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부으면 사라진다고?...진화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기술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2-22 11: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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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순환경제] 생분해성 플라스틱[3]
생분해는 '선택아닌 필수'...인프라·규제개선 시급


국내에서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별도 처리시설이 없어 '계륵' 취급을 받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기술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화석연료 가격이 치솟고 각종 환경규제가 조여오자, 플라스틱 업계가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4월 배럴당 20달러(약 2만3960원)에 불과했던 국제유가가 올 상반기 100달러(약 11만9830원)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원유를 기반으로 하는 주요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KPIA)에 따르면 2020년 4분기를 기점으로 석유화학제품 원자재 가격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원료의 70%를 차지하는 나프타는 2020년 메트릭톤당 382달러(약 45만7720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 68.3% 상승해 644달러(약 77만1650원)에 달했다. 지난 14일 기준으로는 835달러(100만338원)를 기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국이 탄소중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탄소배출을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한 비대칭 관세인 '탄소국경조정세', 또 지속가능한 산업과 그렇지 못한 산업을 분류해 자금조달을 제약하는 투자지침 'EU 택소노미' 등을 마련하면서 머지않아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경제성을 이유로 외면하던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영향에 대한 비용이 확대되면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일반 플라스틱 소재가 마냥 경제적이라고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 자연분해되는 신소재 속속 개발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미생물에 의해 무해한 물질로 분해되며, 소각되더라도 온실가스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기성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친환경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다만 물성이 약해 사용처가 제한적이고, 바이오매스(식물·동물·미생물 등 생물유기체) 기반일 경우 단가가 3~4배가량 높아 사업화가 부진했다.

하지만 최근 환경과 건강에 대한 인식 제고로 친환경 화학산업인 '화이트바이오 산업'이 떠오르면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투자도 함께 늘고 있다. EU의 경우 민·관이 합작투자한 대규모 연구개발(R&D) 사업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을 통해 37억유로(약 5조원)를 투자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석유화학제품 소비량의 30%를 바이오화학제품으로 대체하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의 일종인 PLA(Poly Lactic Acid) 소재 시장의 경우 2025년까지 약 7조원, 150만톤 규모로 매년 20~30%씩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생분해성 플라스틱 연구가 탄력을 받으면서 획기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따뜻한 물만 부어줘도 상온에서 일주일만에 80%가 사라지는 소재가 개발되는가 하면, 플라스틱 페트병을 10시간 안에 90% 이상 분해하는 효소가 발견되기도 했다. 연잎에서 영감을 받아 튼튼하고 지속가능하며 토양에서 빠르게 분해돼 퇴비로도 활용가능한 자가세정 바이오플라스틱도 개발됐다. 

▲물만 부어도 수일 안에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필라멘트 (사진=UC버클리 공대)


◇ SK·코오롱·CJ···대기업들도 합세

국내 대기업들도 생분해성 플라스틱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자연조건에서 분해되는 PBAT(Polybuthylene Adipate-co-Terephthalate) 재질 양산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PBAT는 농업용 비닐, 일회용 봉투, 어망 등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제품과 오염물질이 묻어 재활용할 수 없는 폐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어 주목받는 소재다.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의 PBAT 생산능력은 연 3000톤 규모다. 2020년 22만톤이던 글로벌 PBAT 시장규모가 2025년에 이르면 80만톤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SK지오센트릭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24년까지 연간 6만톤 규모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CJ제일제당은 글로벌 최고수준의 PLA 필름 제조기술을 갖춘 SKC와 함께 PHA(Polyhydroxyalkanoate)를 활용한 식품포장용 비닐을 시중제품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CJ제일제당은 PHA 양산 능력을 확보한 전세계 극소수 기업 중 하나다. 각각 식물과 석유를 기반으로 한 PLA와 PBAT와는 달리 PHA는 미생물을 기반으로 해 다년간 효소를 연구하며 기술을 축적해온 식품 기업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PHA는 PBAT와 달리 바이오매스 기반이고, 특정조건에서 분해되는 PLA와 달리 토양이나 바다 등 조건을 가리지 않고 자연분해돼 가장 친환경적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주목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행복한 콩두부' 묶음제품이 양사가 협업해 개발한 포장재가 적용된 사례다. 이를 통해 양사는 연간 50톤가량의 석유기반 플라스틱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 5000톤 규모의 PHA 생산시설을 구축한 뒤 백설 설탕·비비고 제품의 포장재를 생분해 포장재로 교체하는 등 친환경 소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왼쪽부터) PHA와 PLA 혼합 생분해 포장재를 적용한 제품과 100% PLA 생분해 포장재 적용 제품 (사진=CJ제일제당)


◇ 갈길 먼 국내시장···"가이드라인 마련해야"

하지만 국내에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생분해성 플라스틱 관련 규제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해외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국내 환경정책은 전체적인 플라스틱 사용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생분해성 소재를 장려할 만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유럽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판매와 수거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규정이 갖춰져 있다. 일례로 플라스틱 소재의 일회용 빨대는 음료에 부착해서 판매할 수 없지만, 예외로 생분해 소재로 만든 빨대는 허용한다는 식의 규제를 만든다"고 밝혔다.

실제로 환경부는 2003년부터 퇴비화 시설에서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친환경표지인증을 부여했지만, 정작 퇴비화 시설구축은 20년째 외면하고 있다. 분리배출 기준도 없어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은 일반쓰레기와 함께 소각·매립되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올 1월부터 일회용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친환경표지인증을 아예 폐지해버렸다. 시설을 확충하고,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분리수거 기준을 마련하느니 기존 플라스틱 제품의 재활용에 정책의 방점을 찍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동엽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박사는 "종이나 캔은 단일재질이지만 플라스틱은 수십에서 수백종에 이른다"며 "이들을 완벽하게 분류하고 재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라면봉지를 예로 들면 내부의 은박과 외부 코팅을 박리해 재활용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면서 "이 때문에 플라스틱 제품이 원료로 돌아가 다시 제품에 쓰이기까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활용 비율은 10% 미만"이라고 짚었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쓰레기 매립지가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매립할 수 없어 소각하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매립하거나 소각하지 않고, 설령 소각하더라도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탄소배출이 적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 생분해성 플라스틱이지만 그냥 소각?...어쩌다 외면받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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