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긍정 마인드'가 만병통치약일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8-26 1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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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마인드 가져도 절망 경험하는 현실
가짜 가르침과 상품 구분하는 분별력 필요

명문대를 졸업한 한 젊은이는 언제부터인가 의식이 각성되거나 신체 감각이 변형되는 명상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던 그는 사업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심지어 자신은 불멸하는 존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업을 그만두고 하루종일 집에 칩거했다.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단숨에 큰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전히 믿으면서.

그런 삶의 스타일과 생각은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드는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자아'와 '마음'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다. 그 물결은 파고가 높고 폭이 넓어서 그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 물결은 긍정과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세련된 이름을 달고 온통 우리를 적시고 있다.

◇ 긍정의 배신

20세기 후반들어 '긍정'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긍정심리학과 웰빙 비즈니스같은 행복산업이 이를 구호로 삼았다. 많은 이들이 이에 솔깃해하면서 열광했다. '긍정' 프로그램은 그 어떠한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적극적인 사고와 능동적인 감정을 계발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삶이 달라질 것이고 행복감을 더 충만하게 느낄 것이며, 꿈꾸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마음만 바꾸면 자기를 성취하고, 세계 및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극단에 있는 것은 소위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간절히 열망하고 그것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면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과 언어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시 세팅해야 한다. 바라는 바를 문자로 기록하고 끊임없이 낭송할 것을 가르친다. 일종의 만트라 수련과 같은 행위와 기법들이다. 끌어당김의 행위는 마법의 만병통치약과 기적을 이루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자신이 정성을 모아 끌어당기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성공사례가 나타나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그 성취가 마법의 주문을 외운 결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믿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긍정의 배신을 경험하고 좌절한다. 현실이 나의 긍정심리와 끌어당김의 힘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긍정' 개념은 늘상 우리를 배신한다.

◇ '자아'를 부풀리는 풍선

긍정심리학이나 이와 관련된 기법들은 심리적 위안을 주거나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긍정만 강조하고 모든 부정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도식적이다. 마음을 살피고 성찰하는 작업의 초점은 부정적 감정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일에 모아진다. 더구나 우리 삶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심리적 작업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의 인식과 삶을 탈정치화하고 개인화해 버린다.

경쟁과 승자독식 문화, 강요된 궁핍과 불안정, 구조적인 양극화, 억압적인 질서와 일방적인 위계 관계 등 문제의 엄연한 배경을 면밀하게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불안과 고통의 원인이 마음에 있다고 보고, 오로지 자기 마음을 관리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한없이 자아가 부풀려지고 잘 되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 정반대의 경험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긍정의 힘이 약하고 끌어당기는 간절함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더욱 거기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마음챙김이나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에도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마음챙김이나 기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다. 심성도 바르고 이기적이지도 않다. 공익적인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들의 가르침이다.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와 팔고 있는 상품과 그 상품이 포장돼 있는 방식이 원본과 다르다는 것이다. 마음챙김 프로그램들은 불교에서 비롯되었지만 마음집중 훈련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만 집중할 뿐 흔히 불교의 근본적인 메시지는 소홀히 여긴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자비심과 그릇된 자아와 집착을 버리는 일과 온갖 도덕적 덕행은 대개 배제한다는 것이다. 기도의 힘을 강조하는 종교적 전통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가령 성서가 가르치는 근본 메시지는 자신을 부인하는 자아의 죽음과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런 가르침은 생략하고 기도를 통해 얻게 되는 심리적 효능과 복과 성공만 강조한다면 기복종교나 샤머니즘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긍정적인 것'은 좋은 것이다. 마음을 챙기는 자기돌봄 역시 필요하다. 기도와 대도와 같은 행위 역시 성스러운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들이 신자유주의적 문화에 포획되면서 자본주의적 영성 상품과 웰빙 프로그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행위를 통해 고통을 해소하거나 행복을 경험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것들은 대개 놀라운 효과와 성공적 삶이다.

마음챙김의 전도사들은 정서적 심리적 장애를 제거하고 집중력을 높여주고 직장과 학교에서 성과를 높여준다고 선전한다. 당장 삶에 필요하고 중요한 일들을 해결하는 비법으로 소개된다. 긍정심리를 터득하고 마음을 컨트롤하면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살벌한 정글에서 경쟁 우위를 지니게 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일종의 행복 복음, 경쟁 우위의 기술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복음은 자기계발 도서나 행복 강연만이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소셜서비스(SNS)와 온갖 매체를 통해 전파된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다양한 사업체들과 단체들이 성업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그 기원은 미국의 웰빙 산업과 미국식 영성이다.

◇ 식별 감각과 자기 결정의 지혜

'긍정 마인드'는 자아심리학과 행복심리학이라는 학문적 배경과 여러 종교적 전통과 수련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법 신뢰할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여러 현장에서는 거의 상품처럼 판매된다. '상품'이란 접하기 쉽고 사용하기 쉽고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실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 상품은 흔히 탐욕에 찬 개인이나 사업체들을 통해 싸구려 상품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동양적 전통에서 어떤 가르침을 분류할 때 정도(正道)와 외도(外道)와 사도(詐道)로 나누곤 했다. 정통과 비정통이란 도식은 그 기준이 모호하기 마련이지만 이들 개념은 우리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외도는 정도를 벗어난 유사 가르침을, 사도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속이는 거짓된 가르침을 말한다. 대개 거짓된 가르침은 사람들을 흡수하기 위해 거짓된 약속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신통한 효과를 맛보도록 연출한다. 사도의 지도자들은 가짜 약을 만들어 포장하여 상품화하는데 능하다. 이윽고 사람들을 속박하고 통제하여 거기에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맹신도로 만들어버린다. 정도와 외도와 사도의 차이를 구분하는 경계는 모호하고 알아채기 쉽지 않으므로 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별하고자 노력은 언제나 필요해 보인다.

페터 비에리는 '자기 결정'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결정을 강조한다. 그는 내적 독립성을 지니고 스스로의 삶과 신체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흥미롭게도 그는 식별력을 강조한다. 타인이나 어떤 가르침에 조종당하지 않고 거부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가 예로 드는 은밀한 조종의 목록들은 '최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입되는 광고, 속임수, 정보의 차단, 사람의 감정이나 두려움과 불안을 비열하게 이용하는 행위, 그 어떤 다른 생각의 형성을 못하게 만드는 세뇌' 등이다.

비에리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위만이 아니라 온갖 정치적 선전이나 광고나 이데올로기, 책들과 가르침, 영상콘텐츠와 이론들도 교묘한 조종의 도구에 해당된다. 그는 사유하는 태도를 지닐 것을 강조한다. 이는 교양을 쌓을 때 가능하다. 그가 말하는 교양이란 학문적 능력이 아니라 비판적 거리를 두고 스스로 사유하는 힘이다. 페터 비에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독서를 통해 풍부해지고 차별화되고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가르침이나 책, 뉴스와 광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치와 시선들을 접할 때 자신만의 뚜렷한 견해를 세우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긍정적 삶의 태도는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부조리한 현실과 자기 내면의 어둠과 고통조차 인식하고 기꺼이 껴안는 것일 때 건강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챙겨야 하고 신체 역시 건강하게 돌보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행위가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방식으로 치닫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자아를 한껏 부풀리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위무 행위에 그친다면 슬픈 일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야망과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과도한 열망과 절망감 사이를 오가게 한다면 그게 바른 기도일까.

왜 온갖 좋은 생각들과 가르침들은 우리를 배신할까? 그 이유는 모든 좋은 것들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이다. 정품과 유사품과 짝퉁을 구분할 일이다. 상품 소비자로 살 것인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창조해갈 것인가, 매일 우리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시장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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