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수백억짜리 건물주 '그들은 행복할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6-01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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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도 불행하고 없는 자도 불행한 사회
나의 작은 행동에서 행복 찾기는 펼쳐진다



지인의 친구가 건물주가 됐다. 자영업을 하며 성실하게 아끼고 모은 돈으로 작은 빌딩을 지은 것이다. 이후 건물주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건물 관리와 관련된 정보와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였다. 100억원 남짓한 규모의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 모임이었는데 그래도 다들 엄청난 자산가들이다. 그런데 건물주들의 얼굴을 보니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점점 사적인 대화들을 들어보니 멀쩡한 가정이 하나도 없었다. 집집마다 온갖 문제들로 골치를 앓고 있고 불평과 한탄이 가득했다. 한 지붕 아래 따로 사는 부부, 자녀들의 탈선, 자식들간의 재산 다툼, 찾아와 재산 내놓으라고 난동 부리는 자식 등등.

돈이 절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물질적 부와 행복이 비례한다거나 소유가 많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가정은 이미 허구임이 밝혀졌다. 절대 궁핍 상태에서는 누구든 행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기본 필요가 채워진 이후에는 양자의 상관관계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비례하기도 한다.

◇ 소비의 사회···소유와 소비에서 행복찾아

플라톤이 말한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가 생각났다. 첫째, 먹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조금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기대하는 바에 절반만 인정받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기지 못하는 힘. 다섯째, 연설할 때 청중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가 그것이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람도 없는 그런 상태가 행복의 더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고대 솔로몬의 지혜서에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과 노동의 수고 가운데 낙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우리의 일상의 삶과 관계와 활동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음식에 부족함이 없고 함께 어울려 마시고 축제를 열 수 있으며 일상의 노동에서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이런 기쁨을 앗아가 버렸다. 노동은 고역이 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됐다. 노동의 산물과 이윤은 소수가 전유해 버리고 보이지 않게 갈취된다. 아울러 노동 자체가 짜여진 생산 공정과 컴퓨터 시스템과 기계들에 종속돼 창조적인 생산이나 수확의 기쁨이 거의 없어졌다. 더구나 실업이나 저임금과 비정규직의 상태에서 노동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설사 독립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자신의 기술과 재능이 상품으로 판매되지 않으면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오늘날의 사회에서 '소비'가 행복과 밀접한 것으로 경험된다. 아니 행복의 개념 자체가 소비와 직결돼 있고 우리는 그렇게 체질화돼 있다.

언젠가 해외에서 일행과 함께 아울렛을 방문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동행하던 한 여성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졌다. 평소 체력이 약해 시간만 나면 기대앉거나 잠을 자던 모습이 사라졌다. 그분은 질주하듯 쇼핑몰을 횡단하며 옷들을 구경하고 구입했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듯 질주하는 모습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너지가 넘치고 얼굴이 환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놀라운 힘에 빙의된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럴까? 쇼핑을 하고 소비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쇼핑할 때, 비싼 상품을 획득할 때, 신상품이나 명품 브랜드 물품을 구할 때, 승용차를 구입할 때, 좋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거나 영화나 공연을 관람할 때 우리는 들뜨고 행복해 한다. 소비하는 시간은 행복의 순간이다. 마침내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는 순간 전율하는 기쁨을 느낀다. 이처럼 상품 소비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소비적 인간이 됐다. 물품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욕망한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은 상품의 이미지와 기호를 구매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의 가치와 품격과 연결해 버린다. 이에 따라 행복의 경험이나 행복감의 질과 양도 달라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뭐든 가질 수 있는 상태'를 행복으로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이것이 가장 대중적인 행복의 조건이다. 문제는 소비하고 싶은 것을 맘껏 소비할 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은 늘 불행하다고 느낀다.

◇ 연결되고 나눌 때 행복해

사막에 작은 오아시스가 있는데 한 할머니가 거기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샘물을 떠다 대접했다. 그 때마다 기쁨을 느끼고 참 행복했다. 지나는 사람들은 거기 들러 물을 받아 마시고 휴식을 취한 후 길을 갔다.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조금씩 돈을 받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아예 돈 통을 샘 옆에 갖다 두었다. 사람들은 그간 할머니가 베푼 친절을 기억하면서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분도 먹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면서 돈을 주고 물을 사먹었다.

나그네에게 물을 대접하는 환대가 비즈니스가 되기 시작했다. 나무 그늘 이용료까지 받았다. 사업이 성업하자 음식장사와 여관업까지 하게 됐
다. 이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그 샘을 지키기 시작했다. 누군가 물을 퍼 가면 어떻게 할까 두려워 지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편히 잠들지도 못한다. 어느 날 아침 샘을 둘러보는데 샘가의 야자나무 잎사귀에 이슬이 맺혔는데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이 놈의 나무들이 샘물을 다 빨아먹는구나!" 그래서 할머니는 사람들을 고용해 나무들을 잘랐다. 그 때부터 그늘이 없어졌다. 이제 샘에 물이 고이지 않는다. 뜨거운 햇볕에 샘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오아시스도 없어지고, 더 이상 사람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우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할머니가 참 행복할 때가 있었다. 그저 샘물을 나누어 줄 때가 행복했다. 그런데 돈이 보이자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이윽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마치 이 할머니처럼 살고 있지 않는가?

지구촌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부탄 왕국이다. 70만 인구의 97%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자리잡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라의 정책이다. 윌리엄 리 주한 부탄문화원장의 말에 의하면, 부탄은 1970년대부터 국민총생산(GDP)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중요 가치로 삼고 4개 차원, 9개 분야, 33개 지표를 통해 국민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도를 높이려 힘써왔다고 한다.

부탄의 행복 비결은 4S로 요약된다. Small(작은 것), Slow(느리게), Smile(미소), Simple(단순함)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의 S를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Share(나눔)이다. 우리는 나눌 때 행복하다.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연결되고, 마음을 나누고 생각도 나누고 물질도 나눌 때 희열을 느끼고 함께 기뻐할 수 있다. 이는 연결과 접속에 열려 있는 삶이자, 이웃관계의 정신이며, 함께 공유하고 상생하는 공동체의 원리이기도 하다.

◇ 행복의 순간 창조하기

어느 눈 내리는 날 밤, 한 학생이 구세군 숙소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한 할머니가 자기 집 앞의 진입로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때 버스를 타고 있던 한 사람이 운전사에게 급하게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곳은 정거장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버스에서 내릴 때 학생은 '자기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차장 밖으로 그 사람이 할머니에게 달려가 손에 삽을 받아쥐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어떤 뜨거운 것이 울컥하며 자기 목으로 올라오면서 이 학생이 울기 시작한다. 그 학생이 말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꼭 들려주고 싶어요. 그가 참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요."


오래전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상상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나 역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종종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행복이 보장된 이상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거기 머물면 지옥이 되는 법이다. 너도 나도 소유 중심의 가치를 지닌 채로는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는 멀다.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란 것도 없다. 나에게 마냥 행복만 안겨다 주는 사람을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한 시간과 공간은 '너와 나의 기쁨'을 선택하는 나의 작은 행동에서부터 펼쳐진다. 행복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는다. 날마다 기꺼이 행복의 순간들을 창조할 때 크고 작은 행복이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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