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남탓하는 순간, 능력은 사라진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6-22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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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가 낮은 우리 사회, 이유가 있어
기쁨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묘약이 있어

2011년 카이스트 4학년 학생이 투신자살했다. 이후 학생 3명과 교수 1명이 또 자살하면서 우리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카이스트는 우리나라 상위 2% 이내 학생들이 입학한다.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알려져 있는 꿈의 학교다. 자살한 학생은 유서에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을 해도 기쁘지가 않다." 공부를 해도 모임을 해도 컴퓨터를 해도 그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다는 것이다.

경쟁과 비교···기쁨을 앗아간 정글게임

기쁨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기쁨이 없으면 자신이 살아있음을 만끽하지 못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향유할 수 없다. 슬픔이나 우울한 감정, 절망감과 분노 등 온갖 부정적인 정서는 단지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차원이 있다. 우리의 감정과 실존 감각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 받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자살 릴레이의 이면에는 당시 카이스트가 채택한 성적에 따른 차등 등록금 정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가혹한 채찍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쟁' 자체가 사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적절하게 동기부여를 하고 활력을 주는 생산적 경쟁이 아니라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파괴적 경쟁이 되는 것이 문제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서는 소수만 웃을 수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낙오자로 분류되고 루저로 취급받는 사회시스템이 문제다. 따라서 오징어게임과 같은 입시지옥과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동 시장 등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 하는 사회는 기쁨의 총량을 거세하고 슬픔과 분노를 양산하는 괴물사회가 아닐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실시한 '한국인 의식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젊어야 행복하다고 느낀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찾아오면 모자람이나 남부러울 것이 없어도 행복감이 크게 떨어진다. 둘째 남보다 잘 산다고 느껴야 행복하다. 돈이 많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부유하면 기쁘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다른 사람이 파산하고 궁핍해지면 은근히 위로받는다. 건강한 평등주의가 아니라 비뚤어진 평등주의적 심보가 만연해 서로 비교하고 질시한다. 남이 잘되면 나의 행복감이 절로 떨어진다. 셋째 많이 배워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벌과 학위를 중요시한다. 이에 따라 우월감과 열등감이 크게 차이가 난다. 학력 콤플렉스가 많으면 절로 위축되고 자신을 초라하게 느낀다.

넷째 다른 사람과 사회를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나와 연결돼 있는 사람들과 사회를 신뢰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거나, 방어 또는 공격심리가 높아진다. 다섯째 종교행사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어떤 종교인가 혹은 신심이 얼마나 깊은가와 무관하게 종교 단체에 자주 출석하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더 행복하다는 특이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여섯째 가족과의 여가를 중요시해야 행복하다. 이는 가족가치다. 가정이 평안하고 부부와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만큼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는 직업 및 노동시간과 밀접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을 뒤집어서 해석하면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은 행복의 행렬로부터 벗어나 있다. 나이가 들거나, 장애나 질병을 있거나,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가정에 남모르는 우환이 있거나, 재산이나 학벌 등 남부럽지 않은 '그 무엇'이 없으면 행복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그럴까?

◇ '불평' 기쁨과 역량을 소멸시키는 마약

자신의 삶 에너지를 위축시키는 지름길이 있다.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고, 문제에 대해서 불평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탓하고, 열등감과 수치심과 죄의식을 안고 살면 삶의 연료가 곧 바닥나버린다. 반대로 에너지를 증진시키는 길도 있다. 힘을 내어 당당하게 행동하고, 문제의 해결책(solution)에 집중하고, 모든 일에서 소중한 교훈과 감사할 일을 찾고, 내면의 평안을 궁구할수록 삶의 활력을 쉬 잃지 않는다. 경쟁과 차별이 공공연해 비교의식과 심리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기쁨을 선택하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간다. 기쁨을 박탈해가는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기쁨과 활력을 창조하고자 한다.

불평은 행복을 앗아가는 약탈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연구가 있다. 1999년 MIT의 셰인 프레데릭(Sheane Frederick)과 카네기맬런대학의 조지 로웬슈타인(George Loewenstein)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고를 남탓이라고 원망하는 사람들일수록 '현저하게 낮은 대처능력을 보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남탓을 할수록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주도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남탓하며 불평의 말을 내뱉는 순간 객관적인 사유와 능동적인 실천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불평은 합리적인 비판이나 비평과 다르다. 책임을 타자에게만 전가하는 책임 회피이기 때문이다. 통합적 사유와 합리적인 비평은 문제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실천하게 만들지만 원망과 불평은 모든 사유와 실천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해 버린다. 불평의 말은 자신을 마비시키는 소멸의 주문이 될 수 있다.

'내 탓이오!'라는 캠페인이 한때 유행했다. 이 말은 큰 호소력을 지녔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 조차 나의 책임으로 여기는 숭고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불평하는 순간 자신이 초라해 진다는 것을. 남탓하기를 그칠 때 분노와 슬픔은 크게 잦아든다는 것을. 우리는 불평의 전문가들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나의 바깥으로 돌리기는 쉽다. 하지만 불평의 습관을 버릴 때 기쁨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 기쁨을 증진시키는 묘약 '웃음과 감사'

예로부터 철학자들과 현자들은 웃음과 감사를 가르쳤고, 요즘은 심리학과 각종 심리치료 요법에서 이를 강조한다.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웃을 일이 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지고, 감사한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하면 그만큼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웃음과 감사는 기쁨을 증진시키는 실제적인 기술(art)이다. 우리도 경험적으로 그런 행위가 기쁨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익히 안다.

'세계 웃음의 날'(World Laughter Day)이 있다.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지구촌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웃는다. 20분 이상 웃는 것이 이벤트의 전부다. 이날은 인도 뭄바이의 의사 마단 카타리아(Madan Kataria) 박사가 창시했는데 전세계로 확산됐다. 인도에서는 이날에 함께 웃기 위해 수백개의 '웃는 사람 클럽'이 생겨났고, 웃음경연대회를 통해 강사가 잘 웃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웃음 요가(Laughter yoga)를 수련하기도 한다. 얼핏보면 마치 억지로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종의 연출로 보이지만 참가자들은 웃음의 행위를 한 후 행복감과 충만함을 느낀다. 우리도 이를 가벼운 리츄얼(ritual)로 실행할 수 있을 것같다. 미소와 웃음만이 아니라 유모어(humor)와 위트, 해학과 기지와 같은 유쾌한 언어놀이도 즐기면 좋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를 표현하는 말 역시 기쁨의 열쇠 중 하나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가족과 친구와 동료에게 감사의 말을 하는 자는 자신도 행복하고 타인에게도 기쁨을 준다. 어떤 이들은 식사하기전에 하늘과 태양과 농부와 곡식에게 감사한다.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초월자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이런 행위의 합리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 심리적 효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감사하는 그들은 보다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변에 의외로 '감사일기'를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를 유치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의외로 그 임상적 효과가 크다고 한다. 감사 일기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억압하는 행위이거나 애써 감사 거리를 찾는 자기 최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쓰기'라는 언어행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고 가꾸는 일이다. 감사는 자신의 마음을 기쁨으로 기울이는 효능 있는 방법이다. 감사는 행복을 위한 언어 예술일 뿐 아니라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한다. 마이애미 대학의 마이클 맥컬로 박사(Michael E. McCullough)는 '감사를 느끼는 사람들은 더 활력이 있고 낙천적이며 스트레스가 적고 병적인 우울증 발병 빈도가 낮다'는 연구결과를 밝혔으며, < the Psychology of Gratitude >란 책에서 '감사의 삶이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킨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쁨을 원하지만 대개 기쁨을 선택하지 않는다. 기쁨의 샘을 열고 흐르게 하는 방법도 모른다. 웃음과 감사가 도깨비 방망이나 만능열쇠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쁨을 삭제하는 사회에서 기쁨을 증진시키는 유쾌한 자기 배려의 기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웃음과 감사란 언제나 타자와 함께 경험하는 것이며, 서로 기쁨을 감염시킨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마워. 감사해.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이 말을 하고 나면 가난한 나는 이유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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