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또 한국의 고정밀 지도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벌써 세번째다. 1대5000 축척의 정밀지도는 골목 단위까지 식별 가능한 수준으로, 우리나라는 법으로 이 지도데이터가 해외로 반출되지 못하도록 금지해놓고 있다. 그런데 구글은 미국 정부까지 앞세워 정밀지도 데이터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오는 8일 국토교통부와 국방부, 외교부 등 8개 부처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제공여부를 결정하고, 오는 11일까지 구글에 가부를 통보하겠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지난 2007년과 2016년에도 한국의 정밀지도 데이터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당시 구글의 요청에 조건을 걸었다. 현행법으로 정밀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할 수 없으니, 구글이 서버를 국내 설치하면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거부했고, 이에 정부는 구글에 정밀지도 데이터 제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글은 이번에 또 요구하고 나섰다.
구글이 세번에 걸쳐 요구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정밀지도 데이터가 절실히 필요했다면 국내에 구글 서버를 설치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구글은 이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한국에 서버가 설치돼 있으면 국내법을 적용받아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국내에 서버가 있기 때문에 국내법에 적용받고 있지만 구글은 국내에 서버가 없다는 이유로 국내법을 피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해외기업과 되레 역차별이라고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국내 서버 설치를 거부하는 구글이 한사코 한국의 정밀지도 데이터를 손에 넣으려는 것은 '지도 품질 향상'이 아니라 고정밀 공간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구글은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를 통해 미국에서 상용서비스를 운영중이며, 위치기반 광고와 스마트시티 사업에도 데이터를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전은 좌표 기반 정밀 타격으로 작동하는데, 고정밀 지도는 바로 그 좌표의 원천"이라며 "이런 데이터를 외국에 넘기는 건 안보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티맵 등 국내 지도 플랫폼은 국내법에 따라 보안 요건을 충족하며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 중이다. 네이버는 리뷰·예약과 연동된 검색 생태계를, 티맵은 내비게이션 기반 API 공급망을, 카카오는 초정밀 버스정보와 위치공유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실내지도 구현도 활발히 진행돼, 주요 백화점과 시장 정보가 광고 및 상업 서비스로 연결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지도 API를 통해 특정 플랫폼 종속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구글 진입을 경계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구글은 국내에 고정 사업장을 두지 않아 법인세를 내지 않으며, 우리나라 공공자산인 고정밀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약 1조원을 투입해 해당 데이터를 구축했으며, 연간 800억원 이상 유지비가 든다. 공공데이터에 대한 공공기여 없이 반출만 요청하는 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구글의 입장을 대변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위치정보 반출 제한을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규정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만 정부는 구글의 요청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산업·보안·통상이 얽힌 전략 사안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7월 관세협상에서 "지도 반출은 우리가 방어한 사안"이라고 밝혔고, 주무부처인 국토부 김윤덕 장관은 "국방과 국민의 안전이 통상보다 우선"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 사안을 놓고 오는 8일 부처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이 회의에서 국가안보와 산업주권이 걸린 이 사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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