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나치수용소 생존자들의 공통점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7-15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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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실천할 일
자기주도적이고 낙천적 성격이 더 행복하다


"나는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외롭지도 않습니다. 수백통의 팬레터를 받을 뿐 아니라 건강하기도 합니다. 아무 부족한 것도 없을 뿐더러 미래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공허하고 불행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왠지 모르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데 난 그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릴린 먼로의 말이다.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세계적 스타가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먼로는 1962년 어느날 밤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유서에 짧은 글을 남겼다. '내 인생은 파장하여 문을 닫는 해수욕장 같아라.' 무엇이 그의 마음을 짙은 어둠속 흑암으로 끌고 갔을까?

많은 것을 가져도, 아니 모든 것을 가져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최고급 빌라나 펜트하우스에서 살면서도 사막이나 전쟁터같은 분위기의 가정이 있다. 반대로 좁은 집에서 소박하게 살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도 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행복에 대한 연구와 실험들이 이어지고, 행복한 삶의 비법을 담은 책과 강연들이 봇물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행복의 조건을 몇 마디로 공식화할 수 없다. 행복감은 다분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마음과 기질과 조건에 따라 차이가 크고 문화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 '행복' 추구할수록 멀어진다

행복의 역설 중 하나는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그 단어에 집착할수록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행복심리학이나 긍정심리학은 대개 우리를 배신한다.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을 발견하게 된다. 소위 '긍정'이라는 마인드 컨트롤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명시돼 있다. 행복추구권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기록된 토마스 제퍼슨의 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해야 할 '그 무엇' 혹은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한다. 오아시스를 찾듯 그것을 찾아 손에 넣고 소유하려든다. 이런 방식의 행복 추구는 신기루를 붙잡는 것과도 같다.

추구를 뜻하는 'pursue'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을 목표로 삼고 뒤쫓아간다는 의미다. 그런데 제퍼슨이 행복 추구를 말했던 1776년 당시에는 pursue는 훨씬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활동을 실천하다, 규칙적으로 하다, 습관적으로 행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실제적 의미를 따른다면 행복을 갈망하는 태도에서 이제 행복을 실천하고 누리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행복의 기회가 박탈당하거나 행복으로부터 멀어진 자신 혹은 타인의 권리를 찾게 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스스로 행복을 실천하고 선택하고 누리를 일일 것이다.

◇ 주인의식이 행복의 출발점

2005년 <국제 행동의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Behavioral Medicine)에 실린 게일 아이언스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주인의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회복탄력성이 높고 행복 증진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에이즈에 걸린 한 피실험자는 자기주도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인데, 그 누구보다도 어려움에 잘 대처하고 병증의 진행도 느렸다. 여러 사례를 연구한 후 아이언스 박사는 낙관주의와 행복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남을 탓하거나 신세를 탓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도적인 태도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둠이 짙을 때는 어둠을 탓하기보다 작은 촛불을 켜고, 폭우가 쏟아질 때는 구름 너머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것이다.

자기주도성이 약한 사람은 언제나 희생자처럼 행동한다. 문제에 대해 불평을 쏟아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한다.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탓할 것이 없으며 팔자를 탓한다. 죄책감이나 수치감에 사로잡히기 쉽고 분노와 슬픔을 일상의 양식으로 삼는다. 반면 주인의식을 지닌 사람은 실천가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 실패와 고통으로부터 교훈을 발견하고 그래도 감사한 구석을 발견해낸다. 편치않은 상황에서도 자기 안에서 평온함을 잃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수용소는 최악의 여건이었다. 가스실에서 죽임 당한 사람도 많았지만 굶주림과 영양실조, 질병으로 쓰러져 간 사람들도 많았다. 전쟁 후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마침내 살아남은 사람들을 조사해봤더니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수용소의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삶의 의미와 희망를 포기한 사람들이 먼저 쓰러져 갔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자기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매일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죄수복이지만 단정히 옷을 입었다. 마실 물이 모자라고 면도기가 없는데 면도가 웬말인가? 그들은 깨진 유리조각으로 기어코 면도했다고 한다. 빵부스러기를 나누어 주며 남을 돌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토르 플랭클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자유, 즉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빅토르 플랭클 역시 죽음의 수용소를 경험하고 생환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 자기배려의 기술, 기쁨의 선택

행복한 사람은 애써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삶에 충실하다. 자기를 배려할 줄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일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자기 배려'가 먼저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기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네 자신을 알라'를 삶의 철학적 모토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들에 의하면 그리스인들은 자기 지식보다 '자기 배려'를 우선적 가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가장 조화롭고 균형있게 관리하고 훈련하는 자기 배려의 기술을 소중히 여기고 신체적 지적 문화적 활동을 행했다. 즉 자기 지식과 자기 배려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고,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펼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떻게 자기 배려를 실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다. 신체적인 건강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일, 마음의 평화를 조성하고 절제와 균형의 감각을 지키는 일, 관조적 삶과 수련을 행하는 일, 지적인 자양분과 지혜를 선택하는 일, 다른 이들과 함께 문화적인 향유를 즐기는 일,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으로서 권리를 실천하는 일, 이 모든 일이 자기 배려의 활동들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실천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과일을 깎아먹을 때 좋은 접시에 담아 포크로 찍어먹는 일, 좋은 향의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일, 신체적 균형을 위해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일, 책 구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일, No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 불편한 관계나 모임에 억지로 가지 않는 일 등이다.

미국의 잡지 편집인 노먼 카즌즈는 어느 날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완치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그는 우연히 펼친 책에서 가슴에 다가오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다." 즐거운 마음은 좋은 약이다! 솔로몬의 잠언에 나오는 격언이다. 그는 그 글귀를 붙잡고 마음을 고쳐먹고 매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으려고 노력했다. 입을 U자형으로 펼치고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었다. 애써 웃음을 선택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움의 기운을 심어주었다. 웃음을 터트리고 유머를 말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어느 날부터 신체 통증이 차츰 줄어들었다. 병원에서 검사했더니 실제로 그의 골반 및 척추의 염증이 가라앉고 적혈구 침강 속도가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의학계는 이에 주목했다. 그리고 여러 연구결과 기분좋게 웃는 행위는 마취와 똑같이 몸의 통증을 잊게 해주고 염증완화 등 실질적인 치료효과까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웃음이 의학적으로도 효과가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카즌즈의 병은 완치됐다. 카즌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웃음의 효과에 대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웃음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그를 치료했다.

단지 웃기만 하면 모든 병이 무조건 치유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카즌즈의 사례는 우연의 일치이거나 예외적 사례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웃기 때문에 희망을 되찾고 웃음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 웃음만큼 행복할 수 있다. 그만큼 자기를 배려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 웃음이 전이될 것이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은 행복의 진정한 역설을 담고 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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