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코로나에 무료배식도 끊긴 쪽방촌..."곧 철거한다는데 걱정"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5-18 19:12:37
  • -
  • +
  • 인쇄
겨울맞은 영등포 쪽방촌 가보니...지원 물품도 사람 발길도 '뚝'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지은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서 야만인 존이 '행복'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모조리 배제하는 '알파계급' 사회를 향해 던진 일침이다.

연말을 맞은 거리 분위기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느 때보다 침울하지만 서울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했다. 백화점 안팎에서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뒤로한 채, 백화점 화물주차장을 끼고 모퉁이를 돌면 서울의 마지막 남은 집창촌이 강물처럼 펼쳐진다. 바로 그 건너편에 쪽방촌이 있다.

영등포 쪽방촌은 1970년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밀려난 도시빈곤층이 대거 몰리면서 형성됐다. 쪽방은 단열과 단음, 난방, 위생, 화재, 범죄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한 주거환경이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6.6㎡(2평) 이내의 좁은 공간. 올해도 어김없이 쪽방촌에 겨울이 찾아왔다.

▲두 다리 뻗고 있기도 벅찬 쪽방


올겨울 쪽방촌은 유난히 더 춥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그나마 지급되는 물품이나 배식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하루평균 500여명에게 점심을 무료 배식하던 '토마스의 집'은 운영을 잠정 중단한 상태. 쪽방촌 인근에 있는 '광야교회'가 그 빈자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22일 방문한 광야교회의 '홈리스복지센터'는 저마다 음식을 포장하느라 움직임이 분주했다. 포장된 음식들은 거동이 불편한 쪽방촌 주민들에게 일일이 배달하고 있다고 한다. 왕석진 광야교회 집사는 "지금은 65세 이상 주민들만 복지센터에서 돌보고 있다"며 "코로나19로 교회 안에서 배식할 수 없다보니 이렇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장실이 없는 주민들은 교회 샤워실이라도 이용해야 할텐데,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으니 걱정"이라며, 쪽방촌 주민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걱정을 한움큼 토해냈다.

광야교회가 매년 11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던 '광야인의 날' 행사도 코로나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11월 14일 예정돼 있던 행사날에 쪽방촌 주민들에게 월동점퍼 1800벌을 나눠줄 예정이었지만 방역수칙에 따라 행사가 축소되면서 실제 배부된 점퍼는 수백벌에 그쳤다는 것.

광야교회의 지원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는 쪽방촌 사람들에겐 사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유일한 터전인 쪽방이 곧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2021년말이면 임대주택이 착공된다.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주민들을 내쫓고 철거하지는 않지만 대다수 쪽방촌 주민들은 이주하기를 꺼리고 있다.

쪽방촌에 들어설 임대주택은 월 3만원 정도만 내면 되지만 입주할 때 161만원씩 내야 하는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민 정모(63)씨는 "살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사하는 것도 버겁다"면서 "이사를 안 가려면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고 긴 숨을 내쉬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매월 70여만원을 받으면 이 중 23만원을 월세로 낸다. 나머지 돈으로 한달 식비와 생필품, 약값 등으로 쓰고 나면 여윳돈이 있을 리 없다. 이들에게 보증금 161만원은 거머쥘 수 없는 목돈인 게 현실이다.

쪽방촌 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자, 주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민 윤모(81)씨는 "시민단체와 지자체 동의를 얻어 진행되는 것이라는데 난 여지껏 쪽방촌 정비사업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그러니 쪽방촌 재개발 사업에 동의한 적도 없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광야교회에서 사역활동을 하는 김모씨는 "주거환경 개선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랜기간 무너져내린 주민들의 마음을 다잡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쪽방촌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당장 올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ESG '환경·사회' 지표 투자전략 반영했더니 지수 수익률 상회"

투자전략에 ESG 세부지표를 반영하면 시장대비 높은 장기수익률과 안정적인 위험관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ESG 평가 및 투자자문기관 서

'몸짱 소방관' 2026년 달력 만든다...'우리동네GS'에서 사전예약

오는 11월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2026년도 '몸짱 소방관 달력'이 나온다.몸짱 소방관 달력의 정식명칭은 '소방관 희망나눔달력'으로, 서울시 소방재난본

SK이노, 에이트린 재생플라스틱 우산에 전과정평가(LCA) 무상 지원

SK이노베이션이 소셜벤처 '에이트린'의 재생플라스틱 우산에 대한 전과정평가(LCA)를 무상 지원한다.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KT도 '유심' 무상교체 시행...김영섭 대표는 연임포기

KT는 최근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및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다시한번 사과하고, 고객의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5일부터 교체를 희망하는 전 고

노동부 칼 빼들었다...'런베뮤' 지점과 계열사도 근로감독

고용노동부가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든 지점과 운영사인 엘비엠의 계열사까지 근로감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런던베이글

SPC 허진수-허희수 형제 '나란히 승진'...경영승계 '속도낸다'

SPC그룹은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하면서 3세 경영승계 작업을 가속화했다.4일 SPC그룹은 이같은 인사단행

기후/환경

+

아마존 '지구허파' 옛말?...14만건 산불로 '탄소배출원'으로 전락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지난해 산림벌채보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유럽연합(EU) 공동연구

韓선박 무더기 운항제한 직면하나?..."탄소감축 못하면 국제규제"

한국 해운업계가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해 일부 선박이 운항제한이나 벌금을 맞을 위기에 직면했다.기후솔루션은 5일 전세계 100대 해운사의 온실가스

화석연료 못버리는 국가들..."파리협약 1.5℃ 목표달성 불가능"

전세계가 지구온난화를 1.5℃ 이내로 억제하기로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5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

[뷰펠] 에너지 저장하는 '모래 배터리' 개발...베트남 스타트업의 도전

뉴스트리가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뷰티풀펠로우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단독] 정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률 '61%안'으로 가닥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가 '61%안'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4일 정부 안팎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5

국제기후기금 97%는 기술에 '몰빵'...사회적 지원은 '찔끔'

국제적으로 조성된 기후기금의 97%는 기술투자에 투입됐고, 사람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3일(현지시간) 영국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