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엔 침묵, 비판엔 발끈…이태원 참사에 등돌린 이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1-04 11: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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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 관리 실패" 이례적 비난 성명
원유수급·세계박람회 유치에 파장 우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안일한 '이태원 참사' 대응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이란을 자극하면서 실리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한국에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31일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최근 이란인 5명이 이태원에서 희생당한 참사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관리 실패로 한 행사에서 200여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왔다"며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행사 관리를 해야 했다. 한국은 윤리나 집회시위 관리에 대해서 이란에 아무런 교훈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압사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사고에 대해서 해당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공식 발표하거나 정부 채널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핼러윈 축제에 대한 관리 실패 책임을 추궁하는 대목에서 '집회시위'가 나온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지난 28일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내 여성인권 상황 및 강경한 시위진압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관련 국제사회의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경찰서에서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시위가 1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최소 250명이 시위 중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70억달러가 동결돼 있다. 칸아니 대변인은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을 받은 결과다"며 "그들(한국)은 이란 내부 문제에 대해 비건설적이고 무책임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과거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한국이 최근 동결자산 문제 등에 있어서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칸아니 대변인의 언급과 관련해 이란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이란 측의) 이런 언급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유감을 표명했으며, 향후 각별한 주의 및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란이 지난 9월 이후 자국내 불안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우디와 이라크 에르빌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동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84달러(2.13%) 오른 배럴당 88.37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2일에는 1.63달러(1.84%) 오른 배럴당 90달러에 거래를 마치면서 계속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이란을 자극했을 때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세계 석유 해상 수송량의 35%, 한국행 중동산 원유의 99%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북쪽은 이란 영토에 속한다. 대형 유조선은 수심이 깊은 북쪽 이란 해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큰 유조선은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요가 높은 겨울철 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자칫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도 불똥이 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총 14개국이다.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서는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한 표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참사로 14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한국이 안전과 치안 등이 불안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또 이번 이태원 참사는 이란 정부 뿐 아니라 그간 '히잡 시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실망한 이란 민중들에게 더 큰 낙담을 안겨줬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와 같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이란 정권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호주와 달리 이란 정권의 인권탄압을 규탄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8일 이전까지 시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한 이란의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엘나즈 레카비가 실종됐음에도 한국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 16일부터 연락이 닿지 않던 레카비 선수는 현재 서울에서 쫓겨나 가택연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류에도 찬물을 끼얹으면서 경제적인 여파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비즈니스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2006년~2007년 방송된 '대장금'은 이란 현지에서 최고 시청률이 90%까지 치솟았고, 2008년~2009년 방송된 '주몽'은 최고 시청률 85%를 기록하는 등 한류열풍을 이끌었다. '대장금'은 이란에서 한국음식 붐을 일으켰으며, LG전자는 '주몽'의 주인공인 송일국을 내세운 광고로 이란 평판TV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The Diplomat)은 "박진 외교부 장관은 시위가 시작된 지 사흘만인 9월 19일 이란 외교부 장관과 만나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경제협력 재개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정권을 위한 경제적 자원을 창출하고 비즈니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아첨의 형태로 지도자들에게 명성과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한국이 이란 정권의 학대에 공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플로맷은 이어 "중견국이 되거나 강대국의 손에 학대를 받은 역사가 있다고 해서 남을 희생시키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한국 정부는 이란 시위대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권리, 한 이란 전문가가 설명했듯이 '더 한국처럼' 될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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