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이 사라진 가게…"약간의 불편이 제로웨이스트의 시작"

조인준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1 0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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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 더피커
"생활영역으로 제로웨이스트 확장돼야"

뉴스트리가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뷰티풀펠로우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로 일상생활 속 긍정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혁신리더를 선발해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편집자주]

▲ '더피커'의 송경호 대표 ⓒnewstree

문을 열고 아담한 매장에 들어서니 천연수세미, 고체치약, 대나무칫솔 등 각종 친환경 제품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진열대에서 반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2016년, 이 매장은 서울 성수동 한 골목에 둥지를 틀며 친환경 제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국내 1호 제로웨이스트 샵인 셈이다. 

8년째 꿋꿋하게 한 자리에서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송경호(37) 더피커 대표는 "사실 친환경 물건을 판매할 목적으로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연 것은 아니다"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생소했던 '제로웨이스트' 개념을 전파하고 싶어서 매장을 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송 대표는 매장을 늘리는데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흔히 제로웨이스트를 '무포장' 개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로웨이스트는 본질적으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모든 과정이어야 한다"면서 "생산에서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사업에 더 골몰하고 있다. 그는 "제로웨이스트가 소비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생활기술 플랫폼'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생활기술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급적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삶의 지혜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제로웨이스트는 무포장 개념이 아니다"

'더피커'에서 파는 제품은 모두 나무, 철 등 재활용이 쉬운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제품은 전혀 없고, 포장재도 법적으로 성분 표시가 필요한 일부 제품에만 종이로 포장돼 있었다. 물건을 담아갈 봉투도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참 불편한 가게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불편한 가게가 환경과 지구를 이롭게 한다.

송 대표는 국제NGO(비정부기구) 활동가 출신이자 더피커 공동대표인 아내 홍지선(39) 씨와 함께 '과대포장'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 프로젝트 사업을 기획하면서 '제로웨이스트 매장'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초기에는 프로젝트 목적이 포장쓰레기 해결에 있었지만, 과대포장으로 인한 폐기물 처리가 오롯이 소비자에게 책임전가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포장재 없는 매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송 대표는 "처음에는 소비자 권리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면서 "포장이 없는 매장 사례가 있는지, 폐기물 처리에 어떤 문제가 동반되는지 등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폐기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았고,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인 '제로웨이스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친환경 제품들이 매장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newstree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은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종합폐기물 관리위원회가 폐기물처리 정책목표를 설정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 제로웨이스트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된 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음식배달, 택배 등이 늘면서 생활폐기물이 급증하던 2020년부터다.

제로웨이스트는 일반적으로는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고 재활용하는 '소비자 차원'의 환경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개념은 이보다 훨씬 확장되어야 한다"면서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재사용해 폐기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로웨이스트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제품과 서비스의 '생애주기' 차원에서 제로웨이스트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게 송 대표의 생각이다. 단순히 제품을 무포장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생산단계에서 폐기물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물과 탄소배출은 얼마나 줄일 것인지, 유통과정에서 포장은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포장은 제로웨이스트의 요소 중 하나일 뿐, 건강하게 생산된 제품을 쓰레기가 가장 적게 나오는 방식으로 유통하고 소비해 최종적으로 올바르게 폐기하는 것이 제로웨이스트"라며 "생산기준 없이는 제로웨이스트 실현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상품 소개를 넘어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알리기 위해 더피커에서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제로웨이스트 없던 삶으로 돌아가야"

▲2016년 국내 첫 제로웨이스트 매장으로 문을 연 '더피커' 앞에 서 있는 송경호 대표 ⓒnewstree

더피커는 제로웨이스트 매장과 별도로 '자급자족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 클래스에선 소비자들이 세제나 화장품 등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고 요리, 수선 등 기초적인 생활기술을 배울 수 있다.

'소비문화의 회복' 차원에서 이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송 대표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에서는 요리가 당연했고, 웬만한 옷이나 제품들은 수선해서 사용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수선방법이 아주 간단한데도 고치지 않고 그냥 버린다"며 안타까워 했다. 귀찮아서 요리하는 대신 배달음식과 밀키트를 이용하게 되면 그만큼 쓰레기가 많이 발생한다. 편리함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이다.

송 대표는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면서 우리는 점점 생활기술을 잊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제가 자급자족 클래스에서 추구하는 바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만들고, 한번 구입한 제품은 수선해서 오래도록 사용해서 폐기물로 인한 사회문제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의 소비양식과 삶의 방식을 회복하는 '약간의 불편'이 제로웨이스트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의 인식확장을 위해 기업컨설팅과 자문도 진행하고 있다.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가 알려지면서 소비자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은 친환경 제품 구매를 통해 '뿌듯함'을 느끼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제로웨이스트가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산업에 녹아들면서,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더이상 필요없어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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