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공개하라고?"...EU '디지털제품여권' 시행 앞두고 '고전'

장다해 기자 / 기사승인 : 2025-07-04 18:24:57
  • -
  • +
  • 인쇄

유럽연합(EU)은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배터리, 전자제품, 섬유, 철강제품에 대해 디지털제품여권(DPP)을 도입할 예정이다. 디지털제품여권(DPP)은 제품의 생애 전과정에 대한 공급망 정보, 재활용 가능성, 탄소배출량 등을 공개하는 것이다. DPP는 지속가능성 담보를 위해 도입되고 있지만 관련기업들은 복잡한 공급망과 데이터 관리위험, 가격상승 등을 우려해 도입을 꺼리고 있다. 실제로 EU 당국은 DPP 적용과정에서 걸림돌이 많이 생기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기구(TNO)의 시우르트 롱헌 DPP 코디네이터는 지난 3일 서울 마곡 코엑스에서 열린 '한-EU 에코디자인 협력 포럼'에서 "DPP는 순환경제가 필요한 당연한 흐름을 뒷받침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산업에서 발생하는 자원 낭비와 폐기물을 줄여야 하는데 롱헌 코디네이터는 "DPP가 이러한 지속가능성 측면뿐 아니라 '전략적 자립성' 관점에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은 자원과 재료를 수입하고 폐기물을 수출하는 상황"이라며 "유럽이 해외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2021년 수에즈 운하 컨테이너선이 좌초해 전세계 물류가 멈춘 것처럼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시장 내에서 재활용 및 재제조를 통해 생산부터 폐기물 처리까지 자급자족해야 무역전쟁 등 외부 충격에 대한 공급망 회복력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공급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DPP 도입 목적이다. 더불어 위험을 낮추고 순환경제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력이다.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장도 패널토론에서 "DPP 정책을 규제로 보지 않는다"며 "산업육성정책으로 바라보면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집중해야 대규모 산업의 참여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제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점은 기업에게 부담이다. 복잡한 공급망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IP)이나 기업경쟁력과 관련해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꺼려진다.

이에 대해 시우르트 롱헌 DPP 코디네이터는 "공개된 정보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에 대해 명확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정보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정보는 공급업체에 대한 것"이라며 "공급업체의 탄소배출량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공급 계약이나 구매 조건 협상에서 탄소배출량과 같은 정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정보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관리와 정보체계 전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오진형 LG전자 책임연구원은 "기존의 규제는 규제 대응 부서와 제품 개발 부서가 협력하면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이제 자원 효율성을 고려하고 공급망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생기면서 서비스, 영업, 구매, 판매 법인까지 기업 내 다양한 부서의 협업이 중요해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적인 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조직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DPP 도입으로 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유겸 S&S섬유 대표는 패널토론에서 "DPP가 본격 실행되면, 제품의 가격은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충족하기 위한 공급망 개선 비용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DPP가 자리잡으면 공개된 데이터간의 비교가 진행될 것"이라며 "어떤 제품이 더 지속가능한지, 내구성을 갖췄는지를 전달해 소비자들에게 분명한 혜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DPP가 부착된 제품의 가격안정을 위해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듯 세제혜택을 줘야 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디지털제품여권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유럽 섬유의류산업연합 마우로 스칼리아 지속가능경영 국장은 "인센티브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선택이 아니라 의무사항이 되면 미준수로 적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감시 기능이 중요하다"며 "규제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실제로 제재를 받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가능성에 투자한 만큼, 무임승차(프리라이더) 기업들간의 경쟁에서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유겸 S&S섬유 대표는 "세제혜택과 저리금융 등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자원과 비용을 들여 바뀌어야 하는 게 먼저"라며 "그러나 국내의 경우 디지털제품여권 정책 도입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이 낮으면 기업이 투자하고 변화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DPP는 2027년 배터리 산업을 시작으로 전자제품, 섬유 순으로 점차 확대된다. 배터리의 경우 2023년에 DPP 의무조항이 포함된 'EU 배터리 규정'이 정식 발효돼 2027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전자제품, 섬유, 철강 등 다른 산업군은 2026년 법안이 발표되고, 법안 발표 후 실제 이행까지 대략 1년 반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을 예정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배출권거래제, NDC 53% 맞춰 운영"…정부, 산업계 부담 덜어준다

정부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에 대한 산업계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NDC 하한목표인 53%에 맞춰 운영하기로 했다

'젊어지는 삼성전자'...30대 상무·40대 부사장으로 '세대교체'

삼성전자가 지난해보다 24명 많은 161명에 대한 임원승진을 단행했다. 인공지능(AI)와 로봇, 반도체 분야에서 미래기술을 이끌 리더들을 중용했다는 게

진짜 돈이 들어간 '돈방석·돈지갑' 나왔다

진짜 돈이 들어간 '돈방석'이 나왔다. 한국조폐공사는 진짜 돈이 담긴 화폐 굿즈 신제품 돈방석·돈지갑을 출시하고, 지난 23일 오후 2시부터 와디

파리크라상 '사업부문'과 '투자·관리부문'으로 물적분할한다

SPC그룹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이 물적분할을 진행한다.SPC그룹은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에 대해 물적 분할을 결정했다고 24일 밝혔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공사장 오폐수 무단방류로 고발

포스코이앤씨가 오폐수 무단방류 혐의로 광명시로부터 고발당했다.경기도 광명시는 서울~광명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원광명지하차도 터파기 과정에

'온실가스 배출권' 24일부터 증권사에서 주식처럼 거래

24일부터 '온실가스 배출권'을 증권사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지금까지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은 한국거래소를 통해 배출권을 직접

기후/환경

+

탄소배출권 사서 메우자?...배출권 의존기업 탄소감축 '제자리'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확대보다 기업의 직접 감축 노력이 우선이라는 국제보고서가 공개되며 상쇄 전략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25일(현지시간

대한상의 '재생에너지 벤치마킹 연수' 참여기업 모집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재생에너지 활용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재생에너지 벤치마킹 연수' 참여기업을 모집한다고 25일 밝혔다. 연수는 오는 12월 10일~

'한전이 재생에너지 확대 가로막아..."권한집중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국전력공사(한전) 중심의 전력계통 구조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고 있어, 전력망 계획·접속권한을 독립기관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배출권거래제, NDC 53% 맞춰 운영"…정부, 산업계 부담 덜어준다

정부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에 대한 산업계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NDC 하한목표인 53%에 맞춰 운영하기로 했다

[날씨]"마스크 챙기세요"...전국 비·눈에 미세먼지까지 '나쁨'

25일 미세먼지로 서울을 포함한 중부·호남권의 대기질이 나쁘겠다.현재 국외에서 미세먼지가 유입되며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 호남은 미세먼

올겨울 해수온 상승에 덜 춥다...때때로 '한파·폭설'

올겨울은 해수온 상승에 영향을 받아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추위가 덜하겠지만 때때로 강력한 한파와 폭설이 찾아올 수 있겠다.24일 기상청이 발표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