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던지는 니체의 강력한 경종
미사일과 드론이 사막의 밤하늘을 가르고 힘겨루기를 하는 각국의 외교 수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이란의 고대 국가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번 이란 전쟁을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할까? 폐허 아래 묻힌 아이들의 시신과 죽임 당한 사람들의 잔해를 바라보며 눈물 흘릴 것이다. 국가의 괴물성과 전쟁이라는 거짓 제스처에 대해 경고의 말을 쏟아낼 법하다. 아니 어리석은 인류의 망상적 정신에 대해 꾸짖을지도 모른다.
◇ 낙타의 짐으로 허덕이는 국가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우리에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그는 인간 정신의 변화를 세 단계로 설명했다.
"나 이제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는가를" (세 가지 변신에 대하여, 책세상, 정동호 역)
지금 진행 중인 이란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낙타의 단계로 읽힌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역사적 원한, 증오, 생존을 위한 노동, 체제의 생존 논리, 종교적 갈등, 패권 경쟁, 에너지 이해관계, 동맹의 압력 등은 중압의 짐들이다. 미국은 경제적 실리와 중동 질서의 주도권과 동맹의 신뢰를 짊어지고 있고, 이란은 체제 유지와 지역 패권 서사를 유지하려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또한 생존의 기억과 안보적 패권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이 모두가 낙타처럼 짊어져야 하는 역사적 짐들이다.
이런 짐들이 너무 오래 축적되면 그것은 숙명처럼 굳어진다. 짐깨나 질 줄 아는 낙타는 더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달려간다. 낙타는 자신의 강인함과 고된 숙명을 자랑스러워한다.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큰 짐을 감당해내는 자신의 힘을 우쭐해 한다. 언제나 채찍과 같은 자극이 필요하다. 공포, 바로 그것이 낙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 사자의 포효와 삼키고 찢는 전능
그러나 국제정치는 낙타에 머물지 않는다. 곧 사자의 단계로 이동한다. 사자는 자기의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세 가지 변신에 대하여) 전쟁은 우발적 선택이 아니라 오래된 짐을 진 고단함의 필연적 귀결처럼 출현한다. 낙타들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니체가 말하는 사자의 정신은 마침내 굴욕과 나약함을 내던지고 투쟁을 해낸다는 의미와 함께, 거친 투쟁에 매몰돼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내포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사자는 전쟁의 신이다.
오늘 사자의 포효는 먼저 공격적 언어로 나타난다. 그 언어는 군사적이고 죽음을 암시하는 파멸의 공포를 주입하는 식이다. 보복, 선제 대응, 지옥, 죽음 등의 언어가 마구 동원된다. 사자는 "나는 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 너희 사자들은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가, 아니면 오래된 적대의 구조를 반복하려는가? 함께 파멸하고자 하는 것인가? 지금 사막은 더욱 황폐화되고 주변의 숲들까지 불타고 지구 생태계가 아우성치고 있다.
전쟁 당사자들은 지금 사자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낙타의 오래된 짐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각국은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포와 응징의 정서가 무겁게 응어리져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일체의 감정이 없는 전쟁 기계처럼 작동된다. 니체는 국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국가는 모든 냉혹한 괴물 가운데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이 괴물은 냉혹하게 거짓말을 해대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그리고 잔혹하게 파괴하고 위협한다. 니체에 의하면 국가라는 이 새로운 우상은 "그 주변에 영웅들과 영예로운 자들은 들러리로 세운다."(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그리고 누구든 경배만 한다면 이 새로운 우상은 무엇이든 준다고 약속한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차갑고 뻔뻔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아, 알다시피 괴물은 결국 경배하는 자들조차 잡아먹는다.
"국가는 선과 악이라는 말을 다 동원해가면 사람들을 기만한다.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든 그것은 그가 부당하게 취한 장물이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국가는 언제나 도덕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법과 규범들도 선-악의 도식을 장악하고 온갖 명분과 덕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하지만 국가라는 괴물은 항시 전략적 계산과 이해관계로만 움직이는 냉혹한 기계이기도 하다. 전쟁은 언제나 정의의 언어로 포장되지만 그 내부에는 삼키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고자 하는 생리만이 번뜩인다. 니체의 독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 호르무즈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혈전은 장물과 패권을 취하고자 몸부림이란 사실을 쉬 알 수 있다.
◇ 전쟁을 그치게 하는 상상력과 새로운 전쟁
니체가 말하는 정신의 세 번째 단계는 어린아이의 정신이다. 니체의 어법에서 아이는 나약함이나 훈육의 상징이 결코 아니다. 아이는 자유롭고 행복한 정신의 최고 경지로 그려진다. 새로운 시작, 창조, 자유로운 상상력, 놀이, 유희와 명랑성, 새로운 가치의 발명 등을 은유한다. 오늘날 우리 삶이나 국제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지금 세계는 낙타의 고역을 감당하거나 사자의 포효를 반복하지만, 아직 아이의 상상력에는 이르지 못했다. 전쟁은 무기의 충돌이자 동시에 상상력의 빈곤이기도 하다.
아이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자와 어린 양과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통과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전쟁 이후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인가? 적대의 서사를 넘어 어떤 공존하는 안보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어떻게 복수의 연쇄를 끊고 미래 서사를 함께 만들 것인가? 아, 절망적으로 보인다. 부디 우리 모두가 아이가 되자. 아이는 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짓는 존재다.
놀랍게도 니체는 우리를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라고 선동한다.
"너희는 너희의 적을 찾아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너희의 사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 (전쟁과 전사에 대하여, 황산 역)
니체가 말하는 전쟁은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사유와 가치의 투쟁이다. 자기 내부의 나약함과공포와의 전쟁, 기성의 가치와의 전쟁, 허위적 도덕과 전쟁론과의 전쟁, 소위 시대정신 즉 시대성의 맞섬을 말한다. 평화는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다. "너희는 평화를 사랑하되, 새로운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랑하라." 니체는 우리로 하여금 성찰을 통한 내면의 고요와 평화을 찾으라고 권한다.
평화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수 있는 정신의 탄생에서 시작된다. 지금 사막에 필요한 것은 더 큰 포효가 아니라 미래를 다시 설계할 용기와 상상력이다. 우리에게도 긴급한 일은 주어졌다. 불안감이나 편들기 마인드를 접고 새로운 전쟁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전쟁을 그치게 하는 정신의 전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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