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끝>] 꿀벌이 가축?..."생태계에 초점 맞춰야"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1-30 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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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기도전 빈 벌통...전조 증상 뚜렷
"꿀벌 살리는 게 우리 스스로 살리는 일"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LS그룹 연수원인 경기도 안성시 LS미래원 야외 정원에 설치된 토종꿀벌 양봉시설에서 '한봉연구회' 소속 양봉전문가들이 토종꿀 생산 현황을 점검중이다. (사진=LS그룹)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7편: 농약에 설자리 잃은 꿀벌...유럽에선 어떻게?]에서 이어집니다>

현재 양봉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예년보다 따뜻한 11월 날씨에 여왕벌이 산란을 계속하면서 벌들이 동면하지 못하는 데다, 이로 인해 응애 등 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올초 약 100억마리의 꿀벌 집단실종 사태가 또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양봉농가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양봉전문가단체 한봉연구회의 장영기 사무국장은 "현재 양봉현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겨울나기를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벌통이 비고 있다고 한다"고 걱정했다. 벌통을 500~700개 키우던 곳에서 200~300통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도 들린다는 것이다.

씨앗벌 '종봉' 구매요청도 2배 늘었다. 꿀벌 개체수가 줄어들다보니 벌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봉 구매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18~20만원 거래되던 종봉 벌집 6매 가격은 30만원으로 뛴지 오래다. 종봉 개체수 자체가 부족해지면서 30만원 이상 준다고 해도 판매를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않다고 한다.

업계는 이미 내년 벌꿀 공급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통상 한국양봉농협은 양봉업자들로부터 아까시나무 개화기에 맞춰 5월말 수매를 받고, 물량이 완전히 확보되는 9월말~10월초에 가격을 결정하지만, 올해는 이미 내년 수매물량에 대한 금액을 선지급한 상태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꿀벌의 꽃가루받이에 의존하는 농산물 피해로 이어질 전망이다. 경북 성주군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박모 씨는 "이미 꽃가루받이를 위한 꿀벌 대여 가격이 25%정도 올랐다"며 "올해 올랐다고 내년에 안오른다는 보장이 없어 불안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양봉농가뿐만 아니라 꿀벌에 의존하는 과수농가에서는 올초와 같은 사태가 반복될까 걱정이 아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는 이미 기후변화 영향권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경북을 대표하던 사과는 이미 강원도까지 재배지가 북상했고, 남쪽지역에서 아열대 과일이 잘 자라고 있다. 

꿀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식물과 연계한 생태연구가 절실해보인다. 단순히 양봉산업의 육성정책에서 벗어나 꿀벌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 식물들의 변화까지 감안해 생태계 조성 차원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곧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 해외에선 '원예' 국내에선 '축산'



우리나라 양봉정책은 벌이 아니라 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벌의 역할이 크게 축소돼 있다. 꽃가루받이 매개자로서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약 6조원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살충제 남용 등으로 꿀벌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소모적인 긴급 지원금만 투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봉을 '축산'으로만 한정하는 관점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같은 접근에 꿀벌이 집단폐사에 이르게 된 복합적인 원인이 축소되면서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양봉을 식물과의 연계 관점에서 취급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축산으로만 한정된 양봉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양봉은 단순히 꿀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벌을 매개로 살아가는 농작물 등을 감안하면 생태계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상미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장은 올초 꿀벌 집단실종 사태의 원인을 '이상기상'과 '사양관리'로 짚었다. 그러면서 양쪽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꿀벌, 생태계, 농가소득이 균형을 이루는 '적정 밀원'을 꼽았다. 결국 이번 집단실종 사태의 핵심은 온도 변화에 취약한 꿀벌의 면역력 저하다. 밀원을 제대로 관리하면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또 꽃꿀이 아닌 설탕 기반으로 미네랄 함량이 떨어져 꿀벌 발육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양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벌집 밀집도는 1㎢당 26.7개로 세계 1위다. 현재 꿀벌 개체수는 1970~80년대에 비해  3배 늘었지만, 밀원지 면적은 48만헥타르(㏊)서 2020년 14.5만㏊로 감소했다. 밀원식물에서 나오는 천연꿀이 부족해지면 꿀벌들은 인위적인 설탕사료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봉농가들의 이동 능력도 향상되면서 지역별로 남아있던 밀원에 대한 수탈적 채취도 심해지고, 더 많은 꿀벌들이 몰려들면서 전국 질병과 병해충들이 교류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상미 과장은 "꿀벌 밀도가 너무 높으면 꽃가루가 제대로 나오기도 전의 미숙한 꽃의 꿀을 다 따 버리게 돼 식물에게도 좋지 않다"면서 "결국 생태계 전반이 균형을 이뤄야 꿀벌에게도 좋은 것"이라며 '적정 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벌이 활동하는 시기, 꽃이 피는 시기에 맞게 목본류, 초본류 등이 골고루 얽혀 공생할 수 있는 밀원지를 형성하고, 농가소득이 보장될 수 있도록 양봉산물들을 더 가치 있게 팔도록 하는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은 봉독으로 가축항생제를 대체하거나, 봉독을 활용한 의약품 및 화장품을 개발하는 등 양봉산물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양봉정책을 축산과에서 수행하다보니 질병대처가 더뎌지는 어려움도 발생한다. 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한국양봉학회 회장)는 "꿀벌은 축산법에 따르기 때문에 질병이 생기면 가축전염병에 의해 관리가 된다"면서 "다른 가축과 달리 절지동물인 꿀벌은 곤충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 곤충 전문가가 아닌 수의사 처방을 받아야 쓸 수 있는 구조"라고 짚었다.

이렇다 보니 꿀벌응애 등 양봉에 치명적인 병해충 피해에 대해 보상 근거가 없다. 특히 보장성이 낮으니 꿀벌 가축재해보험 가입건수는 2018년 1874건에서 2021년 516건으로 72.5% 감소했고, 지난해 전체 벌통수 대비 보험가입률은 2.6%에 불과했다. 소, 돼지, 닭과 달리 기생충 피해를 입은 벌집을 불태워도 질병폐사 처리비용이 지원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한국양봉학회 회장)은 "경관농업지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꾸려나가 지역에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사회가 꽃피는 나무들을 함께 가꿔나가면 국가생태계가 더 풍요로워지면서 좋은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newstree


정 교수는 이어 "양봉이라는 분야 자체가 식물, 곤충, 축산, 농업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으면서 독립적인 모습을 잘 만들어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반대로 이번 월동벌 집단실종 사태를 계기로 생태계 보전을 위한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 교수는 꿀벌과 생태계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경관농업지역'을 꼽았다. 그는 "최근들어 포항시 호미곶을 비롯해 도시에는 다양한 꽃길들을 만들고, 시골에서는 꽃밭을 만들어 농업생태계를 유지하는 사업들이 진행중이다"며 "이런 시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지역에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사회가 꽃피는 나무들을 함께 가꿔나가야 국가생태계 자체가 더 풍요로워지면서 좋은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양봉생태과를 중심으로 오는 2023년부터 8년간 산림청,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등이 나서 꿀벌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꿀벌의 공익적 가치를 단순한 농업에서의 화분매개 가치를 넘어 생태계 전반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의 다부처 연구개발 사업 '꿀벌 보호를 위한 밀원수종 개발 및 생태계 보전'을 주관한다.


◇ LS·KB 꿀벌 살리기···'도시양봉' 바람


▲KB금융그룹 직원 가족들이 KB국민은행 본관 옥상에 설치된 'K-Bee' 도시 양봉장에서 벌 키우기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KB금융그룹)


국제연합(UN)이 2017년부터 매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이라 별도 지정할 정도로 꿀벌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내·외 기업들도 ESG 차원에서 꿀벌 살리기에 나섰다. 독일 포르쉐는 라이프치히 공장에 약 300만마리가 서식할 수 있는 양봉 시설을 만들었다. 영국의 자동차 기업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약 25~30만마리의 꿀벌을 본사 및 공장 부지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꿀벌 살리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일례로 LS그룹은 지난 2021년부터 안성시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토종꿀벌 육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S그룹은 그룹 연수원인 LS미래원 내 유휴부지를 토종꿀벌 양봉 장소로 제공하며, 사업 운영은 지역 농가 살리기 차원에서 안성시 양봉전문가 단체 한봉연구회가 진행한다.

토종꿀벌 40만마리가 있는 부지에서 해마다 60kg의 벌꿀이 수확되고 있다. 이 토종꿀은 LS가 연말에 개최하는 나눔행사를 통해 안성시 내 복지시설 및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에 전달되고 있다. 한봉연구회 장영기 사무국장은 "LS그룹에서 사육환경을 조성해주고, 생산하는 꿀도 수매를 해주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KB금융그룹은 꿀벌 생태계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K-Bee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지역에 꿀샘식물 10만그루 심기를 하는 한편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KB국민은행 본점 옥상에 'K-Bee 도시양봉장'도 조성했다. 현재 이 양봉장에 서식하는 약 12만마리의 꿀벌들은 한강과 샛강 등지를 오가며 야생꿀을 채취하고 있다.

또한 KB는 서울식물원과 연계해 식물원 내 야생벌을 위한 'Bee 호텔'을 설치하고 벌의 생태와 환경문제에 대한 생태체험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모두 도시에서 대안양봉을 실시하는 사회적 기업 '어반비즈'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됐다. 어반비즈 박진 대표는 "벌의 밀도가 높지 않고, 상대적으로 농약이 적은 도시는 벌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숲세권'을 더 좋아하고, 숲이 있으면 아파트 값이 오른는 등 숲이라고 하는 공간이 점점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며 "결국 도시화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도시 역시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꿀벌은 도시 생태계 회복의 출발점이다"며 "꿀벌이 숲을 가꾸고, 숲은 다른 곤충들을 불러오고, 곤충들은 더 많은 새를 불러온다"고 덧붙였다.

▲어반비즈 박진 대표는 "벌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newstree


박 대표에 따르면 공룡이 있던 시절에는 꽃이 없었다. 대개 녹색식물과 고사리류 일색이었고, 간혹 있더라도 흰색 꽃만 피었다는 것이다. 그는 "꿀벌이 생겨나면서 식물들도 진화를 거듭했고, 다양한 곤충과 포유류가 생겨났기 때문에 크게 보면 인류의 문명도 꿀벌과 식물의 화합 없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말하면 꿀벌이 사라지면 그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따라서 벌을 지킨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종을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며 "시민들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체념하기 앞서 벌을 위해 꽃을 심어주는 일, 농약에 취약한 꿀벌들을 위해 유기농 식품 하나라도 더 사먹는 일 등 작더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봉연구회 장 사무국장은 "취미로 양봉을 하는 LS그룹 구자은 회장은 '꿀이 너무 많이 차서 할 수 없이 생산한 꿀'이라는 문구를 넣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꿀벌들이 환경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양봉산물 품질도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서 "단기 수익만을 위해 과도하게 밀원과 꿀벌을 착취하지 않고, 정말 '할 수 없이 남은 꿀'을 내다 팔아야 사람과 환경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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