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가뭄①] "감자 1개 5000원...소금물까지 끌어다 써요"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6-10 17:43:37
  • -
  • +
  • 인쇄
'찔끔' 비에 때놓친 모내기...농가피해 속출
해수온도 오르면서 비구름 몰아낸 '라니냐'
▲지난 8일 충남 서산시 대산읍 화곡3리의 한 벼농지. 가뭄으로 논고랑에 물이 채 차지 못했고, 그마저도 염도가 높아 모가 노랗게 말라붙고 있다.


봄 가뭄에 전국의 논밭이 타들어가고 있다. 물이 가득차 있어야 할 모내기 한 논은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직전이고, 작물의 줄기가 한창 뻗어나가야 할 밭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다.

50년만의 겨울 가뭄과 봄 가뭄이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올 5월 한달만 놓고 보면 전국 평균 강수량은 5.8㎜로, 지난해 5월 강수량 112mm의 20분의 1 수준이다. 5월 강수량만 놓고 보면 역대 최저치다. 거창군과 울산시는 5월 강수량이 '0'이다. 6월 들어 며칠 단비가 내리긴 했지만 오랜 가뭄을 해갈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본지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3리 일대의 농경지를 직접 둘러본 결과, 가뭄 피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갯벌을 개간한 간척지다 보니 물이 말라버린 논바닥에서 염분기가 올라와 기껏 심어놓은 모들이 소금기에 노랗게 말라가고 있었다.


◇ 간척지 피해 더 심각···가뭄과 염해 '이중고'


▲지속적인 가뭄으로 토양 내 수분이 말라붙으면서 땅 위로 소금 결정이 하얗게 올라왔다.


이곳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근영 씨(56)는 "논바닥에서 염분기가 올라와 모가 다 타죽을 지경"이라며 생기를 잃은 농지를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였다.

인근 대호호에서 물을 끌어다가 모내기는 어찌저찌 마쳤지만, 이 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다를 메워 만든 대호호의 저수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담수는 이미 바닥난 상태다. 현재 호수 밑자락에 깔려있는 물은 모두 밀도가 높은 소금물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가뭄이 계속 이어지면서 4~5일 전부터 땅 위로 소금기가 올라왔다"면서 "인근에 하천이 한 곳도 없다 보니 비가 안 오면 계속 호수 물을 퍼 쓸 수밖에 없는데 이제 소금물만 남은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씨가 손으로 논두렁길을 훑자 손가락 사이로 하얗게 소금 결정이 올라왔다. 그는 "소금기 있는 물이라도 퍼서 써야 한다"면서 "그거라도 없으면 모가 아예 죽어버리니까"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계속 소금기있는 물로 연명하다보니 모는 가지를 뻗어내지 못하고 노랗게 변색되거나 시들시들해지고 있다. 이 씨는 "말 그대로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상태"라고 입맛을 다셨다.

▲수심 30cm~1m를 오가던 대호호 지류가 우산 꼭지만 겨우 잠길 정도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소금기 있는 호수물마저 마음껏 사용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3일 잠그고 4일 풀어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가에서는 한번 사용한 농업용수인 '퇴수물'까지 다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집집마다 양수기로 퇴수물을 끌어다 쓰려다보니 이제 양수기마저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를 뜯어먹는 굴파리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모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방제약도 함부로 뿌리지 못한다"고 했다.

서산 일대의 가뭄 피해는 수확량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서산시에 따르면 천수만 간척지 B지구 농경지에서 잇단 가뭄으로 벼 염해가 발생해 전체 경작면적의 51%인 780ha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이 씨는 "보통 6월초에 모내기를 끝내야 하는데, 펌프가 닿지 않는 천수답은 올해 농사를 아예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 "올해 밭농사 절반은 포기했어요"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옥수수밭(왼쪽)과 물이 공급된 옥수수밭(오른쪽)


충남 당진시 고대면에서 옥수수밭을 경작하는 강관묵 씨(60)는 "벼농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벼농사는 제한급수라 해도 농업용수를 공급해주지만 밭농사는 이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파종을 못하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밭들이 허다했다.

강 씨 역시 비가 오지 않는 바람에 옥수수 파종 시기를 놓쳤다. 그는 "농지의 절반가량은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비가 계속 안 오니까 결국 1500만원을 들여 양수기를 샀다"고 했다. 양수기까지 동원해 물을 끌어다 기른 옥수수인데 아직 발치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는 강 씨는 "보통 이 시기쯤 되면 가슴팍 높이까지 자라야 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밭작물의 가뭄 피해가 이어지다 보니 감자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충남도 발표에 따르면 수확기를 맞은 마늘·감자 생산량이 20~30% 줄었다. 특히 서산·당진 지역 감자 생산량은 300평당 2톤(t)으로 지난해보다 25% 감소했다. 감자 1개 가격은 5000원에 거래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김희봉 당진시농민회장은 "동네 식당주인이 감자 3알에 1만5000원을 줬다고 한다"며 "주재료도 아닌 부재료인데 감자 1개에 5000원씩 줬다는 것은 결국 음식값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런 눈빛을 드러냈다. 농산물 가격인상은 결국 밥상물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 물가상승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일 기준 양파 20kg의 도매가격은 2만20원이다.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 감자는 20kg 도매가가 4만160원으로 지난해보다 62% 상승했다.


◇ 가뭄 '더 세지고 잦아진다'



우리나라가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원인은 '라니냐'로 지목되고 있다. 라니냐는 지구온난화로 적도 부근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보다 차가워지는 현상이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속한 서태평양 해역은 수온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뜨거워진 서태평양 공기가 고기압을 강하게 지지하면서 비구름을 몰아낸다. 가뭄 등의 이상이변이 발생하는 원인인 것이다. 실제로 기후정보포털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해수면 온도는 15.7℃로, 평년보다 1.4℃ 높은 상태다.

6월말 장마가 시작되면 오랜 가뭄은 자연스레 해갈될 전망이지만 모내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더구나 라니냐의 반대급부로 국지성 집중호우와 태풍의 발생빈도가 증가할 우려가 있어, 그나마 남은 농작물마저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앞으로 가뭄은 빈도와 강도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충남연구원의 '충청남도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가뭄 분석'에 따르면 충남 서부지역은 2030년대부터 가뭄에 매우 취약해진다. 특히 서산은 강수량에 국한한 가뭄지수로 판단했을 때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분석됐다.

▲김희봉 당진시농민회장이 가뭄에 말라 시들어버린 고구마순을 가리키고 있다.


김희봉 회장은 "결국 비가 제때 와야 한다"면서 "저수지 물은 빗물만큼 양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구가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한 김 회장은 "1년 걸리는 농사에 모든 재산을 투입하는데 모가 타죽으면 결국 한해 농사를 망치는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료값, 기자재값, 연료값이 모두 올라 힘든 상황인데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가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당장 기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농심 조용철 부사장,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

농심은 조용철(63) 영업부문장 부사장을 12월 1일부로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다고 21일 밝혔다.신임 조용철 사장은 내년 3월 열리는 정기주주총

KT, 악성코드 감염 알고도 '미보고'…"심각성 인지 못했다"

KT가 지난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악성코드 'BPF도어'에 감염된 사실을 인지하고도 당국은 물론 대표이사에게도 보고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은폐한 사실

삼성전자, 전영현·노태문 '투톱' 체제…쇄신보다 '안정'에 방점

삼성전자 조직이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 '두톱' 체제로 강화된다.21일 삼성전자는 반도체(DS) 사업의 전영현 부회장을 유임하고, 모바일(MX)·

대한항공, 삼성E&A와 손잡고 美SAF 시장에 진출한다

대한항공이 삼성E&A와 손잡고 미국발(發)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시장에 진출한다.대한항공과 삼성E&A는 이를 위해 지난 20일 오후

[ESG;스코어] 스코프2에서 멈춘 금융사들…공시품질 '신한 1위·KB 2위'

신한금융이 국내 금융사 기후공시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국투자공사(KIC)는 최하위로 나타났다.20일 뉴스트리는 신한·KB·하나·우리

수퍼빈·아로마티카·커뮤니코, 순환경제 모델 구축 '맞손'

AI 기후테크 기업 수퍼빈과 아로마테라피 기반 스칼프&스킨케어 브랜드 아로마티카,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커뮤니코가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체계 구

기후/환경

+

[COP30] 하루 늦게 나온 '합의문'...화석연료 빠진 '반쪽짜리'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최종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빠져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고있다.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전쟁 복구에 탄소시장 도입?…우크라 재건에 기후금융 활용 논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 탄소시장과 기후금융을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이 논의되고 있다.20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Atlant

인제군 산불 17시간만에 꺼졌다...산림 36ha '잿더미'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17시간만에 진화됐다.21일 산림당국에 따르면 이날 동이 트자마자 소방헬기 29대를 동원해 진화작업을 한 결과

亞 탄소시장, 글로벌 자본이 주목하는 새 투자 무대로 급부상

아시아 탄소시장이 국가별 규칙이 제각각인 초기단계에서 벗어나 국제자본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투자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20일(현지시간) 기후

"해양 CCUS는 검증안된 기술...성능·영향 모니터링해야"

해양 탄소포집·저장(CCUS) 기술은 적절한 모니터링과 검증없이 성급히 도입하기에는 위험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왔다.20일(현지시간) 유럽 해양위원

2100년 美 5500개 유독시설 해안 침수로 위기 직면

2100년에 이르면 미국의 5500개 유독시설들이 해안 침수로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유독성 폐기물 저장소나 석유·가스 저장시설, 오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