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나는 학습자일까, 심판자일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6-17 15: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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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배우느냐 보다 학습자가 되는 게 중요
심판의 태도를 버릴 때 함께 사는 길이 열린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도 있다. 아니 실패를 통해 배우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폴레온 힐의 글에 이런 값진 이야기가 있다.

골드 러시(Gold Rush)가 한창일 때 더비의 숙부는 서부의 콜로라도로 가서 금을 찾았다. 몇 주간의 고된 노동 끝에 발견한 금광석을 전문가를 통해 분석해보니 양질의 금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돈을 끌어모아 채굴 장비를 구입하며 본격적으로 광맥을 캐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광맥이 사라져버렸다. 체념한 두 사람은 모든 장비를 헐값으로 고물상에 팔아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물상은 광산 기사들을 대동하고 그 광산을 정밀 조사한 이후 다시 채굴을 시작했다. 이내 대규모 금맥을 발견했다. 광맥은 더비와 숙부가 채굴을 포기한 바로 1m 지점에서 발견됐다. 그 결과 고물상은 일확천금을 벌었다.

이 소식을 들은 더비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분명 그곳에는 금이 묻혀 있었다. 1m만 더 팠더라면 금맥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보험 세일즈에 이를 적용했다. 다시는 1m를 남겨두고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고객을 설득할 때 고객이 거부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그는 고객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 나갔다. 간격을 거리 단위로 측정하며 나아갔고 한 치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다비는 연간 수백만 달러의 실적을 올리는 최고의 영업 사원이 됐다. 그는 자신의 집요한 끈기에 대해 금맥을 찾던 시절 '포기'로부터 배운 교훈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1m 법칙'이라고 한다.

나의 한 지인은 20대에 엄청난 돈을 벌어 평생 쓸 돈을 마련했다. 그런데 32세에 파산했다. 빌라건축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분양 대행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수십억원을 잃고 4억원의 빚까지 떠안게 됐다. 그는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의 내면이 황폐해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과 영성을 가다듬는 일을 우선시했다. 직업과 돈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단숨에 바람처럼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벌어 잘쓰자." 그는 스포츠 전문가로 활동하며 다시 일어섰고 그 누구보다도 나눔과 봉사활동에 열성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이를 통해 값진 황금교훈을 얻으며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바로 자기 성찰에 있다.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타인과 상황을 탓하고 책임을 다른 것에 넘긴다.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한다.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 더구나 실패와 실수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선생이다.

◇ 학습자의 길과 심판자의 길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인 마릴리 애덤스(Marilee Adams)는 문제를 대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학습자(the learner)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자(the judge)의 길이다.

학습자는 배우는 태도로 모든 상황과 타인과 사건을 바라보고, 심판자는 쉬 판단하고 따지고 정죄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학습자는 판단을 유보하고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려 한다. 이에 반해 심판자는 자신의 틀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해 버린다. 학습자는 배움에 이르는 질문을 던지고 관찰자의 입장에 서려한다. 자기 자신의 기분과 생각과 행동을 고요히 살피며, 매사에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며 참여한다.

이에 반해 심판자는 상황과 타인을 판단하고 점수를 매기고 정죄하는 데 전문가다. 약점이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남을 공격하는 데 능하다.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심판자는 악취를 풍기며 빛난다. 혐오와 차별에도 익숙하다. 심판자는 독선과 거만한, 우월감, 그리고 방어적인 자세로 가득 차 있다. 반면 학습자 마인드를 가진 자는 열려있다. 언제나 허리굽혀 진리의 조각들을 줍는다. 판단하고 정죄하려들기 보다 교훈을 찾으며 상생의 길을 발견하려 한다. 심판자는 닫혀 있고 내내 굳어있다. 학습자는 열려있고 그만큼 창조적이다.

애덤스에 따르면 학습자와 심판자는 던지는 질문이 전혀 다르다. 심판자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사고한다. "뭐가 잘못 됐지?", "누구 탓인 거야?",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을까?", "이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고도 실망스러울까?", "저들이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이와 달리 학습자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행동한다.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얼까?", "내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지?", "어떻게 하면 양 쪽에 다 유리하게 되고 상생할까?",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과 방법은 무엇일까?", "제대로 일이 돌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얼까?"

애덤스는 질문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학습자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갈 것을 역설한다. 단지 심판자의 질문은 나쁜 질문이고 학습자의 질문은 좋은 질문이라는 것이 아니다. 심판자의 질문은 우리가 익숙한 삶과 사유의 방식이고 학습자의 질문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새로운 길이라는 것이다. [위 내용은 마릴리 애덤스의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을 참고했다. 책의 원제목은 Change Your Question, Chang Your Life 이다.]

학습자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나 비평의 힘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당연히 엄중한 시민의 평가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서도 정밀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습자는 그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고 자신이 참여해 해야 할 일에 주목한다. 학습자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 많을수록 가정과 조직과 공동체는 평안하고 생산적이고 협업적이 되리란 것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 나는 학습자로 살기로 했다

학습자가 되려면 자기 확신을 버리는 것이 먼저다. 자신만이 옳고 최고이며 표준이라는 착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허위의식과 자기중심성을 버리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자기 프레임을 고수하기를 그치고 자신과 타인과 공동체 전체를 바라보는 확장된 시선을 지녀야 한다. 나의 박스(box)와 나의 틀을 기준점으로 삼지 않고 관계망 전체와 판 전체를 관찰하며 최선의 길을 찾으려는 태도를 갖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판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매사에 심판자의 질문을 던지며 심판의 망치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도 이런 경향이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는 학습자의 열망이 꿈틀대고 있으며 배우고 성장하며 상생으로 나아가는 자기 성찰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은 선택이다.

나는 학습자로 살기로 했다. 배우는 자의 마음을 선택하면 자유로워진다. 자신을 옥죄는 삶과 관계와 마음의 무거운 짐들이 한결 가벼워진다. 학습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운다. 자신의 실수와 타인의 악행으로부터도 배운다. 학습자의 태도를 지니면 삶이 여유로워진다. 관용의 폭이 넓어져 톨레랑스의 사람이 된다. 나 역시 불완전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 역시 완전치 않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보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함께 공존하는 조화의 길을 찾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학습자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문제발견자가 아니라 문제해결자로 참여해 각각의 상황에서 모든 이를 위한 해법을 찾고 행동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학습자의 가슴에는 깊은 연민이 싹터 오른다. 학습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임무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과 자연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두 끌어안아 연민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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