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평범하지 않은 15명의 특별한 전시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7-18 08:30:02
  • -
  • +
  • 인쇄
▲'2023 여름이야기' 전시회를 연 '다림방' 작가들


지난주 서울 압구정 라인갤러리에서 이색전시회가 열렸다. 희망의 집 작가 15인의 '2023 여름이야기' 전시회가 그것이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단아한 벽면에는 이들이 그린 회화들이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느 전시회와 다른 점은 작가들이 모두 중증 신체장애인들과 느린학습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강원도 가평 꽃동네에 살고 있다. 수녀들과 자원봉사자 및 후원자들의 사랑으로 운영되는 꽃동네가 이들을 위한 작업실 '다림방'을 열었고, 평생 붓을 잡아본 적이 없는 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문화예술기획자 이혜경 씨는 전시회를 연 동기와 기획의 초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분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해 드리고 싶었어요.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했는데 그 때마다 제가 행복했어요. 가평 꽃동네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데 언제나 충만한 기쁨을 느껴요. 특히 그림은 치유효과가 크지요. 다림방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자긍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너무 행복해 해요. 그림을 전혀 그려보지 않았던 분들인데 회화 실력이 놀랍게 성장하고, 놀라운 작품 이미지를 그려 내기도 해요. 뜨개질 하는 두 분을 발견했는데 이번에 뜨개 작품을 공개해서 공예작가가 되었어요. 구석진 곳에 사시는 다림방 작가들이 압구정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작품들 앞에 서보았다. 투박한 선들과 짙은 원색들도 조형된,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구별할 수 없는 회화 이미지들이 말을 건다. 전문적인 아티스트의 작품과는 분위기나 결이 전혀 다르다. 교과서적으로 쳐다보면 초보자나 어린이의 그림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기발한 상상의 세계와 원초적인 순백의 파장이 일어난다. 이런 감응을 일으키는 전시회는 흔치 않을 것 같다. 기묘하고 낯선 이 미학적 울림의 정체가 무엇일까?

격주로 꽃동네를 방문해 이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있는 이상미 섬유예술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작가들이 장애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장애인작가라는 수식어도 불편해요. 이들의 작품은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차원이 있어요. 가끔 특이한 정신세계를 묘사하거나 장애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서구 작가들도 있는데, 이 작가님들과는 크게 달라요. 그건 작가의 작품 기획과 전략에 따라 무언가를 흉내내고 만들어낸 것이잖아요? 꽃동네 작가님들은 자신들의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작품을 그렸어요. 작품에 그분들의 존재와 내면이 그대로 나타나요. 존재의 순수함이 원색적으로 묻어나오는 거죠. 그래서 다른 모든 작품들과 구별되는 차이성이 일렁거리죠. 우리와 같은 회화 작가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감각과 이질적인 정서가 담겨있어요. 제가 이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어요."

▲'다림방' 작가들의 전시작품들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작품을 구매했다. 40여점의 작품들이 완판됐다고 한다. 장애인을 돕는다는 시혜적 마음으로서가 아니라 그 작품들과 삶의 이야기에 담긴 어떤 예술적 진실에 매료되어서다. 전시회를 방문한 이들과 작품을 구매한 이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 이혜경 씨에게 물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아시아모델 페스티벌 회장, 서울시의원, 아나운서, 중구예총 회장, 이대 동문들, 시니어 모델들, 더조이플러스 여자축구단원 등이라고 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방문해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단다. 가슴이 훈훈해졌다. 다림방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이 가평의 작업실과 연결되고 있다!

날 것의 삶을 담은 그 작품 앞에서 관람자들은 순수해진다. 온갖 구별이 사라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해묵은 도식도 깨어진다. 이것이 2023 여름이야기다.

한 사람의 방문자로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작가들과 대화도 나눴다. 가슴 아픈 삶의 사연들도 듣게 됐다. 한 중년작가의 경우 열 손가락에 지문이 없었다.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으며 거친 노동을 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이다. 다림방 작가들의 지문들이 궁금했다. '2023 여름이야기' 전시회는 강렬하고 순수한 꽃 이야기의 향연같아 보였다. 갤러리를 나서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 어느 꽃이 이 꽃들만큼 아름다울까?'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삼성가전' 전기료 공짜거나 할인...삼성전자 대상국가 확대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절전을 넘어 전기요금 할인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삼성전자는 이탈리아 최대 규

[ESG;스코어]서울 25개 자치구...탄소감축 1위는 '성동구' 꼴찌는?

서울 성동구가 지난해 온실가스를 2370톤 줄이며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감축 성과를 기록한 반면, 강남구는 388톤을 감축하는데 그치면서 꼴찌

대·중견 상장사 58.3% '협력사 ESG평가 계약시 반영'

국내 상장 대·중견기업 58.3%는 공급망 ESG 관리를 위해 협력사의 ESG 평가결과를 계약시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소기업중앙회가 올 3분기까지

KGC인삼공사, 가족친화·여가친화 '인증획득'

KGC인삼공사는 성평등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족친화인증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여가친화인증을 획득했다고 15일 밝혔다.가족친화인증제도는 일

LS전선, 美에 영구자석 공장 세운다..."희토류 공급망 다변화"

LS전선이 미국 내 희토류 영구자석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LS전선은 미국 버지니아주 체사피크(Chesapeake)시에 투자 후보지를 선정하고 사업타당성을

한국거래소 '한국형 녹색채권' 상장수수료 면제 1년 연장

'한국형 녹색채권' 상장수수료 면제가 1년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1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거래소가 정부의 녹색채권 활성화 정책 지원을 위해 '한

기후/환경

+

EU '2035년 내연기관차 금지' 철회?..."현실적으로 힘든 규제"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철회할 것으로 보인다.EU 집행위원회는 2035년부터 신차 탄소배출량을 100%

내년도 기후기술 R&D 예산 1531억원...73.5% 증액

내년도 기후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이 1531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 883억원보다 무려 73.5% 증액됐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6일 서울 프레지던

배출권 유·무상 할당기준 '업체에서 사업장으로' 바뀐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유·무상 할당기준이 업체에서 사업장으로 바뀐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배출권 할당의 예측 가능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

강화도 하천서 물고기 400여마리 '떼죽음'...무슨 일이?

인천 강화도 하천에서 물고기 수백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4시쯤 인천 강화군 하점면 목숙천과

'환경교육 의무화' 고등학교와 특수학교까지 확대한다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만 의무화되던 '환경교육'이 고등학교와 특수학교로 확대된다. 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도 환경교육을 의무적으로 받

'알프스 빙하' 10년내 사라진다고? "되돌릴 수 없다"

유럽 알프스 빙하가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프스 지역 빙하는 2030년대 초반 소멸 속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