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낯설고 맑은 도끼질 –한강의 <소년이 온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10-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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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독자들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느낌을 갖는다. 카메라의 초점은 518 현장의 상황들과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기억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하지만 보통의 다큐 영화와 달리 독자들은 전율하게 되고 울컥하게 되고 깊이 감정 이입된다. '서사'의 농도가 짙고 화자들의 발화가 아프고 충격적이고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흑백 영화인데 핏빛이 가득하고 무성영화인데 비명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우리의 판단력과 지성만이 아니라 파토스(pathos)조차 마구 흔들어대는 어두운 서사는 책을 덮고서도 우리 몸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질문들에 대답하는 증언들

이 소설은 우리들의 오랜 질문에 답한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수십 년간 광주 시민들과 이 땅의 젊은이들이 목 놓아 불렀던 '오월의 노래'의 절규에 대해 소설 속 화자들은 증언하며 대답한다. 소년은 죽임 당한 시신들의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맡아 참상을 그대로 목격한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11쪽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 갔어." 47쪽
"우리들의 몸에 달라붙어 썩어가던 피 묻은 옷들이 가장 먼저 타서 재가 되었어. 다음으로 머리카락과 잔털들이, 살갗이, 근육이, 내장이 타들어갔어." 61쪽

시신들은 말한다. 우리들은 총에 맞았고, 살육 당했으며, 시신이 되어 실려 갔으며, 불태워지고 땅에 묻혔다고. 살아남은 자들과 희생자들의 주변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무력했고, 총을 쏠 줄 몰랐으며, 우리 군대에 의해 구타당했으며, 고문당했고,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군인들은 잔혹하게 총검을 휘둘렀으며, 시신들은 참혹하게 훼손되었다고, 우리는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고, 더러는 견디다 못해 자살했고, 살아남은 나 역시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대조적으로 학살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증언은 산 자들의 증언과 죽은 자들의 증언이라는 양 축으로 전개된다. 산자들은 예외 없이 악몽을 꾸고, 침묵을 강요당하며 감시받고, 더러는 실성하거나 삶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다. 죽은 혼령이 직접 말하고, 산 자의 기억과 꿈속에 나타나 말을 걸고 양심을 건드린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갖 사물들도 증언한다. 총알 자국, 기관총 흔적 가득한 건물들, 병원들, 상무대, 무덤들, 망월동 묘역의 시신들도 말한다. 아직 파묘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숱한 시신들과 학살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묘'와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의 영상 이미지로 우리를 이끄는 듯 하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시신들이 묻힌 미지의 땅들과 그 안의 유골들이 아우성친다. 파묘하라, 파묘하라. 다 드러나리라.

매우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탐구 작업을 실행하는 등장인물도 하나 있다. 제자의 발걸음과 흔적을 따라 가는 소년의 중학교 선생이 그다. 그는 사건의 현장들과 학생기록부, 온갖 역사 자료들을 추적한 후 마침내 얼굴 사진이 없었던 동호의 비석에 사진을 붙인다. 그의 족적은 웅성거리는 소설 속의 목소리와 절규들을 단단하게 보충한다. 보다 명료하게, 훨씬 객관적으로.

독자들은 소설의 메시지를 짐작하게 된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다. 어린 소년과 소녀들도 거기 있었다. 대부분 총을 쏠 줄도 몰랐고(127쪽), 쏘지도 않았다(117쪽). 그들은 일방적으로 당했다. 그들은 애국가와 아리랑을 불렀다.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59쪽). 시신들 위에 태극기를 덮은 그들을 바로 우리 군대가 총을 쏘아 학살했다(59쪽). 이 소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물음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마지막 날 도청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과 어린 소년들이 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 왜 총을 들고 고집스럽게 찾아왔을까?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언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114쪽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184쪽

◇ 낯선 문체의 생경한 마법

소설 속 화자와 시점이 수시로 바뀐다 ; '너'에게 말하는 2인칭 화자(1장 어린 새), 죽은 정대의 1인칭 화자 시점(2장 검은 숲), '그녀'가 당한 수욕을 관찰하는 3인칭 화자(3장 일곱 개의 뺨), 수감과 고문 트라우마로 시달리며 선생에게 말하는 1인칭 '나'(4장 쇠와 피), 밤 내내 깨어 기억을 소환하며 열여덟 살 '당신'에게 말하는 '나'(5장 밤의 눈동자), '아들의 죽음으로 30년 실성하여 살아온 소년 엄마의 1인칭 독백'(6장 꽃 핀 쪽으로), 소년의 선생의 1인칭 관찰과 고백(에필로그).

독자에게 읽기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이러한 시점 바꾸기는 결코 친절하지 않은 소설 작법이다. 알다시피 1인칭의 고백과 2인칭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이는 한강의 글쓰기 전략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고백적 증언과 대화 방식만큼 생생하게 전달되는 언어가 어디 있을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모든 것을 알고 해설하는 화자는 그 어느 장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소설의 초점이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을 재구성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은 소설 속 화자가 '되어' 그들의 입으로 말한다. 글을 쓰고 있는 한강은 '나' 혹은 '너'가 되고, '소년'과 '소년의 엄마'가 되고, 죽은 혼령이 되고, 선생이 된다. 죽은 혼백으로 말하는 정대의 목소리(2장), 소년 엄마가 전라도 사투리로 뱉어내는 애틋한 기억의 진술(6장)은 압권이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볼까." 22쪽
"우리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 내 몸이 완전히 다 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어." 46쪽, 62쪽
"어쩌그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 했는디. 향긋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191쪽

인간의 몸을 벗은 사자의 시선과 목소리를 만남으로써, 전라도 방언이라는 구수하고 다정한 파롤(parole)을 접함으로써 독자들은 낯선 읽기 경험을 하며 글맛에 젖는다. 이는 들뢰즈가 강조한 '되기'(devenir, becoming)의 흥미로운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되기'를 실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는 작가의 비작가-되기, 다른 것-되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되기로 자신의 몸 감각을 변용하여 소설 속 화자의 정서(affect)와 신체 감각과 언어로 말한다. 아마 그 순간, 작가는 '그 다른 존재'로 빙의되었거나 심리적으로 깊이 융화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생생한 증언들의 빛줄기를 발산하는 것은 이처럼 작가가 피해자 되기, 증인 되기, 목격자 및 관찰자 되기를 능란하게 구사하여 화자와 문체를 다양하게 변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 야만과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 이야기 

소설 속 화자들, 특히 살아남은 자들과 그 가족들은 절규한다. 사람으로서,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죄다 상실한 채 무너진다. 군인들은 체포된 이들을 극한까지 괴롭히며 이렇게 조롱한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진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라는 것을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 119쪽.

고문 생존자의 몸에는 트라우마 물질이 남아 끝까지 괴롭한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유사하다. 베센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증세를 수많은 사례를 들어 말해준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기억'으로 고통을 받으며 악몽을 꾼다. 트라우마는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대부분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콜크는 트라우마는 마음과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능력조차 변화시킨다고 진단한다.

치료 약물이나 술로써 견디기 힘든 감각과 기분을 일시적으로 둔화시키거나 잠시 잊게 하여도 몸에는 그 상처가 계속 남아있다. 그들의 몸이 말한다. 그들은 과거에, 그 공간에, 그 시간의 기억에 갇힌 채 살아간다. 불가능성의 상태, 아무 것도 즐거워할 수 없는 상태, 매순간 기억의 파편들이 삶을 찌르기만 하고 아무리 애써도 회복이나 행복 따윈 맛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삶 자체를 어찌할 수 없는 고문으로 만들어버린다. 소설 곳곳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폭력과 잔혹한 살상의 장면은 인간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국가 폭력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당신들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무대 위 배우들은 연기를 하며 이렇게 외치고 있다.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입 모양만으로 말한다. 모든 표현물과 공연이 검열당하고, 언론이 통제되고, 진실이 숨겨지는 현실을 무대 위 '무언으로 말하기'(mouthing) 연기로 풍자하는 듯하다. 우리 삶이 하나의 연극같은 무대라면 이제 우리가 지녀야할 것은 입술로나마 말하는 용기와 독순술(lip reading)이라는 듯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만난 몇몇 증인들이 떠올랐다. 1980년 적십자 병원 바로 옆에서 살며 모든 장면을 목격한 하계동에 사는 80대의 할머니, 518 현장에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돼 그 충격으로 오래 정신적 장애를 겪고 탈모증상으로 고생했던 고교 친구의 형, 자신의 친형이 그 마지막 날 밤 도청을 사수하다 옥상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 동기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에케 호모, 이 소년을 보라! 열다섯 살 소년 동호, 그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누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 밤 도청으로 되돌아왔다. 소년이 온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선생인 나는 따라 걷는다(213쪽). 동호가 나를 향해 웃는다. 소년이 우리를 이끈다. 가장 순수하고 존엄한 삶이 무엇인지를.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곳으로, 꽃이 핀 곳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213쪽

자그마한 책인데 그 속에 부르짖음이 참 많다. 아픔이 크고 슬픔이 길고 질문도 많다. 다 읽고 나서도 맑고 낯선 도끼질은 계속된다. 어디선가 카프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의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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