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발하는 국지성 호우에 대비한 설비 갖춰야"

기후변화로 시간당 50~100㎜에 이르는 '극한호우'가 매년 반복되는 것에 대비해 도시의 하수관로를 비롯한 빗물처리시설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6~17일 사이 누적 강우량 519.3㎜에 달했던 충남 서산은 배수(빗물)펌프장이 시간당 50㎜로 설계돼 있어, 이번처럼 시간당 114.9㎜로 쏟아진 빗물이 미처 관로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류했다. 그 결과 서산시는 물바다가 되면서 도로와 집들이 모두 물에 잠겼다. 공공시설 292곳과 사유시설 417곳 등이 호우 피해를 입었고, 농경지 3421헥타르(ha)도 침수됐다. 이웃 지역인 충남 당진과 예산 지역의 빗물펌프장도 시간당 50㎜까지 견디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번에 시간당 110㎜ 이상의 비가 퍼부으면서 피해가 컸다.
광주의 비 피해도 심각했다. 지난 19일 광주 북구에서는 400㎜에 가까운 폭우가 하루에 모두 쏟아졌다. 이 때문에 도로 80여곳과 30채의 건물이 물에 잠겼다. 광주 빗물펌프장은 시간당 54㎜의 비가 내리는 것까지만 견디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이번처럼 단시간에 많은 비가 퍼부을 때는 속수무책이다. 당시 광주 북구의 강수량은 시간당 76.2㎜에 달했다. 나주의 빗물펌프장도 비슷한 용량으로 설계돼 있는데 이번에 시간당 92㎜가 쏟아져 물바다가 됐다.
국지성 호우에 따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장마기간에 경기 파주에 내린 강수량은 900.9㎜에 달했고, 철원은 803㎜, 서울은 627.8㎜였다. 특히 파주는 지난해 7월 17~18일 시간당 101㎜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 때문에 파주뿐 아니라 고양 등 이 일대가 모두 물바다가 됐다. 2023년에도 경북 북부 지역에 하루에 120~480㎜의 폭우가 내려 침수와 산사태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고, 지난 2022년에는 서울 강남역과 서초역이 폭우에 잠겨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간간히 발생했던 '국지성 호우'는 이제 기후변화의 여파로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통상 우리나라는 6월말과 7월초에 걸쳐 북쪽의 찬공기와 남쪽의 더운공기가 만나면서 정체전선이 형성되는데 이를 장마전선이라고 부른다. 이 정체전선이 걸쳐져 있는 지역에 장맛비가 내렸다.
그런데 이 장마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대기 에너지가 더 커지고, 두 기압이 맞서는 힘이 더 강해지면서 정체전선의 폭이 좁게 압축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좁은 비구름띠는 수증기가 응축돼 있다보니, 이 띠가 걸쳐져 있는 지역은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는 '국지성 호우'가 발생한다.
앞으로 국지성 호우가 발생하는 빈도는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고했다. 이 때문에 현재 배수시설 용량으로는 '국지성 호우'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인덕대 정창삼 수공학 교수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과거의 강우 패턴을 기반으로 설계된 설비여서 지금의 강수량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이같은 국지적 호우 패턴이 일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배수펌프나 우수관을 설계할 때 해당 지역에 폭우가 내리는 빈도를 기준으로 삼는데 우리나라 빗물펌프장도 대부분 10~20년에 한번 내리는 폭우를 기준으로 시간당 50㎜로 설계돼 있다. 그런데 한반도의 강우 패턴은 100년이나 200년, 심지어 500년에 한번꼴로 내리는 폭우가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시간당 100㎜ 이상도 견딜 수 있는 배수설비로 하루빨리 확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구시 관계자는 "최근 새로 설치되는 배수펌프장은 50년 빈도를 기준으로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시간당 100㎜ 이상 호우를 감당할 수 있는 '대도심 빗물터널'을 건설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빗물설비 확장과 동시에 호우 대응체계도 좀더 철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창삼 교수는 "새로운 기후 패턴에 맞춘 구조적 대책을 설계하면서도 동시에 호우경보를 알리고,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피령을 내리는 등 비구조적 체계도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며 "위험을 빨리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여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