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벌채에 대한 규제를 담았던 유럽연합(EU)의 '산림벌채법(EUDR)'이 마침내 입법됐지만 핵심내용이 삭제되거나 예외조항으로 후퇴하면서 당초 입법 목적이 상실된 '누더기법'가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의회는 산림벌채를 방지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법률 '산림벌채법(EUDR)'을 1일(현지시간) 의결했다. 지난 2021년 법안에 대한 초안이 처음 공개된 이후 5년여만에 입법화된 것이다. 하지만 초안에서 내용은 크게 후퇴한 채 입법화됐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산림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이지만, 규제가 완화되면서 실질적으로 규제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3년 공개된 산림벌채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콩, 소고기, 커피, 팜유, 고무, 코코아, 목재 등 그동안 산림을 훼손해온 제품을 판매할 때는 벌채된 토지에서 재배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이를 위반하면 벌금, 불법 제품 압수, 불법 제품의 판매로 얻은 수익 압수, 공적자금 지원에서 제외, 유럽 역내 판매 금지 등을 당하도록 했다. 또 매출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당시 이 법안은 2023년 12월 30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이지만 관련 기업들의 요청에 1년씩 2번에 걸쳐 유예되면서 이것저것 조항을 삭제하고 예외사항을 추가하면서 규제 본질이 크게 훼손됐다는 평가다. 다국적 기업이나 생산지뿐 아니라 산림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유럽 국가들도 크게 반발한 데다,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18개 회원들이 반대했던 것이 주효했다.
규제 본질이 훼손됐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원산지 검증 의무가 삭제됐고, 인쇄물 제품 면제조항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상품이 신규 산림벌채지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법인데 정작 핵심내용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의 설계자였던 휴고 샬리 전 EU집행위원회 다자간 환경협력 부서 책임자는 "하위 유통업체(downstream traders)에 대한 원산지 검증 의무가 삭제되면서 법안은 '속빈 강정'이 됐다"고 평가했다. 하위 유통업체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판국에, 오히려 책임을 상위업체로만 돌리면서 투명성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마리 투생 유럽의회 녹색당 부의장도 "인쇄물 제품 면제조항을 추가한 것은 정치적 해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인쇄물 면제 조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한 '달래기용 양보'로 보인다"며 "집행위가 아예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이 처음 공개됐을 때 "야심찬 법"이라고 평가했던 프란스 팀머만스 그린딜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이 말뿐이 아닌 행동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UDR 규제가 크게 후퇴한 것은 일부 유럽국가들의 거센 반발도 있지만 유럽의회에서 극우세력과 손을 잡은 보수진영의 입김이 커진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보수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이 약진했고, 유럽국민당은 극우세력과 손잡으며 그린딜 규제 전반을 약화시켜고 움직였다. 이들이 EUDR 규제를 완화시켜 통과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미국의 입김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됐다. 코펜하겐 비즈니스스쿨의 안드레아스 라셰 교수는 "미국 등 EU의 주요 교역국이 무역협상 과정에서 강하게 압박했고, 이 요구를 집행위가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종 입법화된 EUDR은 하위 유통업체의 실사보고 의무가 대부분 면제됐다. '저위험' 소규모 사업자에 대한 예외조항이 추가됐다. EUDR에는 국가별로 산림훼손 '고위험', '표준위험', '저위험'으로 분류하고, 고위험국 수입품의 9%, 표준위험국 수입품의 3%, 저위험국 수입품의 1%를 검사하도록 했다. 고위험국은 '러시아, 미얀마, 북한, 벨라루스' 4개국으로 정했다. 벌채율이 높은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표준위험' 국으로 분류됐다.
일각의 비판에 대해 EU집행위는 "현장의 피드백을 반영해 단순하고 공정하며 비용 효율적인 이행을 보장했다"며 "이미 산림파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90년~2020년 산림벌채로 사라지는 숲의 면적은 4억2000만 헥타르(ha)에 달했다. EU 국가들이 소비하는 제품들로 인해 발생한 산림벌채가 전세계 10% 비중이고, 이 가운데 콩과 팜유가 3분의 2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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