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개발국 기후대응 지원한다더니...이자까지 챙기는 선진국들

이준성 기자 / 기사승인 : 2023-12-13 15: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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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 기후대응 지원금 대부분 '대출'
국가 부채 가중시켜 경제위기로 내몰아


부유국들이 저개발국·개발도상국에게 지원하는 기후위기 대응자금이 지난해 처음 1000억달러가 넘었지만, 이 자금의 대부분은 대출금 형태로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2020까지 저개발국에 지원된 국제기후금융의 72%가 대출해준 자금이었다. 현금은 25%에 불과했다. 특히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다자개발은행(MDB)에서 대출해준 자금의 4분의 3은 비양허성 대출이다. 이는 시장금리를 적용한 대출이다. 특별 저금리와 장기상환으로 제공되는 양허성 대출과 반대 개념이다.

문제는 기후금융 대출금 가운데 비양허성 대출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옥스팜(Oxfam)이 올 6월 발표한 기후금융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2020까지 비양허성 대출금은 280억달러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다자개발은행뿐 아니라 부유국들도 대출 방식으로 기후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옥스팜에 따르면 프랑스는 공공기후금융의 92%를 대출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7%가 비양허성 대출이다. 스페인의 경우 기후금융 대출금 가운데 비양허성 대출이 무려 85%에 달한다. 미국도 기후금융 지원금의 3분의 1이 비양허성 대출이다.

옥스팜은 "이 때문에 저개발국이 은행과 부유국에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할 금액이 매년 수백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라며 "더구나 금리까지 상승하고 있어 늘어난 부채상환 비용이 저개발국의 국가예산을 좀먹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비양허성 대출을 기후금융 지원금으로 포장시켜 "실제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며 눈속임을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인 공적 원조금액을 계산할 때는 비양허성 대출이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 지원의 경우 비양허성 대출을 원조액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옥스팜은 "2020년에 모은 830억달러 중 개발도상국에 실제로 현금으로 제공된 금액은 210억~240억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금융 비정부기구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의 다니엘 코(Danielle Koh) 정책분석가는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기후자금을 제공할 때 시장금리로 대출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이러한 대출을 기후금융 공약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직접 보조금이나 기타 양허성 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양허성 대출은 되레 기후위기를 악화키길 수 있다. 저소득 국가의 부채 부담이 가중되면 기후적응에 투입할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저소득 국가의 60%는 이미 부채에 시달리고 있거나 부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국가들의 연평균 부채 상환비용은 기후 적응 비용의 5배에 달한다. 또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부채에 직면한 국가의 수는 2011년 22개국에서 2022년 59개국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저개발국에게 기후자금을 명목으로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파 알 자우시(Safa' Al Jayoussi) 옥스팜 중동지부 기후정의고문은 "개발도상국들은 세계은행과 기타 기관으로부터 많은 대출을 받고 있어, 긴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이들 국가에 상환 압박을 강하게 가하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런 종류의 자금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도상국에서 부채는 지금도 보건·복지 예산 긴축의 주범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미국보다 4배, 독일보다 8배 높은 이자율을 지불하고 있다. 옥스팜은 "부채를 갚기 위해 국가들은 보건이나 교육 예산을 삭감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2010년~2020년까지 이자 지출이 국가 수입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는 29개국에서 55개국으로 증가했다" 밝혔다.

경제전문가들은 "부채는 개발도상국에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니엘 코 분석가는 "전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하면 개발도상국의 부채상환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환율변동이나 감가상각이 발생할 경우 상환할 부채가 증가하고, 이는 경제위기로 이어지게 된다"고 짚었다.

기후금융 연구·지원 단체인 INKA의 선임 컨설턴트 한스 피터 데가드(Hans Peter Dejgaard)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 상업적인 프로젝트라면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며 "그러나 저개발국들은 지나치게 대출에 의존하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가령 세계은행이 2022년초 필리핀에 4억달러의 비양허성 기후자금을 대출해준 적이 있다"며 "미국이 2023년 4월 금리를 6% 미만으로 인상하면서 필리핀 총 상환액은 4억달러에서 6억8600만달러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다니엘 코 분석가는 "기후행동에 필요한 자금을 가장 가난한 국가가 부담해서는 안된다"며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기후 적응과 완화를 위한 자원을 구축할 수 있도록 손실 및 피해기금 등을 통해 양허성 금융과 보조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 자우시 고문은 "기후위기 악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그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며 "우리는 기후변화를 일으킨 금융구조를 개선해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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