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속가능항공연료(SAF) 확대 정책에 대한 항공업계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선언문을 직접 작성해서 이를 업계 명의로 제출하도록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선언문은 이른바 '르부르제 선언문'으로, 오는 17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파리 에어쇼' 개막과 함께 유럽연합 교통담당 집행위원 아포스톨로스 치치코스타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선언문 내용은 SAF의 생산 및 사용 확대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 제안과 ReFuelEU 법안 지지 입장이 포함돼 있다. SAF는 화석연료를 대체해 항공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현재 유럽에서는 관련 의무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 중이다.
하지만 이 선언문이 유럽연합 교통총국(DG MOVE)에서 초안을 작성한 후, 항공사 로비단체들에게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복수의 업계 로비스트들이 "이 문서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DG MOVE가 먼저 작성한 것"이라며 "공식적으로는 산업계가 낸 문서처럼 보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위원회가 주도한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증언했다.
또다른 항공사 관계자도 "몇 주 전에 DG MOVE로부터 선언문 초안을 받았고, 이후 업계 입장을 반영해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문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섞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상태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정된 선언문에는 업계가 요구해온 SAF 교역 시스템(book-and-claim) 도입 필요성이 포함돼 있지만, 핵심 내용은 여전히 집행위의 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사안은 SAF 정책을 둘러싼 항공업계와 집행위간의 갈등이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SAF는 기존 화석연료 대비 가격이 약 3배 높고, 공급업체의 별도 수수료까지 붙어서 항공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유럽 항공사 CEO들이 참석한 정상회의에서는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KLM, 라이언에어, IAG 등 주요 항공사 대표들이 SAF 확대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며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선언문은 이와 관련해 SAF 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정 수단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집행위와 회원국이 함께 e-SAF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수익 보장 수단(revenue certainty instrument)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차액계약(CfD), 수요 집계(demand aggregation), 양방향 경매(double-sided auction) 등을 통해 생산과 수요 간 불일치를 조기에 해소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해당 선언문이 산업계의 자발적 제안이 아닌 집행위 주도의 '기획된 지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책 추진 방식에 대한 신뢰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집행위원회는 자동차 산업에서 벌어진 규제 반발 사례를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항공업계가 정책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집행위원회는 이같은 논란에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문서를 전달받은 로비단체들은 최종적으로 선언문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혀, 산업계 입장을 가장한 정책지지 선언이라는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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