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⑦] 농약에 설자리 잃은 꿀벌...유럽에선 어떻게?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11-28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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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철저한 농약규제...살포전 사전고지
덴마크 도시양봉 "도시가 더 나은 환경"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의 한 옥상에서 벌통을 들어보이는 양봉꾼. 사회적 기업 '뷰비'(Bybi)는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대안양봉을 실시하고 있다.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6편: '양봉강국' 뉴질랜드를 가다...'마누카꿀' 성공비결은?]에서 이어집니다>

최근 스위스 연구진은 남극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대륙 198개국에서 생산된 꿀 샘플을 검사했다. 샘플 가운데 75%가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성분을 최소 1종 이상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꿀벌의 뇌에 영향을 미친다. 신경계를 교란해 꿀벌의 생존에 필수적인 산란과 귀소를 방해한다. 애벌레는 10ppb(1ppb=10억분의 1) 수준으로 희석된 살충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한때 미국 전역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에 의해 꿀벌 240억마리가 떼죽음을 당해 양봉농가들이 기르던 꿀벌의 최소 30%, 최대 90%가 폐사했다는 사실이 보고된 적도 있다.

벌꿀과 채소, 과일 등 꿀벌을 매개로 생산되는 식량규모는 연 400조원에 이른다. 전체 농작물의 75%가 벌의 꽃가루받이 활동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위상을 갖춘 꿀벌이 겪는 농약 피해는 확산되는 추세다. 지구온난화로 따뜻해진 겨울날씨가 병해충을 증식시키고, 이를 박멸하기 위해 더 많은 농약이 살포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폭염과 폭우까지 잦아지면서 농약이 농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 대기중에 흩어지거나 물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농작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살포하는 농약이 꽃가루받이 매개자인 꿀벌을 몰살하면서 도리어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인간의 인지기능과 생식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네오니코티니오이드계 살충제가 국내에서 '친환경 살충제'로 인식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내 농약 사용량은 꾸준히 늘어 선진국의 10배 수준이다. 이 가운데 20% 이상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국내 곡물자급률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농업과 식량안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꿀벌 보호정책을 펼치고 있다. EU는 지난 2013년부터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을 부분적으로 금지했다. 2018년에는 클로티아니딘, 이미다클로프리드, 티아메톡삼 성분의 살충제도 실외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또 올 6월 EU집행위원회는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농경지와 숲, 도시환경, 바다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의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 사용 및 위험을 50%까지 줄일 것을 회원국에 제안했다.

이에 뉴스트리는 유럽 국가들이 양봉산업 자체뿐 아니라 양봉산업의 전·후방산업까지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현지(덴마크 및 체코)를 직접 찾아가봤다.


◇ 체코 "농약살포, 양봉농가에 미리 고지"



체코인들 서로 처음 만났을 때 선호하는 스몰토크 주제는 다름 아닌 양봉이다. 2018년 꿀 생산량이 전세계 39위에 불과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1평방킬로미터당 양봉인구 수와 벌통 수는 체코가 유럽에서 으뜸이다. 체코에서는 전국토에 걸쳐 6만여명의 양봉인구가 평균 10개 내외의 벌통을 기르는 '취미 양봉'이 성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취미 양봉이 성행한다는 말은 나라 전체가 꿀벌 육성에 알맞은 환경으로 조성돼 있다는 이야기다. 체코 프라하에서 약 250km 떨어진 비스코프 지구에서 벌통 800개 규모의 양봉장을 운영하는 미로슬라브 세들라첵(Miroslav Sedláček) 씨는 "체코는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모호하다"며 "그만큼 꿀벌은 어디서나 농약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체코 비스코프 지구에서 37년째 양봉을 하고 있는 미로슬라브 세들라첵(Miroslav Sedláček) 씨는 벌집을 들어보이며 "농촌과 도시의 경계가 모호한 체코에서 꿀벌은 어디서나 농약에 노출될 수 있지만, 그만큼 농약에 대한 규제가 철저하다"고 말했다. ©newstree


할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10살 때부터 37년간 양봉을 해온 세들라첵 씨는 정부에서 자문을 구할 정도로 베테랑 양봉꾼이다. 그는 "다행히 체코는 정부기관과 체코양봉연구소, 체코양봉협회 간 민·관 연계가 잘돼 있고, 사회적으로 꿀벌을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농약에 대한 규제가 철저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체코 정부는 자국내 양봉산업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취미로 벌통 1개를 키우더라도 양봉가로서 지방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등록된 벌통의 위치를 공용 데이터망에 올린다. 공용 데이터망은 모든 농업인들이 접속할 수 있다. 농업인들은 농약을 살포하기 전 공용 데이터망에 접속해 인근 양봉장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의 양봉꾼들에게 농약의 종류와 살포 시기를 직접 고지해야 한다.

1919년 설립된 체코양봉연구소는 대표적인 꿀벌 기생충 '바로아 응애'를 포함한 방제약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연구소의 인증을 받은 약품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세들라첵 씨는 "정부는 꿀벌 건강을 위한 바로아 응애 방제약이나 영세 농가가 구비하기 힘든 자동 채밀기와 같은 중장비 등에 대해 비용의 30~40%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특히 응애 방제약 보조금은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확대된 응애 피해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체코의 겨울은 유독 따뜻했다. 겨울이 따뜻하면 여왕벌은 산란을 멈추지 않는다. 응애는 알 사이의 빈 공간이나 꿀벌 애벌레의 고치 속으로 숨어든다. 다 큰 꿀벌들은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 여왕을 중심으로 봉구를 형성하는데, 애벌레의 먹이를 공급하기 위해 벌집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세력이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다. 게다가 애벌레가 꿀을 먹는 시기에는 먹이에 방제약이 섞여들어갈 수 있어 약을 치기도 어렵다.

세들라첵 씨는 "이런 까닭에 통상 10% 내외에 불과하던 월동벌 폐사율이 20~30%로 급증했다"며 비슷한 피해를 겪은 한국의 양봉꾼들에게 '여왕벌 격리통'을 활용할 것을 권장했다. 아크릴 재질로 만들어진 여왕벌 격리통은 중앙에 여왕벌을 고립시키는 동그란 칸이 있고, 다른 일벌이 여왕벌에게 먹이를 공급할 정도의 작은 틈새만 벌어져 있는 벌집이다.

▲아크릴 재질의 '여왕벌 격리통' 중앙에는 여왕벌을 고립시키는 동그란 칸이 있다. ©newstree


세들라첵 씨는 "여왕벌이 좁은 곳에 고립되면 알을 낳지 못하기 때문에 부화한 애벌레들 사이로 응애가 창궐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애벌레가 없으면 먹이에 방제약이 섞일 걱정 없이 약도 칠 수 있어 응애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다"며 "겨우내 여왕벌은 체내에 지방과 영양소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봄이 되고 나서 풀어주면 그동안 낳지 못한 분량만큼 알을 대거 낳기 때문에 벌의 세력은 다시 회복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들라첵 씨는 이같은 방식으로 800개의 벌통 가운데 1통만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체코에서 가장 큰 양봉 유튜버이기도 한 그는 유튜브를 양봉꾼들과의 소통창구로 활용하며 양봉 진흥에 힘쓰고 있다.


◇덴마크 "꿀벌은 자연의 외교관"



덴마크는 2021년 기준 국제 지속가능성지수 2위 국가다. 전력의 절반을 풍력으로 생산하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2025년 세계 최초 탄소중립 도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기조는 양봉에도 적용된다. 1866년 설립돼 1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덴마크양봉협회는 꿀벌이 자연적으로 갖춘 물질을 활용한 응애 퇴치약을 개발했다. 내성 문제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는 유기농법인 것이다.

문제는 덴마크마저 꿀벌들에게 안전한 환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덴마크 내에 서식하는 벌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56개 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덴마크는 꿀벌 개체수 감소율이 가장 위험한 수준인 국가 6개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뷰비'(Bybi)는 대안으로 '도시양봉'을 펼치고 있다. 뷰비의 올리버 맥스웰(Oliver Maxwell) 최고경영자(CEO)는 "사람들은 흔히 도시 역시 자연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며 "도시에도 곤충, 식물, 물고기, 철새 등 식생이 있고,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충제나 제초제가 적은 도시가 꿀벌에게 더 나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뷰비' 사무실 전경 ©newstree


'도시 벌'을 뜻하는 뷰비는 2009년 코펜하겐의 한 화장품 공장 뒤편의 유휴부지를 양봉장으로 운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유휴부지에 꽃과 나무를 심고, 울타리에 구멍을 내 동물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난민과 저소득층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적극 동원해 일자리를 창출했다. 부지를 가꾸고 꾸미는 데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했다. 1년 뒤 수확한 꿀은 화장품업체 바이어들에게 선물로 증정돼 큰 호응을 얻었다.

뷰비는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 코펜하겐 인근 30여개 업체들, 학교들, 문화단체들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해마다 150여개 벌통에서 5~6톤가량의 꿀을 수확하는 뷰비는 비슷한 규모의 양봉농가와 비교했을 때 10배 넘는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맥스웰 CEO에 따르면 덴마크의 농업은 극도로 산업화됐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늦었던 덴마크는 소, 돼지, 밍크, 꿀벌 등 축산을 중심으로 농업을 산업화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때 전세계 밍크가죽의 40%가 덴마크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맥스웰 CEO는 "최근 덴마크에서도 EU 차원에서 시행하는 생물다양성직불금의 일환으로 꿀샘식물(밀원) 조성을 장려해 꿀벌 개체수를 회복하려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수확량만을 극대화해 상업적 수익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짚었다.

▲뷰비의 올리버 맥스웰(Oliver Maxwell) CEO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가 아닌 '자연 그 자체'라는 인식을 갖출 필요가 있고, 어느 한 종을 착취하면서 번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stree


맥스웰 CEO는 "지속가능성은 결국 '현상유지'가 목표"라며 "우리는 꿀벌과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꿀벌의 분봉을 인위적으로 막고, 벌침을 쏘지 않도록 하고, 채밀량을 높이는데 치중한 꿀벌 육종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맥스웰 CEO는 "꿀벌은 봄에 세력이 불어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무리를 이뤄 떠나는 분봉이 일어나지만, 개화기와 겹쳐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양봉인들이 이를 막으려 한다"며 "이는 모두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과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상황은 점차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인간활동이 일으킨 기후변화로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꿀벌이 스트레스를 받고, 그 산물에 의존하는 사람 역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결국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꿀벌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뷰비는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다.

맥스웰 CEO는 "뷰비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꿀을 수확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며 "공동체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일이 주목적"이라며 "꿀벌은 자연의 외교관이고, 초청을 받은 우리가 모두를 위한 환경을 함께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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