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벌통에 한숨짓는 양봉농가..."꿀벌 실종사태, 재해로 인정해야"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4-01 14: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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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마리 집단폐사...원인은 '기후변화'
꽃가루 못옮겨 과일·채소 농가 2차 피해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농가에서 농민이 비어 있는 벌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책도 없고, 대비도 없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 연구결과를 가져오라고 한다."

국립농업과학원과 한국양봉학회가 지난달 31일 공동주최한 '양봉산업 현안 대응방안 마련 공동 심포지엄'에서 한 양봉농가 관계자는 이같이 말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꿀벌 실종' 사태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농업재해 인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꿀벌은 대개 12월 산란을 시작하는 여왕벌을 지키기 위해 10월부터 벌통에 모여들어 월동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시기에 벌통 뚜껑을 열어본 농민들은 아연실색했다. 꿀통에 있어야 할 꿀벌들이 다 사라지고 없던 것이었다.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지자체, 한국양봉협회가 전국 9개 도, 34개 시·군, 99호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민·관 합동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기준 전국적으로 39만517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벌통 하나에 1만5000~2만마리의 꿀벌이 산다고 계산하면, 약 70억마리에 달하는 꿀벌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달 22일 기준 벌통 50만개 이상, 꿀벌은 100억마리가량 사라진 것으로 분석했다. 더군다나 봄 개화기를 맞아 본격적인 수정 철이 시작되는데 꽃가루를 옮겨줄 꿀벌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따라 수박과 참외, 호박, 오이 등 과일·채소 농가의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관내 양봉농가의 70%에서 피해가 발생한 전라남도는 최초로 긴급지원을 결정해 160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번 '꿀벌 실종' 사태는 아직까지 원인 미상이라는 이유로 농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아 정부차원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꿀벌들의 집단폐사에는 기생충인 꿀벌응애, 먹이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꼽히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는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선 장마철에 주로 발생하는 꿀벌응애의 경우 고온저습한 환경일수록 생존율이 높다. 지난 2021년 7~8월 남부지방의 기온은 이례적으로 높았고, 습도는 낮아 장마가 빨리 끝나는 바람에 꿀벌응애가 많이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꿀벌응애가 기승을 부리자, 방제약 사용량이 대폭 증가해 꿀벌들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이다.

또 2020년과 2021년 꿀벌이 꿀을 따는 '밀원식물'의 개화기에 저온·강풍·강우를 동반한 이상기후로 벌꿀 생산량이 감소했다. 게다가 짧고 극단적인 기상이변에 더해 전체적인 기온은 오르면서 개화시기가 앞당겨졌고, 월동기 기상이변으로 취약해진 꿀벌이 다 크지도 못한 채 일찍 꿀을 따러 나섰다가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귀소하지 못하고 객사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빈도와 강도가 높아진 산불도 문제다. 기온상승으로 북반구 봄비가 갈수록 뜸해져 2021년 겨울강수량은 예년의 14.7%에 그쳤다. 올들어 발생한 산불은 245건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발생한 건수의 2배에 육박했다. 지난달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아까시나무(아카시아)가 많은 대표적 밀원지 합천·고령·울진 등에 피해를 입혔다. 개화기 양봉업자들은 아까시나무 꽃을 따라 북상하며 꿀을 채취하는 '이동양봉'을 개시하는데, 산불로 밀원이 줄어 꿀벌들의 영양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꿀벌집단에 한계치를 넘어서는 스트레스가 가해졌고, 결국 대규모 폐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농촌진흥원 최용수 박사는 "해외 논문들의 경우 2~3년, 10년간 조사한 논문들이 많다. 오래도록 현장에서 누적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재해인정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는 전문인력양성기관을 선정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국 꿀벌 병해충 발생 합동조사단을 꾸려 4월부터 매달 정밀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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