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꿀벌 잡을라"...살충제 허가에 양봉농가들 '한숨'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11-15 09:34:02
  • -
  • +
  • 인쇄
美 캘리포니아주서 금지한 DTN 살충제 도입
독성보다 잔류 위험성 문제...사람에게도 위험
▲인천공항철도 용유차량기지 직통열차에서 빈대 예방을 위해 살균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빈대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늘어나자, 보건당국이 빈대 박멸을 위해 그동안 사용을 제한했던 살충제를 긴급허가하면서 양봉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기후변화 등으로 해마다 꿀벌 집단폐사 피해를 당하고 있는 지경인데 꿀벌에게 치명적인 살충제까지 허가됐기 때문이다.

최근 '빈대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국립환경과학원에 빈대 방제용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디노테퓨란'(DTN) 살충제 8개 제품의 긴급사용 승인을 요청해 지난 10일 사용을 허가받았다. 

이 살충제들은 현재 미국 일부지역과 유럽에서 시판되고 있고, 비교적 인체와 생태 독성이 낮다는 게 질병관리청의 설명이다. 그러나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는 니코틴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곤충의 신경계를 교란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빈대 뿐 아니라 꿀벌에게도 치명적이다. 전세계적으로 꿀벌 집단폐사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DTN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니코틴 합성 살충제가 꿀벌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연구한 자료도 있다. 일본 가나자와대학교 연구결과에 따르면 DTN 살충제를 10배 희석시켜 먹이와 섞어서 벌통에 공급했을 때 꿀벌들은 급성 독성으로 집단폐사했다. 또 100배로 희석시킨 살충제를 먹이에 섞어서 공급했을 때도 만성 독성으로 이어져 결국 군집 붕괴를 초래했다.

보건당국이 긴급사용 허가한 DTN 살충제를 100배 희석하더라도 꿀벌들은 종국에 집단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양봉농가에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남양주시의 한 양봉업자는 "다른 나라에서 시판한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이고, 빈대를 잡는다고 익충인 꿀벌을 죽이는 약을 쓰는 건 너무 성급하고 한쪽만 보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질병관리청은 DTN 살충제를 빈대 방제용으로만 사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빈대가 특정지역에서만 출몰하는 벌레가 아니므로 DTN을 살포하다보면 생태계 누출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빈대는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아니어서 감염병으로 관리되지 않으므로, 출몰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마다 방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 영양제품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DTN 살충제가 누출되면 당장의 독성보다 생태계에 잔류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라며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 남용으로 2006년부터 수십년째 군집 붕괴 현상이 계속되는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라며 정부의 졸속행정을 비판했다.

게다가 질병관리청은 가정용 DTN 살충제도 허가를 검토중이다. 이에 한 시민은 "집안에 살충제를 뿌리게 되면 빈대보다 사람이 살충제를 더 많이 흡입하게 될 것"이라며 "살충제 내성이 생긴 빈대가 나타나면 또 더 강한 살충제를 써야 하는 건가"라며 우려했다.

서울환경연합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야외에서 사용하던 살충제를 인체 피부와 직접 접촉하는 침대와 소파 그리고 방안 구석구석을 뿌리게 되면 사람에게 해가 없을까"라며 "정부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증기나 고온처리·진공청소기 흡입 등 우선 물리적 방제를 통해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현대제철, CDP 선정 기후대응 원자재 부문 우수기업 수상

현대제철이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평가기관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분야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현대

'해킹사고' 부실 대응 SK텔레콤..."ESG 등급 하락 불가피"

SK텔레콤 해킹사태로 고객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유출되면서 SKT의 ESG평가에서 사회(S)부문과 종합부문 등급이 1등급씩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객

KB국민은행, 올해 지역에 '작은 도서관' 9곳 더 늘린다

KB국민은행이 올해까지 134개의 'KB작은도서관'을 조성해 미래세대를 위한 독서 인프라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에는 울

LG유플러스, CDP '탄소경영 아너스 클럽' 수상

LG유플러스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호텔에서 열린 '2024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코리아 어워즈'에서 CDP 기후변화 대응 부문(CDP Climate

11번가 사령탑 교체...신임 대표로 박현수 CBO 선임

SK스퀘어 자회사 11번가가 지난 29일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박현수 11번가 CBO(최고사업책임)를 선임했다고 30일 밝혔다. 안정은 전임 대

경기도 푸드뱅크, 세제와 휴지 등 '생활용품'도 기부받는다

경기도가 푸드뱅크를 통해 식품뿐만 아니라 세제와 휴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기부받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푸드뱅크·마켓은 취약계층에 기부

기후/환경

+

대구 함지산 산불 '재발화'...강풍에 불씨 되살아나

이틀만에 주불이 잡히면서 완전된 것으로 알았던 대구 함지산 산불이 다시 발화하면서 주민들이 다시 대피했다. 건조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불어대는

기후위기로 야외 음악공연도 '위기'...티켓 판매부진 현상

호주에서 기후위기로 야외 뮤직 페스티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나왔다.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RMIT)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발간한 '뮤

"해운탄소세 피하려면 '전기추진선'으로 교체해야"

탄소배출이 많은 선박을 전기추진선으로 대체하고 녹색해운항로를 개척하면 해운부문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운은 전

기후재해 보상은 왜 제한?...손보사 車보험약관 공정위 '심판대'

기후위기로 올여름도 무더위와 수해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 보험약관의 불공정 조항을 개정해

대구 산불 이틀째 진화율 82%...주불 아직도 못잡아

지난 28일 발생해 이틀째 번지고 있는 대구 함지산 산불이 아직도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산림 당국에 따르면 29일 오전 8시 기준 대구시 북구 노곡&mid

트럼프 '해저광물' 개발규제 완화에..."생태계에 치명적" 비판

미국이 해저 광물 개발을 장려하기로 한 결정에 "해양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