체 합성수지 수요의 절반을 훌쩍 넘는 61%를 차지했다. PE와 PP는 저렴하고 성형이 쉬운데다, 장기간 체내에 노출되지 않는 한 인체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달용기, 식품포장재, 화장품 용기, 마스크 등 음식이나 인체에 직접 닿는 제품들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재에 대한 국내 재생원료 기준은 아직 없다. 환경부는 지난 2022년 2월 페트에 대한 '식품용기 사용 재생원료 기준'을 고시한 이후 아직 PE와 PP 재질에 대한 사용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26일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식품용기 재생원료 기준은 페트만 있다"면서 "PE나 PP로 재생원료 기준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아직 진행중인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페트 재생원료 기준을 고시한 이후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페트 재생원료가 약 3400톤으로 늘어난 것처럼, 앞으로 재생원료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PE와 PP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PE와 PP 재생원료 기준을 마련하기 앞서 선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용기에 PE와 PP 재생원료가 사용되려면 페트처럼 별도로 수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PE와 PP가 지금처럼 다른 재질의 플라스틱들과 뒤섞여 혼합배출되면 오염도가 높아져 재생원료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혼합배출되는 PE와 PP는 대부분 다운그레이드되는 일회용 재활용에 그치거나 재활용이 어려운 것들은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 포장비닐로 널리 쓰이는 PE나 배달용기로 많이 사용되는 PP는 혼합배출되는 과정에서 음식물 오염이 심하다"며 "오염된 폐플라스틱을 물리적 재활용하려면 분류작업비와 세척비가 더 많이 나와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석유화학업계는 PE와 PP를 화학적 재활용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물론 화학적 재활용도 깨끗한 폐플라스틱이 투입돼야 불순물을 걸러내는 필터값을 아낄 수 있고, 별도 첨가물 없이도 물성이 유지돼 고품질 재생원료를 생산하기 쉽다. 하지만 혼합배출되는 현실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PE·PP를 별도로 수거해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정책연구센터 한 관계자는 "음료용 페트병은 제품마다 페트 재질이 거의 유사하지만 PE와 PP는 용처에 따라 재질이 다르다"면서 "담는 음식의 종류, 온도 차이 등에 따라 밀도가 제각각이고, 색소도 들어가기 때문에 용도에 맞게 분리하지 않으면 고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AI) 선별기로 제품마다 QR코드로 밀도 정보를 담아 분류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실제 접목이 어려워 유럽에서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언제까지 미루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한 재생원료 사용비중 의무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유럽의회가 최종 승인한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PPWR)에 따르면 페트 이외 재질의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해서도 2030년까지 최종 소비자가 사용 후에 버린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만든 재생원료 투입 비중을 10%, 2040년에는 25%로 확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PE와 PP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마켓앤마켓은 PP 재생원료 시장이 2022~2030년 연평균 5.8%씩 135억달러(약 1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머진리서치는 PE 재생원료 시장이 2023~2032년 연평균 11.4%씩 늘어나 389억달러(약 54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U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PPWR 기준에 맞춰야 한다. EU는 이미 식품과 접촉하는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원자재 시장분석업체인 ICIS에 따르면 지난 2021년 EU의 식품용기 등급에 맞춰 물리적 재활용 방식으로 생산된 고품질 PE·PP 재생원료는 80만톤에 달했다. 370만여톤의 페트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량까지 합치면 EU의 재생원료 생산 비중은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 4500만톤의 10%에 육박한다. EU는 PE·PP 폐기물의 양과 품질을 높여 고품질 재생원료 비중을 더 빠르게 확대할 수 있도록 EU 권역내 공통의 수집 및 분류체계 도입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품질 재생원료를 겨우 3400톤 생산했다. 그것도 페트만 그렇다. PE·PP 재생원료는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현재로서는 생산 자체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당장 PE와 PP에 대한 재생원료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도 EU처럼 '폐쇄루프(Closed Loop) 재활용 공정 승인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폐쇄루프는 외부 오염물질의 유입없이 폐쇄된 공정을 통해 제품을 계속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되면, 재질 대신 공정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EU에서는 PE 공정 8건, PP 공정 11건이 이 승인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폐쇄루프 재활용 공정 승인제도'를 시행하게 된다면, 수명을 다한 PE·PP 재질의 다회용기부터 재생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회용컵은 QR코드가 부착돼 있어 사물인터넷(IoT)으로 실시간 관리하고 수거하기도 쉽다. 다회용기업체 한 관계자는 "반복회수가 한계에 다다른 다회용기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용도를 다한 다회용기 재활용 방도가 없어 마냥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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