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ESG 공시' 이대로는 안된다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6-03-03 1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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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동안 말만 무성했던 지속가능성(ESG) 공시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5일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ESG 공시 제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지속돼온 어정쩡한 상태를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국제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급적 범위를 좁히고 속도는 느리게 가는 '안전 운항'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ESG 공시 방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잡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안을 근간으로 삼았다. 공시를 먼저 시작하는 대상은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기업(58개)으로 그 시기는 2028년이다. 다음 해인 2029년에는 대상 기업이 10조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공시 시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다소 늦은 편이다. 다음으로 관심의 초점인 가치사슬의 탄소배출량인 스코프3 공시에 대해서는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또 기업 부담이 적은 거래소 공시부터 시작하고 추후 법정 공시 전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공시 범위의 경우 기후공시부터 의무화하되 환경(E)의 나머지 부문과 사회(S)와 지배구조(G) 공시는 기업 자율에 맡기고 나중에 국제기준이 마련되면 재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전체적으로 기업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7년~2030년 이후로 미루고 스코프3 공시에 대해서는 반대 또는 유예 의견을 제시해왔다. 금융위원회는 3월까지 더 의견을 모은 다음, 4월 중 공시 방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가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에 참고했으면 하는 이슈들에 대해 정리해본다. 첫째, 당초 자산 2조원 이상으로 잡혔던 첫 공시 기업 기준이 왜 30조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됐는지에 대해 설명이 거의 없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이미 225개 기업이 ESG 공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대상을 굳이 58개로 좁힐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는 국제적 흐름과도 동떨어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를 보면 시가총액 기준으로 91%의 기업이 공시를 하고 있고, 반(反) ESG 흐름이 강한 미국에서조차 S&P500 기업 중 공시를 안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한 정도이다(G&A). 더구나 모든 국내 공공기관에 ESG 경영공시가 의무화돼 있는 상황과도 상충된다. 이렇게 볼 때 공시 시작 기준을 30조원에서 10조원~20조원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도 검토해볼만 하다. ESG 공시는 기업의 대응을 앞당기기 위해 속도를 재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둘째, 스코프3 공시를 3년 유예한 것은 1년 정도를 허용한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해봐도 길다. 3년 유예는 가치사슬 상의 탄소배출 측정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제도와 무관하게 자사의 ESG 경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협력업체들에 탄소배출을 집계하고 더 나아가 감축해갈 것을 압박하고 있고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산업별로 스코프3 공시 비율이 55~88%에 이르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대응을 재촉하기 위해 유예기간을 2년 정도로 줄일 필요가 있다. 공시 대상도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상의 15개 항목이 모두 대상인지 부분적 공시도 허용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둬야 한다.

셋째, 기후공시부터 시작하는 것은 합리적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부분적으로 공시 대상에 추가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본다. 이와 함께 기후 외의 항목으로 ESG 공시 범위를 확대해가는 속도도 너무 늦춰서는 안된다고 본다. 2029년부터 유럽연합(EU)에서 역외기업들이 공시하는 대상에 ESG 전반의 항목이 포함돼 있는 점, 공공기관 공시 또한 ESG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점, 올해부터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가 모든 코스피 상장기업에 확대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기업 부담이 적은 거래소 공시부터 시작해 법정 공시로 전환하는 수순은 ESG 공시의 연착륙이란 측면에서 일견 수긍이 간다. 문제는 공시 내용이 잘못됐을 때 거래소 공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그린워싱 또는 ESG 워싱 우려에 대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린워싱에 대해서는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방안이 나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자 보호와 정보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워싱을 규제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대세인 ESG 공시에 잘 적응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여기에는 교육과 컨설팅 등은 물론 EU처럼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용 자율공시기준을 제시해주는 것도 포함되면 좋을 듯하다.

이제 국내에서도 ESG공시 시대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 ESG 같은 비재무 정보를 재무 보고와 같은 수준으로 공시해야 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ESG가 지속가능성 부서의 업무였지만 이제는 CFO까지 간여하는 전사적 통제가 필요하게 됐다. 특히 자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데이터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확보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해졌다. 이렇듯 ESG공시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이사회의 감독과 내부 통제가 강화돼야 한다. 아울러 데이터 수집 및 관리에 있어서도 현재는 수작업으로 인한 오류 가능성, 불명확한 역할 분담 등의 문제가 있는 만큼 이를 시스템화하고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안도 도입돼야 한다.

ESG 공시는 어떤 기업이 녹색기업 또는 친ESG 기업인지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 결과에 따라 투자자금이 리스크가 작은 ESG 친화적 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시장의 새로운 순환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ESG 공시는 결국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선순환을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규제를 추종하는 소극적 대응보다 이번 기회를 ESG 경영을 체질화하는 계기로 선용하는 능동적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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