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너에게 고백한다 "고맙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5-07-04 15:07:03
  • -
  • +
  • 인쇄
살아있음, 존재 자체가 고마운 감사의 각성
이유 없이 감사한 마음이 '감사의 재발견'


언제부터 잊고 살았을까.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의 고백을.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입술에서만 맴돌았고, 감사한 때가 있기도 했지만 늘 그러진 못했다. 실상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그리 감사하지 않았다.

#.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배가 말했다. "모든 게 감사해요." 그녀는 지난 2월, 뇌혈관 꽈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냥 간단한 수술인가 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 수술은 어려웠고 수술 시간이 길어졌다. 수술 이후도 만만치 않았는데, 회복은 느렸고 모든 게 불편했다. 어지럼증, 메스꺼움, 토악질, 특히 화장실을 이용할 때 무척 주의해야 했단다.

완치되고 일상이 완전히 회복되자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아침 햇살이 고마웠다. 밥을 넘기는 일이 경이롭고, 무사히 화장실을 다녀오는 게 축복으로 느껴졌다.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일이 감미로운 사건이 되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도 감사했다.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해요.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져요."

그녀의 고백은 미국 작가 프레드릭 비크너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은혜란 이런 뜻이다 ; 자, 너의 삶이다. 너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존재하고 있다." 살아있다는 그 자체, 삶이 내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 삶의 모든 순간이 선물처럼 주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이 은총과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
작년 12월 3일, 계엄내란이 터졌다. 그러자 나의 일상이 무너졌다. 글 작업, 일정과 계획들, 모임과 비즈니스들이 몽땅 멈췄다. 나는 책상을 벗어나 거리로 나갔고 펜 대신 깃발을 들었다. 문학단상을 쓴다는 것이 한가하게 느껴졌다. 대신 성명서를 썼다. 한 작가와 준비 중이던 인문학 살롱 오픈도 무기한 연기했다. 살기 위해서였다.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거리에서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있었다. 프란츠 파농이 말했던가. "사랑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투쟁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든다."

탄핵이 가결되는 그 순간 우리는 함성을 질렀고, 난 송현 공터에서 춤을 추었다. 국민 후보 이재명이 당선되고 국민주권정부가 탄생했다. 그 순간의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서사와 국민들의 서사, 이재명의 서사와 우리 정치 서사가 결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젖혀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열고 책을 읽고, 보고픈 이들을 만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미소 지으며 뉴스를 듣는 순간이 감사하고, 다시 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이런 글을 쓰는 상황 자체가 감사하다. 누군가를 만나 "잘 지냈어? 어떻게 지내고 있니?"라고 묻고 잡담을 나누는 것이 고맙다. 내 감각이 달라졌다. 그간 가장 평범했던 것들이 가장 고귀한 것이 되어 내게 선물로 왔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고맙다. 무엇보다도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할 수 있어서. 혹 나에게 질문을 허용하신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에 감사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요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고맙다. 그저 함께 만나고 동행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다. 내가 감사를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도 고맙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노사 칸막이 없는 문화"…LG CNS '노사문화 우수기업'에 선정

AX전문기업 LG CNS가 상호 존중과 대화, 협력을 바탕으로 한 모범적 노사문화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2025년 노사문화 우수기

KB국민은행, 금융취약계층 위한 '도움드림창구' 운영한다

KB국민은행이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도움드림창구'를 새롭게 운영한다.KB국민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은 물론 7세 이하 자녀를 동반한 보호자

기아, 오토랜드화성 사업장에 PPA 재생에너지 첫 도입

기아가 국내 사업장 중 처음으로 오토랜드화성에 재생에너지 전력을 도입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재생에너지 전력은 지난 2월 한국남동발전과 체결한

탄소중립 핵심목표 미루더니...英 HSBC도 '넷제로연합' 탈퇴

영국계 글로벌 금융사 HSBC가 은행권의 기후목표 연합체인 '넷제로은행연합(NZBA)'에서 탈퇴한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잇

[친환경 기업] 샴푸바의 시작 '러쉬'..."환경파괴해 수확한 원료 안쓰죠"

"러쉬의 모든 활동은 브랜드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이다."러쉬코리아의 박원정 윤리이사(에틱스 디렉터)의 말이다. 에틱스 디렉터는 세

"낡은 옷, 포인트로 바꾸세요"...현대百 '바이백' 서비스 시행

현대백화점이 중고패션 보상프로그램 '바이백(buy back)' 서비스를 도입한다. 가지고 있는 의류를 되팔면 해당 상품 중고시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대백

기후/환경

+

플라스틱 국제협약 20일 남았는데...플뿌리연대 '생산감축' 촉구

국제 플라스틱 협약 최종 협상이 8월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외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지구가 말라가고 있다...전세계 곳곳 최악의 '가뭄' 현상

전세계 곳곳에서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최근 서부 유럽과 멕시코에서 가뭄과 폭염으로 물부족에 시달린 데 이어 영국과 레바논에서도 가뭄이 마치

베트남 하노이 '극약처방'...내년부터 560만대 내연 오토바이 퇴출

하루 50만대에 달하는 오토바이가 이동하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가 내년부터 화석연료를 쓰는 오토바이와 모터 자전거를 퇴출한다.15일(현지시간) 베

올 상반기 中 자연재해로 10조원 경제손실..."7말8초 홍수 위험"

중국은 올 상반기동안 자연재해로 2500만명이 피해를 입고 주택 3만여채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약 541억1000만위안(약 10조원)이 넘는 경제손실이 발생했다

[날씨] 다시 시작된 장마?...수도권 '최대 200㎜' 폭우

16일부터 오는 18일까지 전국에 폭우가 내리겠다.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돼 저지대 침수 및 토사 유출, 산사태 및 낙석 등에 주의해야

감사원 "온실가스 감축 안하면 2080년 폭염사망 30배...정부, 대응해야"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기후보건 영향평가'가 미래 예측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왔다. 질병관리청이 예산 부족 등을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