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권 국가들에 비해 경제규모와 제도적 역량이 월등함에도 금융권의 기후대응 정책 수준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싱크탱크 포지티브머니가 23일 발간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녹색중앙은행 성적표'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당국 기후정책 성적표는 130점 만점에 '24점'에 불과했다. 이는 말레이시아(43)와 인도네시아(40), 필리핀(40)보다 하위그룹이 속해있다.
이번 보고서는 포지티브머니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통칭하는 '아세안3+'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의 기후대응 정책을 분석해 이들이 국제기후금융 전환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평가한 것이다.
보고서는 '아세안3+'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의 녹색정책 실행 수준을 △연구 및 옹호활동(10) △ 통화정책(50) △ 금융정책(50) △모범적 이행(20) 등 4개 분야로 나눠 평가했다.
4개 분야에서 점수를 매긴 뒤 이를 '선도/중간/후발'로 그룹을 나눴는데, 우리나라는 태국과 함께 중간그룹으로 분류됐다. 태국이 우리나라보다 1점이 많은 25점이었고, 우리나라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미얀마 등 5개국뿐이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가운데 196억달러(약 27조원)를 ESG 자산으로 편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석탄 등 화석연료 기업 투자를 배제하는 조치를 내놓은 점과 중소기업 대상으로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발표한 것도 높은 점수를 줬다. 금융위원회가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를 발표하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보완해 녹색투자 확대에 나서려 했다는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책이행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녹색여신 관리지침은 실제 대출 실적과 연계되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었고, 녹색채권 발행량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한국은행은 2021년 공개시장운영에서 증권 대차 담보 대상증권 등에 녹색채권을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을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못했다. 또 ESG 공시의무화 시기가 2026년 이후로 연기된 것도 정책 실행력 부족 사례로 평가됐다. 이밖에도 금융기관 탄소중립 목표 공개 의무화 등 금융당국의 2050년 탄소중립 경로를 이끌 구속력 있는 핵심정책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그 결과,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해 녹색금융 정책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가대상 13개국 가운데 8위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50점, 일본은 39점으로 선두그룹에 포함됐다. 중국은 녹색대출 비중을 높이는 정량적 규제와 녹색채권 담보 인정 등 강력한 제도 마련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고, 일본은 중앙은행과 정부 간 협력을 통해 녹색금융 촉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고평가 요인이었다.
보고서는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통화운영과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면서도 "실행력이 초기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금융당국은 녹색채권 발행과 금융시장 유통을 확대하고, 녹색대출 실적과 직접 연동되는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보고서 자문을 맡은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한국은행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주요 아시아 중앙은행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역사적으로도 탄소배출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과 금융당국기관이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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