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그린워싱 만연...원인과 대책은?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4-10-22 08:01:02
  • -
  • +
  • 인쇄

지난 2021년 이탈리아의 섬유기업인 미코는 자사가 사용하는 섬유가 탄소배출을 줄인 극세사라고 광고했다. 그해 12월에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 도시인 고리치아의 법원은 이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광고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친환경 상품이 아닌데도 그런 것처럼 꾸미는 '그린워싱'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3년 초에 '탄소중립 윤활유'라는 광고한 모 기업은 환경부로부터 그린워싱 판정을 받고 행정지도를 받았다. 탄소배출권 구매만으로 탄소배출을 줄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린워싱 논란은 제품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금융상품에서도 빈발하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은 친환경 사업의 자금조달을 위해 녹색채권 발행을 확대했다. 하지만 다른 자산운용사는 이 은행이 여전히 화석연료 산업에 대출해주고 있다는 이유로 이 채권 매입을 거부했다.

ESG가 확산되면서 역설적으로 그린워싱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가 적발한 그린워싱 건수는 2021년의 272건에서 지난해에는 4940건으로 무려 18배나 증가했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ESG 성과에 비해 공시가 과도하게 많아 그린워싱 소지가 많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PwC가 30개국의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4%의 응답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에 입증되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업계 전반에 그린워싱이 만연돼있다고 믿는 영국 전문가의 비율도 90%를 넘고 있다. 기업 CEO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모닝스타의 조사 결과를 보면 CEO 58%가 지속가능 성과에 대해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이 비율은 금융서비스 산업에서는 더 높은 66%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그린워싱 논란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ESG 공시가 의무화되는 가운데 입증되지 않은 기업의 친환경 경영 등 주장이 보고서에 많이 실릴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관련 소송 등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워싱이 이처럼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그린워싱 판단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린워싱에 대한 상세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59.0%에 달했다. 또 그린워싱 기준에 대한 인지도를 묻는 질문에 45.0%의 기업이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그린워싱이 증가하는 데에는 기업의 책임도 있다. 소비자와 투자자 등이 친환경 경영을 압박하자 실제와 다르게 친환경 성과를 부풀리는 단기성과주의에 빠져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마케팅 목적으로 무리하게 친환경 경쟁을 벌이고 평판이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워싱은 그 자체로도 정직하지 않은 잘못된 행위지만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친환경 소비나 투자를 방해해 시장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환경을 해치는 상품을 환경을 지키는 상품으로 오인하게 해 구매가 이뤄지게 함으로써 환경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 기업의 친환경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소비자 그린회의주의’를 유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린워싱을 하는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악화와 고객 상실은 물론 정부 제재와 소송에도 직면하게 된다.

'그린워싱주의보'가 강하게 울리자 각국 정부는 규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근거가 없으면 '친환경', '자연적', '생분해', '기후중립'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기업이 직접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고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탄소 크레딧을 구매해 '탄소중립'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미국의 경우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그린워싱 판별 기준인 그린 가이드를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간판'을 내건 펀드가 투자자산의 80% 이상을 이에 부합한 투자를 하도록 하는 규칙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도 규제 대열에 합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6월에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 지침'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지침에는 다양한 규정이 도입됐는데 소비자의 구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누락, 은폐, 축소하는 것을 금지한 '완전성의 원칙'이 한 예이다. 공정위에 이어 환경부도 지난해 10월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폐기물 발생 저감 등 8가지 친환경 경영활동 유형에 대한 표시·광고 원칙과 방법을 제시했다.

그린워싱은 이에 대한 규제도 규제지만 원천적으로 기업 스스로 자율 규제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객관적 근거 자료가 없으면 친환경 주장을 하지 않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그린워싱 대응을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중요한 방안 중 하나는 외부로 나가는 ESG 관련 모든 발표를 사전에 검토하는 절차를 운용하는 것이다. 내부 법무팀이 팩트 체크를 하고 체크리스트를 적용해 발표 문안에 그린워싱 리스크가 없는지에 대해 법률적 진단을 해야 한다. 그린워싱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는 ESG 부서나 광고 및 홍보를 하는 마케팅 및 케뮤니케이션 부서에서 주로 일어나는 만큼 이들 부서를 대상으로 그린워싱 방지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더이에스지연구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ESG

Video

+

ESG

+

"에어컨 물도 다시"...LG화학 리사이클 공모전서 초등학생 최우수상

한 초등학생이 에어컨 물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로 리사이클 공모전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LG화학은 지난 8월 주최한 '리사이클 사회공헌 임팩트 챌린

[최남수의 ESG풍향계] '아리셀' 판결이 던진 과제

지난해 6월에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지난 9월 23일에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위반한 이 회사

'종이제안서' 없앤다...서울시, 지자체 최초 '온라인 평가' 도입

서울시가 제안서 평가를 통해 계약상대자를 결정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에서 '제안서 온라인 평가제도'를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이번 제도는 전국 지

경기지역 수출 중소기업 "탄소배출량 산정·검증 어려워"

여전히 많은 수출기업이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량 산정·검증 절차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회적 가치 1015억 창출

경기도가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업이 지난해 총 1015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10일 밝혔다. 국내 지방정부가 특정 정책사업의 환경적·경

브라질, COP30 앞두고 '열대우림 보전기금' 출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 의장국인 브라질이 열대우림 보전 주도에 나선다.6일(현지시간) COP30 홈페이지에 따르면 '세계 지도자 기후

기후/환경

+

중국 올 3분기 탄소배출 '제자리'..재생에너지 늘린 효과?

전세계에서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중국이 지난 18개월동안 탄소배출량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3분기 탄소배출량은 거의 제자리

[COP30] 기후재원·NDC 최대 현안...'메탄 감축'은 어디로?

10일(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개막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기후재원 조성과 '2035 NDC', 열대우림 보호가 최우선 의제로 다뤄

현대차, 인도네시아 발리 대중교통 전기버스 공급자로 선정

현대자동차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가 진행한 인도네시아 발리 내 전기버스 공급 관련 공개 입찰에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11일 밝혔다.현

'2035 NDC' 53~61% 감축안 탄녹위 통과...국무회의 의결만 남았다

2035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2035 NDC)이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안으로 굳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10일 오후 3시 전

[COP30] 개방형 '배출권거래제' 논의...브라질-EU-中 등 연합체 결성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기준이 전세계적으로 통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앞서 브

10년간 기후난민 2.5억명...절반이 올해 기후재난으로 발생

올해 전세계적으로 1억170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발생한 전세계 기후난민 2억5000만명의 절반에 달한다.기후난민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