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토닥토닥] 오일장 책 나들이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4-10-28 11:04:09
  • -
  • +
  • 인쇄

나는 며칠 전부터 책 나들이를 시작했다. 아침 산책길인 호수를 걷다보면 책 읽기 좋은 한적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물기 먹은 공기를 마시고 춤추는 오리들이 보이는 곳을 골라 앉는다. 책을 펼치고 독서 삼매경에 들어가기 전, 호수를 한 번 더 본다. 실룩거리는 오리의 몸짓이 지난 가을날 아침 '오일장 책 나들이' 간다고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오버랩된다.

5학년 아이들이 그림 동화책을 들고 지나간다.

"효서야, 정현아, 너희들 그림책 읽는 거야?"
"네, 선생님. '오일장 책 나들이' 가요."
"오일장 책 나들이? 그게 뭐야?"

"5학년 책동아리가 1학년 동생들에게 책 읽어주는 걸 오일장 책 나들이라고 불러요."
"와, 그 이름 정말 멋지다. 하여튼 5학년은 제목 잘 만드는 킹 들이야."
"모르셨어요? 우리 선생님이 모르시는 것도 다 있네요."

아이들의 스스럼 없는 농담에서 나의 관심에 대한 고마움과 친밀함이 느껴진다.

"그럼! 난 너희에게 관심 많아. 너희들은 호기심 천국이야. 근데 오늘 읽어줄 책은 뭐야?"
"『프레드릭』이에요."
"그 책 내용은 1학년에게 어렵지 않을까? 책은 어떻게 선정하는 거야?"

우리 학교에는 다양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서도 '선배가 후배에게 책 읽어주기'는 인기가 높다. 이를 '오일장 책 나들이'라고 부른다. 5학년의 '오'와 1학년의 '일'을 붙여 만든 기발한 이름이다.

효서와 정현이가 1학년이었을 때, 5학년 선배들이 책을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수선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서와 정현이는 그 시간이 좋아졌다. 선배가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책 읽어주기가 끝나는 날에는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경험과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효서와 현정이는 5학년이 되었을 때 책 읽어주기 동아리를 선택했다.

5학년 아이들은 1학년 후배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동아리를 만든다. 서너 명씩 한 팀을 이루고 주 1회 참여한다. 5학년 팀원들은 후배에게 책을 읽어줄 일정을 확인하고 미리 1학년 선생님들과 읽을 책을 선정한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목소리를 내어 책 읽는 연습을 하는 것은 필수이다. 특히 1학년 후배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책을 깊이 읽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1학년 후배를 만나 책을 읽어준다.

오일장 책 나들이는 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독서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선후배가 교육과정을 공유하는 셈이다. 선배들을 만나면서 1학년 아이들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된다. 반면 5학년 아이들은 책을 좀 더 깊이 읽고 내용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책을 읽도록 서로를 이어주는 일은 학교가 할 일이다. 나머지는 아이들끼리 잘 진행한다.

함께 책을 읽다가 친해지면 선배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후배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시체 놀이, 멍 때리기, 큐브 놀이 등을 함께 한다. 1학년 아이들은 카드에 소감을 적어 선배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카드에는 이런 단어들이 담겨 있다. '배움, 감사,감동, 진심, 재미, 기여, 기쁘다, 사랑, 도전, 놀이, 가슴 뭉클하다, 행복하다.' 1학년 후배들의 읽기 경험과 선배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요즘 나의 책 나들이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글/ 김향숙 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hanqqi321@naver.com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과기정통부 "쿠팡 전자서명키 악용...공격기간 6~11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전자서명키가 악용돼 발생했으며, 지난 6월 24일~11월 8일까지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

李대통령, 쿠팡에 '과징금 강화와 징벌적손배제' 주문

쿠팡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국내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이재명 대통령이 2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건에 대해 "사고원

이미 5000억 현금화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책임경영 기피 '도마'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1년전 쿠팡 주식 5000억언어치를 현금화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후보 4명으로 좁혀졌다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차기 회장 최종 압축 후보군으로 임종룡 회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및 외부 후보 2명 등 총 4명을 선정했다고 2일

[최남수의 ESG풍향계] 조정기간 거친 ESG...내년 향방은?

올 한 해 ESG는 제도적으로 조정기간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월에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고 SEC(증

'개인정보 유출' 쿠팡 수천억 과징금 맞나...SKT 사례보니

쿠팡이 3370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되는 사고로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게 생겼다.2023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법 위

기후/환경

+

올해 모기 개체수 28%나 줄었다...이유는?

올해 우리나라 모기 개체수가 지난해에 비해 28%나 줄었다. 원인은 모기도 견디기 힘들만큼 폭염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질병관리청은 모기 발생시

동남아 홍수·산사태로 1100여명 희생...원인은 '기후변화·난개발'

우기에 접어든 동남아시아가 역대급 폭우로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로 현재까지 1100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앞으로 희생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2

英, 모잠비크 가스전 11.5억달러 지원 철회...기후위기 위험 때문?

영국이 11억5000만달러, 우리돈 약 1조6876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모잠비크 천연가스 프로젝트 지원금을 철회했다. 1일(현지시간) 피터 카일 영국 기업부

남극 오존층 구멍이 작아지고 있다...6년來 최저 크기

남극 오존층 구멍이 최근 6년 내에 가장 작게 형성됐다.1일(현지시간) 유럽의 지구관측프로그램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올해 남극 오존

[날씨] 칼바람에 한반도 '꽁꽁'...3일 체감온도 -12℃로 '뚝'

2일 한반도로 유입된 북서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지면서 최강한파가 찾아오겠다.이날 아침 중국 북부에서 확장된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탄소제도 공유하는 국제연합 출범..."각국 운영경험 교류협력 기구"

전세계 규제기반 탄소시장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연합체가 공식 출범했다.1일(현지시간) 미국 E&E뉴스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