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그렇다고 대충 살아야 하나?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9-14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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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도식은 거짓말
그래도 도전하는 자만이 자유와 기쁨을 누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대한 암벽

"우리 모두 속에 살고 있는 진정한 조나단 시걸에게"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은 이렇게 시작한다. 갈매기 조나단은 먹이를 찾기 위해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무리를 떠나 혼자서 비행한다. 홀로 공중에서 온갖 비행술을 연습한다. 수평비행, 공중회전, 수직 상승, 저속 곡예비행, 시속 340km에 이르는 초고속비행, 해발 2400m에서 날개를 접고 회전하며 급강하하는 수직낙하 비행 등 온갖 비행술을 터득한다. 그에게 비행은 자유라는 무한한 이상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제목이 흥미롭다. 이 책은 노력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폭로한다. 열심히 살고 열정을 다하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뻔한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말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한다.

공감하는 이유는 저자의 현실 파악이 우리들의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성실과 열정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특히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돈을 벌거나 부자가 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죽도록 일을 해도 남의 배만 불리는 불평등구조와 기울어진 운동장이 단단히 지층화되었기 때문이다.

우화 '개미와 배짱이'의 결말은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불황의 겨울이 닥치면 개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배짱이는 여전히 호화주택에서 파티를 즐기며 산다.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일하고 먹이를 저장해도 빚만 늘어나고 이자부담만 커진다. 불평등 불공정 사회다. 이제 열정과 사회적 성공이 비례한다고 말하는 설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정은 우리를 배신한다.

그렇다고 대충 살아야 할 것인가? 열정이나 도전이 필요없는 것일까?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꿋꿋이 살아가는 의지가 여전히 소중하다고 본다. 이 점이 저자에게 공감하면서도 책의 제목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다.

◇ 절실한 마음과 실천만이 삶 변화시켜

KBS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왕국'은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인기 프로그램이다. 날 것의 야생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 현실감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도시 근교의 새들의 세계를 방영하는 것을 보았다. 도심과 근교의 새들은 인근 숲과 전봇대나 주택의 처마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미 새는 부드러운 먹이를 물어와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 대여섯 마리 되는 아기 새들이 둥지에서 입을 쩍쩍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친다.

우리가 보기에는 어미가 골고루 먹이를 주는 것 같은데 어떤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고 어떤 새끼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비실비실 거린다. 왜 그럴까? 어미가 입을 제일 크게 벌리고 크게 소리 지르는 놈에게 먹이를 더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새끼는 빨리 발육하고 연약한 새끼는 점점 약해진다. 다른 형제들이 성장해 날개를 펴고 마침내 둥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대로 먹지 못한 아기 새는 쇠약해져서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야윈 채로 숨을 거둔다.

헛된 열정에 속지 않는 것도 지혜롭다. 무위의 유유자적함을 추구하는 길도 고매하다. 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은 소설이나 가상의 드라마가 아니다.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는 노동과 적극적 행동이 없이 절로 얻어지는 것이란 거의 없다. 따라서 일그러진 사회의 구조를 파악하는 인식의 힘과 실존적 자유의지 둘 다 필요하다. 우리를 제한하고 속박하는 구조의 힘을 알면 세상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 주목하면 허무와 허탈에 빠지기 십상이다. 구조의 규정성과 가공할 힘을 인식하고 분노한다면 이를 바꾸고자 하는 변혁의 의지를 지니는 것이 마땅하다. 나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최대한 추구하며 당당히 사는 것이 더 낫다.

◇ 도전하는 자가 기쁨을 누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몇 번 방문했다. 요세미티에는 암벽이 많다. 높이가 보통 수백m, 가장 높은 곳은 1000m 암벽이다. 모두 가파른 수직 절벽이다. 멀리서 보면 그 바위 위에 까만 점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암벽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게 중에는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암벽 사이에 군데군데 쉴만한 작은 공간도 있고 풀밭들도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암벽 등반을 하는 이들의 몸에 부착된 램프들이 별처럼 반짝인다. 한밤중에도 올라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암벽을 타고 내려온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 암벽을 끝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암벽을 아주 잘 타는 베테랑은 24시간이면 올라갑니다. 그리고 서툴면 더 걸리지요." 이틀에 걸쳐 올라간다고 가정해 보자. 암벽 등반가들은 자일에 몸을 달고 올라가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암벽에 매달려 잠을 잔다. 날씨가 좋으면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가끔 비바람이 쏟아질 때도 있고, 온도가 급강하 할 때도 있다. 높은 지대라서 여름에도 그곳은 매우 춥다. 혹시 추락하게 되면 그대로 즉사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등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또 질문했다. "그렇게 위험한데 왜 그렇게 올라가려고 하나요?"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암벽 꼭대기에 올라서는 순간 그 황홀한 기분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 기쁨을 정복의 기쁨이라고 가벼이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건 최악의 엉터리 설명이다. 그런 의미 부여는 경쟁과 정복을 강조하는 서구식 성공주의의 술어다. 구슬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 사람은 안다. 그것은 자기실현의 기쁨,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기쁨이란 것을. 자유란 속박을 거부하는 저항, 무한 자유를 추구하는 이상을 뜻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힘, 고통조차 껴안는 힘을 의미한다. 삶을 비관하기보다 기꺼이 받아들이고 당당히 나아가는 태도가 훨씬 낫다.

니체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후회하면 그 슬픔은 이루헤아릴 수 없으므로 차라리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고대 유대인의 지혜서는 한발 더 나아가 이렇게 권한다. "네 손이 발견하는 것이 무엇이든 힘을 다해 행하라." 이는 삶의 열정을 말한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에 손을 뻗어 선택하라는 것이다. 참여와 즐김의 태도를 말한다. 인생을 즐기라. 일을 즐기고 노동을 즐기라. 만남을 즐기고 뜨겁게 사랑하라.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축제를 누리라. 기회가 되는대로 여행을 하라.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가르침을 접하라. 그림도 그려보고 시도 쓰라. 책을 펴내거나 영상 제작을 시도하라. 공동체적 만남을 경험하라. 고통과 질병조차 벗으로 삼으라. 자기 생각과 주장을 유쾌하게 말하라. 파업에도 참여하고 광장에서 구호도 외치라. 식물도 가꾸고 반려동물들과 교감하라. 정원과 숲과 공원을 거닐라. 가족들과 아이들과 함께 뛰놀라. 속상하면 화도 내고 슬프면 울어라. 행복하라.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라. 당신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 힘을 다해 참여하라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살기로 했다. 조나단처럼 날개를 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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