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를 탄생시킨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 투자자들에게 기업공개(IPO) 계획을 숨기고 지분 매각을 유도했다는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15일 경찰에 출두했다. 방 의장의 혐의는 '사기적 부정거래'. IPO 계획이 있는데도 이를 속이고 하이브 지분을 매각하도록 유도해 투자자들로 하여금 금전적 손실을 입혔다는 혐의다.
금융당국은 방 의장이 대주주가 상장 후 일정기간 주식을 팔 수 없도록 하는 '보호예수' 제도를 피해 부당 차익을 얻기 위해 기획 사모펀드를 동원하고 기존 투자자들을 기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방시혁 의장과 하이브는 "사실과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방 의장이 지분매각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먼저 지분매각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 당시에는 글로벌 투자유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IPO를 계획하고 있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분매각 과정에서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은 방 의장이 고의성이 있었다는 근거로 '지정감사'를 지목했다. 지정감사는 금융감독원이 지정한 복수의 회계법인 중 하나와 계약해 외부감사를 받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기 위해선 지정감사인이 감사한 재무제표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정감사는 보통 IPO를 위한 준비단계로 여겨진다. 실제로 하이브(당시 빅히트)는 2019년 9월 금감원에 지정감사를 신청했고, 그해 11월 한영회계법인과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당시 하이브의 지정감사는 기존 투자자인 레전드캐피탈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레전드캐피탈은 상장 및 장기투자를 염두에 두고 2016년 45억원을 하이브에 투자했다. 그러나 출자자(LP)들이 장기투자에 대한 불안정성을 이유로 조정을 요구하자, 상장 가능성 타진과 LP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로써 하이브 측에 지정감사인 선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2018년 무렵 BTS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이브의 상장은 증권가의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엔터 사업만으로 IPO를 추진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방시혁 의장은 언론에 "기업가치 5조원 미만으로 상장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BTS를 대체할 가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BTS 멤버들의 입대시기는 다가오고 있어 '리스크'가 큰 상황이었다. 시장에서 상장적기로 판단되던 2018년을 넘기면서 언론에서는 '빅히트, 상장 안하나 못하나' '빅히트 멀어진 자본시장' '상장시기 놓쳤다' 기사들이 연일 보도됐다.
하이브는 자금마련이 시급했다. BTS가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수상하며 미국 주류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일 때부터 글로벌 사업확장 계획을 세웠던 하이브는 이를 위해 1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방 의장과 하이브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운용하는 벤처캐피탈 비전펀드의 자금유치에 나섰지만 2019년 말 최종 무산됐다.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엔터 산업 불안정성이 투자 유치에 큰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며 "당시 BTS는 주목받는 아티스트였지만 글로벌 장기 흥행을 약속받은 수준은 아니었고, 병역 문제도 안고 있었다"고 추측했다.
하이브는 비전펀드 자금유치가 무산되자, 급히 IPO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는 2020년 1월 주관사를 선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2020년 1월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연일 곤두발질을 쳤고, 증권가는 냉기가 돌았다. 콘서트는 줄줄이 취소됐다. 월드투어를 계획하던 BTS 역시 모든 일정이 올스톱됐다. IPO를 앞두고 있는 하이브 입장에서는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천우신조로 코로나 시국에 우리나라 주가지수는 3000을 돌파하면서 반등하는 상황을 맞았다. 게다가 BTS는 당시 팬데믹 기간에 유튜브, 위버스 등을 통한 비대면 콘텐츠를 진행하면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이브 상장 직전인 8월에 발표한 신곡 '다이너마이트'는 미국 빌보드 차트 싱글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역대급 대박을 터트렸다. 이에 주당 13만5000원이었던 공모가는 2020년 10월 상장 첫날 '따상'을 찍으며 흥행몰이를 했다.
따라서 방 의장의 입장은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 매각이 이뤄질 당시 IPO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방 의장 측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 매각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진행된 일"이라고 했다. 하이브 지분을 보유하던 기존 투자사는 LB인베스트먼트, 레전드캐피탈, 알펜루트자산운용 등 3곳이다. 이들은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이스톤에쿼티파트너스(PE)에 각각 지분을 매각했다.
2012년과 2016년에 걸쳐 총 65억원을 하이브에 투자했던 'LB인베스트먼트'는 '하이브투자펀드' 8년 운용기간이 끝난 2019년 11월에 만기 청산했다. 헷지펀드였던 '알펜루트자산운용'은 당시 라임사태가 터지면서 증권사로부터 환매요구가 빗발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감사를 요구했던 '레전드캐피탈'은 보유하고 있던 하이브 지분 10.18% 가운데 장기투자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3.88%만 매각하고 나머지는 상장 이후 처분했다.
당시 3개의 투자사로부터 하이브 주식을 매수했던 스틱인베스트먼트나 이스톤PE도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풋백옵션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까지 상장에 성공하면 이익을 나누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지분을 비싸게 되사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신 상장하면 매각 차익의 30%를 나눠주는 이익분배약정(언 아웃)도 맺었다.
다행히 2020년 상장은 무사히 진행됐기에 방시혁 의장은 이들로부터 지분을 되사지 않아도 됐다. 스틱과 이스톤은 상장 후 지분 매각으로 막대한 차익을 얻었고, 방 의장도 주주간 계약에 따라 이 차익의 30%인 4000억원을 받았다. 만약 제때 상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방시혁 의장은 물론이고 지금의 하이브도 파산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컸던 상황이었다.
이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한 관계자는 "엔터 장르는 언제 어떤 이슈로 뜨고 어떤 문제로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사업"이라며 "미리 성공을 점치고 수익을 얻기 위한 계획까지 세운다는 건 예언에 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