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7-10 10: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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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굴 미추로 자신과 타인을 쉬 판단해
'얼굴'은 우리를 부르는 윤리적 호소이기도 해

옛날, 왕가의 초상화나 웅장한 종교화를 주로 그리던 한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날 왕은 그에게 큰 성당을 지으면서 성당 벽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그림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와 가장 추하게 생긴 악마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 화가는 천사와 악마의 모델이 될 만한 얼굴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어느 목장에서 한 목동의 얼굴을 발견하고 데려다가 그를 모델로 천사의 얼굴을 그렸다. 하지만 악마의 얼굴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년간 흉측하고 징그럽고도 요사스런 얼굴을 지닌 모델을 찾다가 중단했다. 15년 후 어느 마을 구석에서 짚더미 위에 쭈그려 앉아있는 한 거지를 발견했다. 얼굴이 흉측하고 사나워보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살인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포악한 자라고 말하며 두려워했다. 화가는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가서 그 거지를 설득했다. "모델이 되어 주면 많은 돈을 드리겠소." 그 거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리,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저는 18년 전 천사의 모델을 한 바로 그 목동입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작가 이원복 교수가 만화집 <사랑의 학교>에 '마음이 고와야 얼굴이 곱다'라는 제목으로 그린 이야기다. 우화로 보인다. 서구에서는 여러 버전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 궁중화가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그 얼굴의 주인공을 청년 '반디넬리'로 꾸민 이야기도 있고, 그 화가를 미케란젤로로 구성한 버전도 있다. 실화이든 우화이든 이 스토리가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얼굴은 변한다는 것이다. 천사의 얼굴이 악마의 얼굴로 바뀔 수도 있다. 그 역도 가능할 것이다. 얼굴은 영혼의 창이자, 그 사람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 성형을 하면 아름다워질까

아름다움은 얼굴에 나타날까? 답은 '그렇다'이다. 그 사람의 내면의 향기와 삶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그 사람의 얼굴의 윤곽과 피부 색깔로 '미남·미녀vs 추남·추녀'를 규정하는 미(美, beauty)의 코드가 지배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화장품과 화장술이 발달하고, 피부관리 업체와 성형외과가 성업하고 있다. 얼굴에 수술 매스를 대지 않은 '자연미인'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종종 중국을 방문한다. 중국의 부호들이 자신의 부인과 딸에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은 한국의 강남에서 성형수술을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성형한 고객에게 성형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공항의 출입국 심사에서 여권의 사진과 실물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한다. 이렇게 얼굴을 바꾼다고 사람이 아름다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형을 위한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재난이나 사고로 얼굴이 손상된 사람이나 안면 골격이 뒤틀리거나 외과적 질병이 있는 경우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성형하는 경우도 흔하다. 성형 중독이 아니라면 이러한 선택을 긍정해주어야 할 이유는 적지 않다. '얼굴'은 자기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자 자존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아름다움은 얼굴의 형상과 윤곽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얼굴에는 문화적 코드가 작동해

몇몇 프랑스 철학자는 '얼굴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미추의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들뢰즈는 얼굴이란 '흰 벽에 숭숭 뚫린 검은 구멍의 체계'라고 비유한다. 즉 인간의 모든 얼굴은 예외 없이 흰 바탕 위에 검은 구멍이 나 있는 형태라는 것이다. 눈, 코, 입, 귀가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얼굴은 '구멍을 가진 달의 풍경'이라고 묘사한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얼굴들은 '얼굴성'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백인의 얼굴과 흑인의 얼굴을 대조하고, 미녀와 추녀를 구별하고, 얼굴에 등급을 매기고 성모의 얼굴과 성자의 얼굴을 신성시한다. 이는 자연적인 얼굴 즉 있는 그대로의 얼굴에 기호적 의미, 문화적 코드가 가미되어 특정한 블록으로 영토화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헐리우드 배우들의 얼굴과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이 아름다운 얼굴의 모델이자 흠숭 대상이 된다. 거기에다가 인종주의적인 기호가 첨가된다. 백인의 피부와 얼굴형은 좋고 흑인의 피부와 얼굴을 나쁘다는 식이다. 흰 표면 위에 난 구멍들의 배치와 이를 둘러싼 윤곽, 그 위에 덧칠된 색소들로 온갖 등급을 매기는 셈이다. 하지만 깊이 사유해 보면 이는 백인이 지배하는 지구촌 질서의 문화적 코드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나아가 얼굴에는 종교적 코드와 성스러움의 요소가 가미된다. <천 개의 고원>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얼굴은 보편적이지 않다. 그것은 모든 보편적인 것의 얼굴이다. 슈퍼스타 예수.' 흥미롭게도 회화나 영화를 보면 이 예수의 얼굴은 흔히 파란 눈을 한 백인 얼굴을 하고 있다. 즉 인종적 문화적 코드로 그려진 예수상인 것이다. 철학자 데리다는 '백색신화'(white myth)라는 말로 이러한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코드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하얀 피부를 지닌 배우의 얼굴과 외모를 아름답고 고급스럽고 멋지게 보는 우리의 인식의 기저에는 이러한 기호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얼굴성 담론의 핵심은 해체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이름 아래 얼굴의 제국을 만들고 사람들을 구별 짓고 함부로 판단하는 얼굴의 기표 위계와 차별 구도를 탈주하라는 것이다. 우리 중 그 누가 이러한 미추 개념과 얼굴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 얼굴에서 무엇을 보는가

우리는 얼굴에서 많은 것을 본다. 그 외형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챈다. 감정 상태, 메시지, 성격, 취향, 삶의 흔적, 건강 상태, 숨겨진 메시지, 태도 등등을 한꺼번에 감지한다. 이는 애써 분석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으로 알게 된다. 기본적인 교양이 있는 자라면 외모나 얼굴로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한 사람이라면 자기 얼굴에 마냥 도취되거나, 반대로 열등감이나 비교의식으로 의기소침해 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보여주고, 타인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철학자이자 유대교 랍비인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라는 화두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그는 '존재'(being)라는 주제가 아니라 '윤리'(ethics)가 철학의 제1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우리 삶은 '타자'에 근거해 있는 것이지 '타자'가 우리 삶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는 "타자가 우리에게 호소(appeal)한다면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얼굴'로 우리에게 호소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고통에 빠진 사람은 말로써 무엇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로 말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수렁 안에서의 몸부림이며 들리지 않는 비명이자 신음이다. 즉, 약자의 얼굴로 우리와 마주하는 그·그녀는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 호소하고 있는 것이며, 그때 우리는 응답해야할 어떤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다. 그가 말하는 윤리는 타자를 자기 존재의 집 안으로 받아들이는 환대의 윤리다. 이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통해 시작된다. 이러한 통찰은 외형적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피부색, 육감적 요소에 관심을 가지는 우리에게 근원적인 망치질을 하고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레비나스에게서 뒤집어진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존재를 만나며 그 울부짖음과 요청을 접하며 반응하게 된다.

가끔 강동구의 한 공간을 찾는다. 청소년 밥상을 함께 하고 투박한 손길로 설거지를 하곤 한다. 그 공간은 느린학습자들과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문화놀이터이자 사회적 자립을 배워가는 대안교육기관 와플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곳이 거의 없는 청소년들이 거기서 어울리고 학습하고 행복해 한다. 나 역시 그곳에서 마냥 즐겁다. 나이차도 크고 내가 할 일도 별로 없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나에게 아는 체를 하고 먼저 인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를 환영하고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질문이 생겼다. 내가 환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로부터 환대받는 것인가? 아이들이 나를 환대하고 있었다. 환대는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부담스런 명제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속에 환대의 유전자가 담겨 있다. 우리는 출생하면서부터 부모의 환대를 받았으며 온갖 환대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 환대로의 초대, 그건 우리의 일상에서 그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섬광처럼 혹은 설레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부름(calling)이 아닐까?

한 지인이 친구를 만난 후 그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 한다. 그 얼굴에서 친구의 슬픔과 아픔을 짙게 느꼈기 때문이란다. 친구는 투병중이었다. 친구가 내던지는 어떤 말을 듣고서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그런 감각을 지녔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부름을 들으며, 이 행성 위에 가장 아름다운 낙원을 만드는 일이 시작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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