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혐오정치'의 굿판을 거둬라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3-29 13: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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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정치의 발화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폭력
혐오정치는 특정집단 제물로 삼는 정치적 주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강산 관광이 허용되던 때였다. 당시 지인이 업무차 매주 금강산 현대 호텔을 방문했다. 하루는 금강산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모여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온 무속인들이었다. 규모가 큰 제사가 있단다. 소머리를 올리는 천제를 치르는데, 우두(牛頭)를 바치는 제사는 아주 큰 제사라고 한다. 그들은 금강산 골짜기에서 제사를 지내고 훌쩍 떠났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들이 떠난 오후, 현대 직원들이 총동원돼 골짜기 청소를 했다. 제사를 지내고 쓰레기들은 그대로 두고 가버린 것이다. 골짜기의 거센 바람에 온갖 쓰레기와 비닐봉지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맑은 물속에 부유하며 골짜기는 마치 쓰레기장처럼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면서 욕을 던졌다고 한다.

이 장면은 무속적 영성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요란하게 제사를 지낸 이들은 신기와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도덕이 없고 공공적 감각이 부족하다. 이처럼 윤리가 결여된 행위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진한 슬픔을 남긴다. 때로는 타자에 대한 폭력이 된다. 똑같은 악기가 위대한 연주자의 손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선율과 천상의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어떤 이의 손에서는 소음만 낸다.

◇ 장애인 혐오···잔인함의 문화

이동권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을 공격하는 정치인 이준석의 말을 들으며 비통한 슬픔을 느낀다. 응원하고 격려하지 못할지언정 돌멩이를 던지는 그 행위에 많은 시민들이 격분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시민을 '볼모'로 삼는다고 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정도에 지나치다. 이준석의 발언이 심각한 것은 그것이 혐오 정치적 발화라는 점에 있다. 헨리 지루(Henry A. Ciroux)가 말한 '잔인함의 문화'가 떠올랐다. 이준석의 말이 민주적 가치와 자비심, 정의 및 이와 관련된 사회적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송두리째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인지 아니면 철부지 정치인의 가벼운 실언인지는 분명치 않다. 여성-남성을 갈라치고 혐오 정치를 조장하더니 이제는 장애–비장애 시민을 갈라치는 혐오 정치를 노출하고 있다.

폭력적 언어의 표현이 더 잔혹해졌다.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이권만을 위해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폭력적인 투쟁을 선택했다는 프레임을 씌우며 공권력 투입까지 운운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책적 대안을 연구해야할 정당의 대표로서 정치철학적 기본기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의심하게 되는 형국이다. 공감력이 없는 정치는 잔혹하다.

◇ 시위와 파업···상생을 위한 진통

2004년 파리 지하철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정은혜 전 국회의원이 파리여행 중 이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그 파업으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돌아서 1시간30분 걸려 도착했다. 그는 당시 파리 시민의 말을 회상한다.

"지하철 노동자는 자신들의 권리를 얻기 위해 파업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언젠가 나도 저런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저 사람도 나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그 목소리와 행위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일상적 노동과 삶의 흐름을 깨뜨리는 방식의 강한 의사표현에는 그만큼 절박함이 담겨있다. 권리없는 자들의 호소와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마음을 읽는 이들은 가만히 마음의 응원을 보낸다.

파업 혹은 시위는 종종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 불편함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개인의 자유다. 그들을 응원하는 자들도 있고,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이도 있다. 때로는 불쾌감을 표현하거나 공공연히 항의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어떤 논리적 근거를 대면서 시위 혹은 파업을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정치인은 먼저 경청하는 귀를 지녀야 마땅하다. 심판자적 태도를 내려놓고 비통한 자들의 대변자가 되려는 품성부터 지녀야 할 것이다.

◇ 혐오정치는 특정집단 향한 폭력

혐오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다수 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공익적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특정 집단을 혐오 대상화하고 경멸한다. 나아가 선동적 수사와 편향된 관념을 유포하면서도 오히려 떳떳하다. 그러한 조작의 달인들이 능란하게 이용하는 인간의 감정은 이질감과 분노와 혐오 감정이다.

개인이 어떤 우연한 일이나 타인에 대해 불쾌의 감정을 느끼거나 분개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경험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혐오나 장애인 혐오는 특정집단을 대상으로 한 편견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 취향 감각과는 전혀 다르다.

마사 너스바움이 지적했듯이 혐오(Disgust)는 '특정 집단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무기'로 구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유태인 혐오다. 많은 분쟁 지역에서 특정 부족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를 동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후반에는 이주자 혐오, 소수자 혐오, 이슬람 혐오, 여성 혐오를 이용하는 이들이 지구촌에 왕왕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준석의 혐오 선동은 그러한 맥락을 잇는 혐오 정치의 한국식 버전이다.

혐오 정치는 윤리가 결여된 미숙한 정치 수준이 아니라 교활하고 사악하기조차 하다. 공동체를 이간시키고 시민들의 마음을 찢어 편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것이 파생하는 이익이 특정 정당의 이익이든 개인의 정치적 실익이든 과연 정당화할 수 있을까? 혐오 정치는 특정 집단을 제물로 삼는 정치적 주술에 다름 아니다. 정의의 윤리와 상생의 가치를 부인하는 혐오 정치의 굿판을 용인할수록 민주주의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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