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민족시인 '이상화'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12-11 08: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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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야기] 대종교 사상이 깃든 시
시를 통해 일제의 폭력과 지배의 원리에 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상화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민족시를 발표해 민족정신을 드높인 이상화는 아버지 이시우와 어머니 김신자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무량·상화·백아를 두루 사용했다.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게 교육을 받았다. 1916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1919년 수료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이상화의 시를 읽으면 그가 대종교 사상에 심취한 대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시에는 '검'이라는 시어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대종교에서는 한배검(단군)을 지칭할 때 '검'이라고 한다. 둘째, 그의 시에는 대종교의 핵심적 사상인 천지인의 삼신일체 사상과 대종교만의 독특한 미학이 드러난다. 대종교는 천지인을 독특한 의미의 '삼극'(三極)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상화는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가 운영하던 서점인 우현서루(友弦書樓)에서 유생들이 논하는 것을 밤낮없이 듣기 좋아하고 또 외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현서루가 문을 닫은 뒤에 이일우는 집안에 강의원(講義院)을 마련해 그곳에서 이상화가 보통학교 교육을 받도록 했다. 대종교인 박은식과 장지연, 조성환, 이동휘 등의 독립운동가들과 후일 대종교 종사 자리에 오른 윤세복도 우현서루를 거쳐갔다.

이일우가 운영한 우현서루와 강의원의 학풍이 대종교적 민족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정은 이일우의 '달성친목회' 활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13년에 재건된 '달성친목회'는 '단군 태황조' 위패를 모시고 국권회복과 민족번영을 기도했으며, 친목회 정기모임에서 단군에게 제사를 지낼 것을 서약했다.

달성친목회 재건을 주도한 서상일과 이시영은 대종교인이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미뤄볼 때 달성친목회는 대종교 사상을 기초로 탄생한 단체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종교는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과도 관련이 있다. 이상규 작 '이상정 장군의 육필유고 '펴박기' 분석'이라는 논문에 이상정은 1925년 전후에 중국으로 망명했는데 이는 만주독립군 또는 대종교의 윤세복 세력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술했다.

아래에 이상화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어둔밤말업는돍을안고서

피울음을울드면, 셜음은풀릴것을
사람을만든검아, 하로일즉
차라로취한목숨, 죽여바리라!‘

- 시 '가장 비통한 기욕 간도이민을 보고' 중

언제든지 헛웃음속에만 살려거든
검아 나의신령을 돍맹이로 만드러다고
개쳔바닥에석고잇는 돍맹이로 만드러다고.

-이상화의 시 '극단(極端)' 중
신성을 '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대종교 사상뿐이다. 대종교의 총전교를 역임한 한뫼 안호상 박사에 따르면 '검'은 한국의 고어(古語)로서 '신'(神)을 뜻한다. 대종교의 경전에서도 신(神)은 언제나 '검'으로 번역돼 있다. 조선광문회에서 편찬한 '신자전'(新字典)에서도 '신'(神)이라는 글자를 '검, 영검할 신'이라 돼 있다.

안호상 박사는 또 '단기고사'에 실린 '나라노래'의 '나리 한배검 가마 고이'라는 한 구절에서도 '검'이 '신'의 옛날 우리말이라는 증거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나라노래'는 '단군신가'라는 이름으로 1920년대 '개벽'지에 몇 차례 소개됐는데, 이상화의 시가 가장 많이 발표된 매체 또한 '개벽'이었다. 이상화는 그와 함께 문예지 '백조'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월탄 박종화의 소개로 최남선 등과 친분을 나눴다고 한다. 그 뒤로 이상화의 사촌 이상악은 육당과 사돈지간을 맺는다. '신자전'의 대표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은 최남선이다. 또한 이 책의 집필과 편찬에는 대종교인이었던 주시경, 김두봉, 유근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상화의 시에서, 사람이 사람다움의 생명을 지키지 못해서 '검'이 생명을 거둬가도 좋다고 여긴다면, 그때의 '검'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게 하는 버팀목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종교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서 일자(一者)로서의 신성이 무(無)로 시작해 무로 끝난다고 했듯(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대종교의 신성은 모든 존재가 태어났다가 되돌아가는 근원적 무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이상화의 시어에서의 '검'과 상통한다.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가튼 논길을 따라 꿈속을가듯 거러만간다. 

입슐을 다문 한울아 들아
내맘에는 내혼자온것 갓지를 안쿠나
네가 끌엇느냐 누가부르드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넘의 아씨가티 구름뒤에서 반갑다웃네.

-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하늘은 우주 생명을 창조하는 원리를, 땅은 그 하늘의 생명 원리를 받들고 구현해야 할 민족 공동체의 터전을,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매개자를 각각 표현한다. 이는 우주 전체를 하늘의 조화(造化)와 땅의 교화(敎化)와 개체적 생명의 치화(治化)로 바라본 대종교의 '삼신일체' 미학과 상통한다. 제국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체제는 한국 민족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는 체제였으며, 끊임없는 전쟁과 수탈을 통해 유지되는 폭력과 지배의 체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화의 시는 생명과 조화의 원리를 통하여 폭력과 지배의 원리에 대항했다.

이상화가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발표한 것은 '개벽' 1926년 6월호였다. 그해 4월 25일 순종이 승하하고, 5월들어 그의 벗 권오설이 6.10만세 운동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바로 그때, 이상화는 이 시를 썼던 거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권오설이 이상화에게 보낸 엽서

1925년 2월 권오설(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은 순종 승하 직후인 4월말경부터 상해의 조선공산당 임시상해부 인사들과 함께 6.10만세운동을 계획해 만세운동의 투쟁지도부인 '6.10투쟁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운영한다. 그러나 거사 사흘전인 6월 7일 계획이 사전 발각되면서 체포됐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는 중인 1930년 옥중에서 순국한다. 일제는 1930년 권오설이 33세로 죽자 고문 흔적을 감추기 위해 시신이 든 목관을 함석으로 밀봉했다. 권오설과 이상화는 1910년대 중후반 서울중앙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다니며 우정을 이어갔던 관계였다.

권오설이 죽은 뒤 이상화는 1935년 중국으로 건너가 친형인 이상정과 조국독립을 위한 국내조직 협의 활동을 모의했다. 1937년 귀국 후 대구경찰에 붙잡혀 2개월간 구금돼 고문을 받는다. 1943년 초 쓰러진 뒤 위암과 폐결핵, 장결핵 등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전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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