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수업 하나가 내 삶을 바꿨다"...의사 꿈꾸던 청년, 영화감독이 되다

박유민 기자 / 기사승인 : 2021-03-26 19: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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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상 휩쓰는 '미나리' 정이삭 감독은 누구?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 수상 소식에 딸 리비아와 함께 기뻐하며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최근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미나리'가 국내에서 3일 개봉된 가운데 이 영화를 연출한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기생충'의 신화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는 '미나리'를 만든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 늦깎이 영화광···영화에 빠져 의사 꿈도 포기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었던 교양수업이 예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던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놨다. 그는 본래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난달 26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그는 "기숙사 룸메이트가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보길래 '대체 왜 저런 영화를 보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양으로 들었던 영화 수업에서 매주 과제로 영상을 찍어야 했고 그는 조금씩 영상 제작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곧 '7인의 사무라이'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화양연화' '중경삼림'의 왕자웨이(王家衛) 감독 작품에 완전히 심취했다. 그는 NYT에 "마치 인생의 개종과 같은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그는 의대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유타대로 진학해 영화를 전공했다. 부모님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26일 BBC와 인터뷰에서 그는 "부모님은 제가 대학 졸업 후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셨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가 하는 일을 지지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영화를 만들겠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었고, 그저 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자신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영화의 매력에 홀린 그는 "하루에 여러 편 영화를 계속 봤다"며 "마치 영화로 수련하는 수도승 같았다"고 말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영화의 길을 가게 된 그는 혹시나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불안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NYT에 "영화의 모든 것에 있어 자신이 늦깎이처럼 느껴졌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 '미나리' 시나리오···그의 마지막 도전 

갑작스레 영화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영화 '미나리'도 인생에 없었던 계획이었다. 유타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모교인 유타대의 한국인천캠퍼스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가르치는 교수직을 맡게 됐다.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접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감독은 NYT에 "마흔이 돼가면서 인생에서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마지막으로 모든 걸 쏟아붓자는 마음으로 '미나리'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별로 큰 기대가 없었다. 그의 데뷔작은 '문유랑가보'로 2007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이후 나온 그의 영화 '럭키라이프'(2010)와 '아비가일'(2012)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누군가의 이야기'

긴 공백을 거쳐 8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된 그의 영화 '미나리'가 종횡무진 흥행을 거듭하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미나리>는 미국 아칸소의 작은 시골마을로 이주한 한인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많은 사람은 그의 영화를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미나리'는 정 감독의 유년시절을 토대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산 풍경과 깨끗한 개울 덕분에 '자연의 주(The Natual State)'라는 애칭을 얻은 아칸소. 그 작지만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그의 가족 이야기를 그려냈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이야기로만 치우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뒀다. 아카데미상 4관왕을 거머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이런 점을 높이 샀다. 지난해 12월 17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variety)에서 정이삭 감독을 만난 봉준호 감독은 "자기 추억에 빠져 영화가 질척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지만 묘하게 거리도 있는 것같다"며 "적절한 거리감이 영화를 아름답고 보편적으로 만든 것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어 가족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전세계의 보편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그의 수상 소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미나리는 그들만의 언어로 얘기하려고 애쓰는 가족의 이야기"라며 "이는 미국 언어나 그 어떤 외국어보다 깊은 진심의 언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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