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천재와 달인은 '한끗 차이'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3-20 08:00:03
  • -
  • +
  • 인쇄
천재는 99% 근면함으로 만들어지는 것
달인은 숙련도뿐 아니라 뜻을 이룬 사람

시카고 대학교수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aikszentmihalyi)가 학생들을 데리고 기관차 공장에 견학을 갔다. 그는 거기서 60대 초반의 용접공 조(Joe the Welder)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 공장의 기계설비의 구조와 기능을 독학으로 통달한 노동자였다. 조는 크레인, 컴퓨터, 장비나 기계 등 못 고치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 고장나면 그 원인을 파악해 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집 부근의 자투리땅에 멋진 분수를 만들었는데 밤이면 물보라 장관이 연출됐다. 함께 근무하는 용접공들은 그를 존경했다. 누구나 문제가 생기면 조에게 달려갔고, 그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 교수는 기업 총수나 유력 정치인, 노벨상 수상자 등 정상급 인물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조만큼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없었다고 칭송한다. 자기 일에 애정이 없이 시계만 보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리다가 곧장 술집으로 몰려가는 여느 미국 노동자들과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칙센트미하이의 시선과 평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조는 숙련된 노동자일 뿐 아니라 자기 일을 즐기는 자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자기 일터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뛰어들어 숱한 실험과 시도 끝에 노련한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다.

◇ 천재는 장인과 같은 노력의 열매

우리는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나 무언가 성취한 사람을 보면 쉬 주눅이 든다. 그간 나는 무엇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내 친구 중 하나는 머리가 영특해 한 번만 책을 훑어보면 그 내용을 죄다 기억하고 시험을 치면 늘 만점 가까이 취득했다. 나와 함께 놀고 똑같은 시간을 공부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지능지수가 높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서 항상 1등을 하거나 모두 정상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지능이나 재주가 뛰어난 사람보다 오히려 보통의 지능과 재주를 지닌 사람이 성실하게 노력해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천재론'이 유행했다. 모차르트를 비롯해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인 음악가들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특히 예술 영역에서 천재적 재능이나 하늘의 영감이 강조되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쇄기를 박았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몇몇 아포리즘에서 그 당시 만연했던 영감에 대한 믿음, 천재성에 대한 대중의 신비적인 경외감에 대해 해부한다.

그는 천재에 대한 미신을 걷어내라고 일갈한다. 그 미신은 '천재는 신성 즉 신의 은총으로 만들어지고, 희귀한 우연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는 대중의 신념이다. 니체는 이런 태도가 망상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효과를 위한 일종의 신비화로 간주한다. 니체는 천재란 수공업적인 과정을 통해, 장인의 정신을 가지고 반복적인 숙련으로 생성되어 마침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즉 천재는 대지로부터 만들어지며 자신의 신체를 숙련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남다른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지라도 반복적인 연습과 숙련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천재는 없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니체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소위 천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신화를 걷어내고, 누구든 자신의 신체와 노동을 통해 숙련된 천재가 되는 창조적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맥락에서 아인슈타인은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를 '99% 전념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1%의 영감이 없이는 안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말에 대한 잔인한 왜곡이다. 분명 그는 99%의 성실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천재란 근면함이다."

◇ 달인, 노동으로 어떤 뜻을 이룬 사람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은 언제보아도 흥미롭다. 달인들은 상품생산, 요리, 유통, 배달, 물건 쌓기, 포장 등등 자신의 노동 영역에서 능숙한 숙련도로 최상의 질과 생산 속도를 내어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단번에 알아채겠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성실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터에서 요령을 부리기보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연구하고 더 좋은 방법과 기술을 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또 그들은 대개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 카메라의 연출효과로만 보기에는 순전한 생기와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들의 얼굴과 몰입된 동작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 맛보는 기쁨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중국에서 오래 지낸 한 친구가 중국과학원의 한 저명한 학자로부터 의미 깊은 말을 들고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자어에 窮(궁)과 達(달)이란 글자가 있다고 한다. 문자적으로 보면, '궁'은 가난과 궁핍을 의미하고, '달'은 이룸과 성공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의 뜻은 달랐다고 한다. 원래 궁은 '뜻을 이루지 못함'을 의미하고 달은 '뜻을 이룸'을 가리킨다. 즉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궁한 사람이며, 반대로 뜻을 이룬 사람이 달한 사람이자 진정한 성취자란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궁과 달의 뜻이 크게 왜곡됐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궁한 사람이자 패배자가 되고, 물질을 풍족히 소유한 자가 달한 자요 출세한 자요 성공자로 대접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 학자가 던진 말이 빛처럼 다가왔다. 그렇다. 누가 가난하고 곤궁한 자인가? 뜻이 없는 자이다. 뜻을 모르는 자이다. 그 뜻을 이루고자 애쓰지 않는 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달인이란 자신의 뜻과 삶의 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일 게다. 생활의 달인들은 단지 숙련도가 높고 손재주가 있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 뜻을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달인이 될 수 있다. 단 한 사람만이 달인인 것이 아니다.

◇ 우리 삶은 하나의 예술작업이자 고귀한 작품

모든 사람이 소위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 숙련 노동자나 달인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오늘날 만연한 '노동의 소외'를 희석시킨다면 얼토당토않을 뿐 아니라 간교하기조차 하다. 사실 일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노동의 소외'를 절감한다. 일을 해도 그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되고, 기계화와 생산 계통으로 거대한 생산라인의 한 부품처럼 움직여 노동과정에서 비인간화되고, 장시간 노동으로 행복추구권이 훼손되고, 노동의 대가가 오로지 돈으로 환산되는 임노동 구조에서 노동 소외는 구조화되었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이나 AI 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소외는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능가하는 챗GPT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노동의 소외를 이유로 자신의 노동과 삶에 대해 허무적 태도를 지니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인간화된 노동을 인간화할 길을 찾아야 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을 창조적 활동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단조로운 노동을 창의적으로 전환시키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연대적 기쁨을 누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노동은 인간적이자 생태적 노동 그리고 쉼이 있는 노동일 것이다. 그런 이상적 노동 환경과 삶의 품격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으며, 그 생산물을 함께 향유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숙련 노동은 타인에 의해 요구되거나 강제되어야 할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숙련은 스스로 선택하면 좋을 자기 입법의 숙제에 가깝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작업이자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경험에서 나온 고백은 언제나 심금을 울린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인 미하일 간트바르크(Michael Gantvarg)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어느 정도 정상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내려간다." 발레리나인 강수진도 비슷한 말을 했다. "더 못한다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예술 인생을 끝난다." 그렇다. 우리 삶이 하나의 예술작업이자 고귀한 작품이라면 여정을 멈출 수 없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당장 코앞에 닥친 국제환경규제..."대-중소기업 상생으로 대응해야"

급박하게 돌아가는 환경통상규제를 적시에 대응하려면 공급망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대중소기업 상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

빙그레, 탄소중립 실천·자원순환 활성화 MOU

빙그레가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E-순환거버넌스와 탄소중립 실천 및 자원순환 활성화를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업무협약

포스코, 해수부와 '바다숲' 조성 나선다

포스코가 블루카본과 수산자원 증진을 위해 바다숲을 조성한다.포스코는 24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해양수산부, 한국수산자원공단 및 포항산업과학연

두나무, 사내 ESG캠페인으로 1년간 1만8000kg 탄소감축

두나무가 임직원 대상 ESG 캠페인을 통해 지난 1년간 약 1만8000kg의 탄소를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24일 블록체인 및 핀테크 전문기업 두나무는 지난 1년

HLB글로벌, 자원환경사업 소비재기업으로 물적분할

HLB글로벌이 모래 등 골재를 채취해 판매하고 있는 자원환경사업부를 물적분할해 B2C, D2C 등을 주력으로 하는 소비재 전문기업으로 분사시킨다.HLB글로

'재활용 기저귀' 일본에서 판매...'세계 최초'

재활용 기저귀 제품이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출시됐다.최근 마이니치신문은 일본의 위생용품 기업 유니참이 20일부터 규슈의 쇼핑센터와 자사의 온라

TECH

+

LIFE

+

순환경제

+

Start-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