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전문가 진단

차민주 기자 / 기사승인 : 2022-11-02 09: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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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설아 국가위기관리硏 재난안전혁신센터장
10만명 이상 인파 예상…재난예방책 수립했어야
안전관리 매뉴얼 안지킨 지자체 대응부족이 원인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재난안전혁신센터장 권설아 박사는 "이태원 압사사고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이라고 말했다. ⓒnewstree

"용산구청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태원 골목에서 15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핼러윈 참사에 대해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재난안전혁신센터장 권설아 박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2011년부터 12년째 재난관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권 센터장은 "이미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재난예방책을 수립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사고가 나기 전부터 이미 아수라장 상태였다.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빠져나와 골목길을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골목에서 대로변으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오도가도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성인 5~6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폭 4m 내외의 좁은 골목길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1시간 반동안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압사 사고로 이어졌다.

권 센터장은 "기본적으로 지자체장은 재난관리의 책임기관이기 때문에 지자체장 주재 하에 기본 업무를 계획해야 했다"면서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자체의 대응부족"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지자체 공무원들은 용산구 지형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파가 많이 몰릴 경우 발생할 피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 골목은 오르내리막이 많은 지형이어서 압사 사고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용산구청은 통행을 정리하는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권 센터장은 "축제, 대규모집회, 놀이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매뉴얼은 2006년 소방청에서 이미 마련해놨다"면서 "그런데 지자체는 이 매뉴얼에 적혀있는 위기관리방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일례로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은 놀이공원 줄처럼 꼬불꼬불하게 선을 만들어 질서있게 시민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하라고 매뉴얼에 적혀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방법이 열거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자체는 최소한의 매뉴얼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2018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매뉴얼'의 개발배경을 보면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MBC 가요콘서트 압사사고와 2006년 서울 롯데월드 무료놀이동산 개방행사에서 많은 인파가 다치는 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제작했다. 소방청,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등 관련 기관과 대학교수, 문화예술 전문가 등과 함께 매뉴얼 개발을 했는데 이태원 압사사고는 막지못했다. 

▲서울시는 사고가 발생한지 1시간 41분, 용산구청은 1시간 48분이 지나서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newstree 

무엇보다 인파가 많이 몰릴 것이 예상됐다면 사전에 이태원역 무정차 조치를 내렸어야 한다고 권 센터장은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내린 승객수는 지난해 같은기간의 2.6배였다. 권 센터장은 "만약 이태원역에 정차하지 않고 그 다음 역에서 지하철을 멈췄다면 시민들이 걸어오면서 다른 가게를 방문하면서 인파가 많이 분산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안내방송조차 없었다.

지자체는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허술함을 드러냈다. 권 센터장은 "백번 천번 넘어가서, 지자체가 참사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수습복구라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면서 "하지만 당시 사고가 난 후 지자체 안전관리 공무원들이 근무를 하러 나왔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용산구청 언론대응팀 관계자는 뉴스트리와의 통화에서 "당시 안전관리 공무원들이 즉각 나갔다"고 말하면서도 "정확히 몇시에 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또 안전관리 공무원들이 즉각적으로 나갔다면 왜 재난문자가 사고가 발생 후 1시간48분만에 발송됐느냐는 질문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권 센터장은 "1차적으로 모든 책임은 지자체에 있고, 정부는 그에 합당한 지원을 하는 것"이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넘어가기전에 지자체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 등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희생자들은 대부분은 10~20대들이다. 약 3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거리두기로 대규모 인파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이 젊은층들은 밀집된 곳에 갇히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해를 더 키웠다. 

권 센터장은 "일반적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출근, 퇴근길 지옥철 등 압박에 익숙한 경험이 있어, 이 압박이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거기에 더해 핼러윈을 즐기러 나온 인파들은 대부분 코로나로 인해 3년동안 대규모 축제를 경험하지 못해 인파가 몰린 곳으로 향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이상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재난관련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권 센터장은 역설했다. 그는 "대부분의 재난교육은 초·중·고에서 멈춘다"며 "성인이 된 이후 대학생들이나 사회에 일찍 나가는 20대들 등 성인들이 재난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사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권 센터장은 지자체별로 발생할 수 있는 재난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재난관리 매뉴얼을 자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서 태풍, 호우 등 재난별로 매뉴얼을 만들면 그것이 그대로 지자체에 전달된다"며 "매뉴얼 자체가 30cm 정도로 두꺼워 일일이 읽을 수도 없고 지자체별로 똑같이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자체 공무원별로 재난발생시 취해야 할 행동요령을 한두장으로 간략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권 센터장은 "유족이나 생존자 등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민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차원에서 트라우마 상담을 지원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말한 그는 "상담을 지원하다 어느 순간에 끊기면 피해자들은 더 큰 고통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차원의 지속적인 트라우마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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