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슬픔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1-21 1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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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일시적이고 조건적
환경과 상황탓 하면 노예성 벗어날 수 없어

'아, 행복해!' 행복을 느끼는 순간 우린 이런 감탄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만 고통스러우면 이내 다르게 말한다. '괴로워', '속상해', '아, 짜증나!' 충만해 보였던 행복감은 이내 사라지고 고통 감정이 엄습한다. 이처럼 우리의 행복이나 기쁨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다.

입시생들이 대입 수능고사를 치렀다. 이어지는 대학입시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크게 교차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환호를 지르고 축하를 주고받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눈물을 쏟는다. 입시 결과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입시만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크고 작은 일들의 성취 여부와 사회 및 정치를 둘러싼 온갖 이슈들은 우리의 감정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소득과 재산은 개인의 삶과 감정 상태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일과 활동, 직장과 사업, 인간관계와 대화에서 발생하는 온갖 미세한 것들도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만든다. 더욱이 사회체계가 체스 경기처럼 냉혹한 승부를 가리거나, 생존 게임처럼 소수만이 웃게 만드는 구조인 경우 기쁨과 슬픔은 양극화된다. 기쁨은 햇살처럼 비취고 슬픔은 폭우처럼 마구 쏟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기쁨과 슬픔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가오는 것이어서 우린 그저 수용해야만 하는 걸까?

◇ 슬픈 정념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

철학자 스피노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픔을 사로잡혀 거기 익숙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슬픔을 둘러싼 세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먼저 슬픈 정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노예적 정신에 사로잡혀 슬픔의 제단 아래서 슬픔을 먹으며 살아간다. 슬픈 정념의 사슬에 매여 거기 아주 익숙해진다.

둘째는 그런 슬픈 정념들을 이용하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슬픈 정념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고 온갖 이익을 추구한다. 스피노자는 17세기 유럽의 문맥에서 권력자와 사제가 그런 부류라고 보았다. 이들은 사람들을 노예적 정신으로 길들인다. 슬픔 속으로 몰아넣고 슬픔을 키우고 그 슬픔을 자양분으로 통치하고 이익을 추구한다.

셋째는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정념 일반에 대해 슬퍼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삶의 현실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슬픔의 무대가 된 세상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 비극적 운명의 무게와 두께를 감당하지 못해 슬퍼한다. 결국은 냉소적인 태도로 살아가거나 허무적 태도를 선택하게 된다. 이들은 슬픔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면서도 그 출구를 찾지 못해 좌절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픈 정념의 연쇄 안에서 살아간다 : 슬픔 자체, 증오, 반감, 조롱, 공포, 절망, 양심의 가책, 연민, 우울, 분개, 시기, 자기 폄하, 회한, 비굴, 수치, 후회, 분노, 복수, 잔인함 등등. 우리의 신체와 의식 안에 이런 정념들이 새겨져 있고 조변석개하는 날씨처럼 조변석개하는 여름 날씨처럼 우리 감정을 뒤흔든다.

◇ 기쁨을 선택하라

"기쁨을 선택하고 슬픔을 멀리하라." 스피노자의 제안이자 해법이다. 그의 어법으로 말하면 기쁨의 정서(Affect)를 선택하고, 슬픔의 정서를 피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이란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거나 불가항력으로 혹은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반대로 말한다. 기쁨의 정서를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그 주인이 된다고.

스피노자가 말하는 기쁨의 목록이나 슬픔의 목록들을 보면 심리적 감정 상태라기보다 상당히 포괄적인 것이다. 기쁨은 기쁜 기운 혹은 생명의 기운 같은 것이다. 슬픔은 어둡고 무겁고 격하고 폭력적인 기운들이다. 그는 능동적인 기쁨을 강조한다. 기쁜 정서, 기쁜 만남, 기쁜 노래, 기쁜 글, 기쁜 혁명, 기쁜 예술, 기쁜 놀이, 기쁜 정치, 기쁜 노동, 기쁜 연결, 기쁜 청빈 등등.

그는 기쁨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능동성은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다. 창조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그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신체(몸)을 기쁨의 감응을 일으키는 것과 접촉하라고. 기쁨을 일으키는 타자, 신체, 사물, 상황, 사건, 언어, 글, 작품, 언어, 이미지들과 조우할 때 기쁨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의 제안을 오독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유쾌하게 하는 사람들만 골라서 만나고, 기분을 전환하는 문화 상품들을 구매해서 즐기라는 메시지는 결코 아니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기쁨을 위하여 선택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상 슬픈 정념의 노예 상태의 잔여물일 수가 있다. 자신의 일시적 감각적 쾌·불쾌를 넘어서서 기쁨의 정서를 창조하는 삶의 배치를 만들라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한 소녀가 암수술을 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흉하게 빠졌다. 그래서 면도기로 머리카락을 다 밀었다. 아이는 학교와 친구를 무척 그리워했다. 퇴원을 하지마자 학교로 왔다. 아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친구들이 모두 함께 박수를 쳐준다. 눈이 둥글해져서 보니까 학급의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까까머리로 밀었다. 순간 소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들은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어울렸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쁨을 창조하는 방법이요 기쁨을 선택하는 지혜일 것이다.

◇ 스피노자의 외투와 안경

그럼 기쁨을 선택하라고 설파한 스피노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스피노자는 한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당한다. 자객의 단검에 그의 외투는 찢겨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스피노자는 외출할 때마다 그 외투를 그대로 입고 다녔다. 젊은 스피노자가 테러를 당한 이유는 그가 유대교의 전통적인 교리나 생활양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신도가 그를 공격했다. 괴한의 칼은 스피노자의 신체가 아니라 스피노자의 마음에 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외출하기 위해 외투를 걸칠 때마다 그는 그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왜 그 외투를 기꺼이 입었을까?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는 사람들이 언제나 자유를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기 목숨을 위협한 상흔이 묻은 옷을 폐기하지 않고 담담히 입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신의 자유의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1656년, 스피노자가 23세였을 때 그는 자신이 속한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파문됐다. 당시 파문의 결과는 가혹했다. 그 누구도 파문당한 죄인과 교제하지 못했다. 가족조차 그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물질을 공유하거나, 심지어 식사도 함께 할 수 없었다. 스피노자는 그 판결과 그에 따른 모든 처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추방의 경험은 스피노자를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된다. 파문의 여파로 그는 형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이후 안경 렌즈를 세공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자신이 합법적으로 승계받을 수 있는 모든 유산을 누이에게 기꺼이 넘겨준다. 유대인 공동체나 물질적 부가 자신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자유가 그리 크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자유를 해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고서 고독한 철학자의 길을 걸어나갔다. 그의 삶은 그 누가 보기에도 검소하고 초라한 자발적 청빈의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세속 속의 성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아는 교수님 중에 입양운동을 강조하는 분이 있다. 입양은 한 생명을 살리고 한 아이의 인생에 큰 변화를 준다고 외친다. 그분은 말만 하지 않고 직접 한 여아를 입양했다. 나는 그 분을 깊이 존중한다. 우리 사회에서 입양아를 기르면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분이 자기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두 살 난 아이 하나를 입양했다. 그런데 처음 6개월동안 온가족이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상처가 많은지 밥을 먹는데 식탁에서 자기 먹을 것을 두 팔로 감싼다. 그리고 주변을 노려보면서 함께 천천히 먹을 수 있는데도 빨리 먹어치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한 달 쯤 지나니까 좀 안심하며 식사를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마음을 여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였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분들의 윤리적 선택이 자꾸 떠올랐다. 아마 그분들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는 힘겨움과 기쁨을 함께 경험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선택'이라는 말에 눈이 자꾸 간다. 스피노자의 외투와 스피노자의 안경은 자유가 주는 기쁨을 선택한 증표처럼 보인다. 나 역시 '기쁨'을 선택하며 살리라고 다짐한다. 기쁨의 감응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리라고, 생명력과 웃음이 넘쳐나는 모임을 만들리라고, 기쁘게 일을 하고, 기쁘게 광야를 걸어가고, 기쁘게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을 만나리라고.

기쁨은 실존적 선택이 가져다주는 자유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환경에 매이거나 상황만 탓한다면 노예성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기쁨을 선택한 자는 좀 더 기뻐할 수 있다. 좀 더 기쁨을 나눠줄 수 있다. 고통을 선택한 자는 한결 덜 아프다. 고통이나 악조건을 직시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직면하면 역설적인 기쁨이 솟구치기도 한다. 고독을 선택하는 자는 고독하지 않다. 고독조차 즐길 일이다. 모든 것을 기쁘게 선택할 일이다. 함께 기쁨을 창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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