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NO'라고 말할 수 있는가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4-05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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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욕구를 통제하도록 학습된 우리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

애리조나 노천 고물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사꾼들이 이런 저런 돌들을 가판대 위에 올려놓고 헐값에 팔고 있었다. 기묘한 모양의 돌, 이색적인 무늬나 특이한 색이 담겨있는 암석들이 즐비했다. 한 남자가 전시된 돌들을 구경하다가 어떤 암석 덩어리를 유심히 살폈다. 주인과 가벼운 흥정을 거쳐 몇 달러를 주고 그 암석을 들고 이내 사라졌다. 그 시장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게 별 볼일 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예리한 눈에는 그 돌이 평범한 암석 덩어리 이상으로 보였다. 그 사람은 전문 보석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그 암석에서 보았다. 그 돌 속에는 값비싼 에메랄드가 숨겨져 있었다. 뉴욕의 감정사들은 그것이 미국에서 발견된 에메랄드 가운데 몇 개 안되는 완벽한 보석이며 수백 만 달러의 가치가 나간다고 감정했다.


이 실화는 흔하디흔한 대박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상의 메시지가 있다. 평범한 것 속에 숨겨져 있는 어떤 가치를 보는 눈을 지녀야 함을,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 속에 담겨있는 보석을 발견해야 함을 일러준다.

모든 사람이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들과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이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왜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는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부질없고 허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를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치를 지켜낼 수도 없고 삶을 향유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 존엄성 인정하고 보호하는 주체는 '자신'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비폭력대화(NVC) 운동을 시작한 마셜 B, 로젠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가를 깨우치기보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비교하고, 요구(강요)하고, 비판하는 말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다." 이를 가르친 이는 교활한 사람들이 아니다. 부모, 선생님, 성직자나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전수하는 이들이 선의로 이를 가르쳤다. 이런 훈육을 통해 우리는 제약하는 것들을 배웠다. 자신의 인간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읽어내고 삶을 향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막아버리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단념하고, 그 대신 권위자에게 복종하고 다루기 쉬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심지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이기적'으로 간주되고 무언가 결핍된 사람으로 단죄될까 항상 조심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누릴 일차적인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와 느낌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당할 때 침묵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인격, 자유, 신체, 공간, 권리가 침해당할 때 이의를 제기하고 구체적인 시정을 요구하는 당당함과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중하고 명료하게 '아니오'(No!)를 말할 줄 알 때 정서적 노예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남 눈치를 보며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자기 비하와 자기 혐오로 몰아가는 습관을 내버릴 일이다. 자신의 특별한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삶을 사는 출발점이다. 내면적으로 스스로에게 폭력적이면 삶을 향유하기도 어렵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기

52세의 한 독일 여성이 상담사를 찾았다. 알 수 없는 심각한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그녀는 체육교사로서 건강한데다가 늘 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아프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은 만성 근육 통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트레이닝 복을 입은 그녀는 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난 10년 전부터 남편을 돌보고 있어요."
"사람들이 당신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겠군요."

그녀는 자신이 고생스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도 많고, 화초도 가꾸고 있다는 등 그 이유를 나열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요? 다르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나요?"
"아니오!"

그녀의 환한 표정이 단숨에 사라졌다. 불안의 그림자가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과 자기애를 혼동했던 것이다. 상담사는 그녀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내 아이들과 남편을 사랑해요. 그리고 내 일, 학생들, 정원과 텃밭, 산, 천둥과 번개, 태양, 햇빛이 거실에 만드는 동그라미 그림자, 벼룩 시장, 우리 집, 요리 책, 여행 …"

목록이 점점 길어졌다. 그 여성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배우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아마 허리 통증은 그 신체적 징후였을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쉽게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남을 돌보고 사랑하느라 자신을 내팽개치는 경우도 흔하다. 그 결과 번아웃(Burn Out)에 빠진다. 번아웃, 즉 탈진은 연료가 다 타버려서 더이상 아무런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곧잘 겪는 증상 중의 하나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 자원봉사자, 비영리활동가, 돌봄 노동자 등에게 흔한 일이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무한 돌봄은 결국 고갈된다. 쉼이 없는 과잉 봉사는 일종의 자기 착취일 수 있다. 쉼이 필수적이고, 안식일과 안식년도 필요하며, 여행과 심리적 물질적 보상도 주어져야 마땅하다.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능력은 당연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교 윤리의 지침이 되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이 텍스트를 이웃을 사랑하고 돌볼 때 마치 자기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 지극 정성으로 하라는 방식으로 해석했다. 이제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고 큰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다. 먼저 자기 몸을 사랑하는 이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이웃 사랑의 기초는 바로 자가 자신에 대한 사랑에 있다고.

◇ 지금 향유하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축복된 삶이다. 정글의 법칙에 지배하는 듯이 보이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일이 급하고,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고통과 시련에 맞서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삶이란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이 아니다. 삶을 향유하는 것은 권리다. 우리는 미래의 언젠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현재'를 양보하고 포기해 버린다. 하지만 우리 삶의 가장 큰 선물(present)은 현재(present)에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 즉 지금 이 자리에 현존(presence)하여야 한다.

로욜라 대학교 교수인 프레드 브라이언트(Fred B. Bryant)는 삶의 향유를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향유하기(savoring)는 단순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주어지는 크고 작은 기쁨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음미하는 과정'을 누릴 때 진정한 향유가 가능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 누구를 만나든, 여행을 하든, 음악을 듣든, 작업을 하든, 어떤 음식을 먹든 그 과정을 즐기고 주의를 기울이고 심취하는 일이 그것이다. 즉 향유는 즐겁고 행복한 체험과 함께 이를 조절하는 마음 챙김과 밀접하다. 무엇보다도 향유는 '지금-여기,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면 현재를 향유할 수 없다. 그 미래가 오리란 보장도 없다. 이런 태도는 삶의 향유를 방해할 뿐 아니라, 다른 목표들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현재도 미래도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난 2월 대안연구공동체 강좌에서 '공동체'에 대한 책을 읽고 대화했다. 수업 말미에 한 참가자가 제안했다. '공동체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공동체 현장을 한 번 방문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도봉구의 오늘공동체를 섭외해 방문했다. 10명이 참가했다. 오늘공동체에서는 우리를 환대하고 생활공간을 일일이 보여주고 공동체 맴버들과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공동체의 소박하고 맛깔나는 식탁에도 참가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책 읽는 시간을 향유했으며, 토론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을 향유했고, 만남을 기뻐했으며,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기쁨에 전이되었다. 향유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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