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이슈] '미군은 점령군'...과연 역사왜곡일까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7-05 20:34:10
  • -
  • +
  • 인쇄
윤석열 "'美 점령군 발언…황당무계한 망언"
이재명 "제대로 공부해야…친일잔재" 반격
▲윤석열 전 검찰총장(좌)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사진=연합뉴스)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놓고 난데없는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냐"고 발언한데서 촉발됐다. 이재명 지사의 발언 가운데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놓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한다"며 문제삼았다. 여기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색깔론으로 몰고가려는 분위기다.

윤 전 총장의 주장대로 이재명 지사는 과연 '미국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한 것일까. 또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일까. 우선 이재명 지사는 "나는 소련을 해방군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 이 발언을 제외하고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문제인지 아닌지 여부를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해방을 맞았다. 자의에 의한 해방이 아니라, 일본의 패망으로 인한 해방이었기에 사실상 우리나라는 자주적 통치에 대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곧바로 미군정 치하에 들어갔다. 그때가 광복된지 한달도 안된 1945년 9월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군은 일본에 사령부를 설치한 다음, 소련을 의식해 곧바로 한반도로 입성한다. 당시 미군의 극동아시아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겠다는 포고령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38선의 이남을 통치하고, 소련은 38선 이북을 통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해방 직후 한반도를 통치했던 미군정은 '점령군'이 아닌 것일까. 사전에는 '군정'이라는 의미를 '점령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행하는 임시행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보면 '미군정'은 포고령을 통해 미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점령지역인 한반도를 한시적으로 직접 통치하겠다고 선포했다.

포고령에는 'occupying forces'라고 기술돼 있다. 여기서 'occupy'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다. 사전에는 이 단어를 '△(공간·지역·시간을) 차지하다 △(방·주택·건물을) 사용하다 △점령(점거)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점령군'을 마치 '침략군’ 정도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해석해버리면 occupy가 갖는 본질적 의미를 되레 왜곡해버리는 것이 된다.

당시 미군정도 스스로를 '점령군'이라고 표현했다. 포고령에는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 조항을 발표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스스로 '점령군'임을 수차례 밝혔다.

사실 역사적 쟁점은 미군정이 '점령군이냐 주둔군이냐'가 아니다. 미군정의 포고령 때문에 우리나라는 친일청산의 기회가 사라졌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맥아더 포고령 제2조는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기능 및 의무 수행을 계속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앞세워 미군정은 일제에 부역했던 관료와 경찰, 군인 등을 그대로 고용했다.

이 때문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949년 창설 1년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친일행위를 한 사람은 단 1명도 처벌된 사람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사람 3만8000명을 시효없이 모두 색출해 처벌한 프랑스나, 9만2000명에 달하는 민족반역자들을 심판한 노르웨이 등과 사뭇 다른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은 나치에 단순노역한 사람들도 모두 처벌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봤을 때, 이재명 지사의 "대한민국은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는 발언은 윤 전 총장의 주장처럼 역사를 왜곡한 황당무계한 망언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산재사망 OECD평균으로 줄인다...공시제와 작업중지권 확대 추진

정부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산업안전보건 공시제, 작업중지권 확대 등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3일 대국민 보고대회를 앞두고 있

우리금융, 글로벌 ESG 투자지수 'FTSE4Good' 편입

우리금융그룹이 글로벌 ESG 투자 지수인 'FTSE4Good'에 신규 편입됐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지수 편입을 통해 우리금융은 글로벌 투자자와 소통을 더욱 강

KT, 생물다양성 보전 나선다...수달서식지 '원동습지'에서 첫 활동

KT가 습지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전활동에 나선다.이를 위해 KT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이스트에서 국립생태원과 기후변화로 급감하고 있

광복적금부터 기부까지...은행들 독립유공자 후손돕기 나섰다

최고금리 8.15%에 가입만 해도 독립유공자 단체에 815원 기부되는 등 시중은행들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지원에 나서고 있다.8일 KB국민·신

SK이노·카카오·빙그레...광복 80년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에 '한뜻'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독립유공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SK이노베이션은

정부, 사망자 1명만 나와도 공공입찰 제한 추진

정부가 중대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이라도 발생하면 공공입찰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7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국

기후/환경

+

경기도, 호우 대비 13일 오전 6시 '비상1단계' 발령

13일 오전부터 14일 오후까지 경기도 전역으로 낙뢰와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경기도는 13일 오전 6시부로 재난안전대책본

확진자가 1만6500명...기후변화로 태평양 섬나라 '뎅기열' 급증

기후위기로 모기 매개 감염병인 뎅기열이 태평양 국가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국가비상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12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태평양 섬나라

부글부글 끓는 지중해...유럽 전역 산불과 40℃ 폭염에 '신음'

유럽 전역이 역대급 폭염과 산불에 신음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4세 어린이가 열사병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고, 프랑스에는 대형 산불로 인한 피

남극서 66년전 실족사한 영국인...빙하 녹으면서 유해 발견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66년전 사고로 사망한 영국인의 유해가 드러났다.11일(현지시간) 영국 남극조사국(BAS)은 최근 BAS의 전신이었던 포클랜드제도조사

[날씨] 또 시작된 '폭우'...화요일 '남부' 수요일 '중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또다시 강한 빗줄기가 예보돼 있다.화요일인 12일은 남부지방과 제주도에서 비가 내린다. 전남 고흥군·여수시·완도군

日 규슈 400mm '물폭탄'…잠기고 무너지고 '아비규환'

11일 일본 규슈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침수와 산사태, 하천 범람 피해가 잇따르며 사망·실종자가 속출했다. 일본기상청은 구마모토현 다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