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최종 합의안 도출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이 걸프 국가, 러시아, 인도를 비롯한 산유국들과 함께 플라스틱 감축 반대에 나선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8일째 열리고 있는 유엔 정부간협상위원회(INC-5.2)는 오는 14일 폐막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시간은 사흘이다. 이 기간 내에 최종 합의를 도출해야 하지만 미국이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합의 가능성이 더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다.
미국은 플라스틱 생산 억제가 자국의 석유화학산업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서 미국은 플라스틱 협약을 비롯한 다자간 협정을 기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을 정도다.
미국이 다자간 협정보다 직접 협상을 선호하면서 국제협약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 협상전문가는 "미국이 '전세계적인 모든 것'에 반대하고 타협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비공개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의사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과도한 규제로 미국 기업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국가 주권을 존중하고 플라스틱 오염 감축에 초점을 맞춘 협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에는 유엔 결의안에서 플라스틱 전체 수명 주기를 다루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협약 목적을 플라스틱 오염 관리로 한정하자는 공식제안서까지 제출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플라스틱 첨가제 규제를 반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몇몇 국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한을 받은 태평양 섬나라의 한 대표는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줄면서 산유국들은 플라스틱을 비롯한 석유화학산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제로카본 애널리틱스(Zero Carbon Analytics)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이 전세계 플라스틱의 3분의2를 생산하고 있다. 선진국의 한 협상가에 따르면 플라스틱 감축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협약이 수출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2개 아랍국가를 대표해 러시아, 인도, 이란, 말레이시아가 플라스틱 생산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거부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며 관련 조항을 협약 초안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대표단은 공식 제안서를 내지 않은 중국과 브라질도 이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캐나다 및 호주, 유럽 대부분의 국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및 태평양 섬 국가를 포함한 100여개국으로 구성된 연합은 플라스틱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일 것을 지지하고 있다. 일본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각국이 플라스틱 소비와 생산을 관리할 것을 촉구하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강제력을 지닌 협약을 사실상 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협상단들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자 투표 방식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결 투표는 절차 초안 규정에 따라 합의에 실패할 경우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이마저도 사우디,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국들이 투표 거부권을 유지하고 있어 투표 여부도 불투명하다.
환경·시민단체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투표를 주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가급적 다수결 투표를 하기 전에 플라스틱 이해국들이 의미있고 효과적인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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