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저비용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전세계 AI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고성능 칩없이 챗GPT에 필적하는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딥시크는 지난달 20일 복잡한 추론 문제에 특화한 AI 모델 'R1'을 새로 선보였다. R1은 오픈AI의 o1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복잡한 문제 해결에서 수학·코딩에 이르기까지 메타의 라마 3.1, 오픈AI의 GPT-4o, 앤스로픽의 클로드 소넷 3.5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의 최신 AI 모델을 능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딥시크의 AI 서비스 앱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애플 앱스토어에서 오픈AI의 챗GPT를 제치고 무료 다운로드 앱 1위로 등극했다.
업계가 딥시크 AI에 충격을 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비용 때문이다. 딥시크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V3' 모델 개발 비용은 557만6000달러(약 78억8000만원)다. 이는 미국 AI 기업들이 AI 언어모델 훈련에 들이는 비용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이다. 오픈AI 경쟁사인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AI 모델 하나를 개발하는 데 1억달러(약 1430억원)~10억달러(약 1조4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딥시크 모델 훈련에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 칩이 쓰였다. 엔비디아의 최신 칩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저렴한 칩을 사용했는데도 빅테크의 최신 모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성능을 내고 있는 것이다.
AI 모델 개발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엔비디아를 포함한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었던 AI 선두주자 엔비디아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전날보다 무려 16.97% 폭락하고 지난달 31일에도 5% 넘게 하락했다. 국내서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종목이 급락 중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2년간 A100과 H100 등 자체 개발한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전세계 AI 열풍을 주도해 왔다. 작년 4분기부터는 블랙웰이라는 새로운 AI 칩을 내놓으면서 빅테크를 비롯해 AI 개발업체에 공급해 오고 있다.
H100의 경우 칩 한 개 가격이 3만달러 안팎에 이르며,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이런 칩이 수십만 개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딥시크의 '저렴한' AI 모델 개발 방식이 확산할 경우 엔비디아가 그동안 비싼 AI 칩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딥시크의 성공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여서 실리콘밸리는 물론 미 정부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의 공급 제한이 오히려 중국의 저비용 AI 모델 개발을 자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반도체 칩 무역 제재가 오히려 중국 기술자들이 인터넷에 공개된 오픈소스 도구를 기반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자극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 2022년 8월 중국군이 AI 구현 등에 쓰이는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한편 딥시크 AI 모델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개선할 수 있는 개방형 오픈소스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개발한 최첨단 AI 모델이 폐쇄형인 것과 대조된다. 오픈AI도 초기엔 오픈소스에 기반한 개방형 전략을 추진했지만 이후 폐쇄형으로 전략을 수정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딥시크가 고비용 기조인 현 AI 업계에서 가격인하 경쟁에 신호탄을 쏴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글로벌 AI 개발 생태계의 주도권을 중국 기업에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중국 AI 앱을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텍사스 주정부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최근 주정부가 지급한 기기에서 딥시크와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영문명 레드노트·Rednote),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 자매앱 레몬8 등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미 해군은 "모델의 근원과 사용에 관한 잠재적 보안 및 윤리적 우려"가 있다며 전체 해군 장병들에게 딥시크 AI 이용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 외에서는 대만 디지털부가 공공부문 직원들에게 안보 위험을 이유로 딥시크를 금지했고, 이탈리아 개인정보 보호기관도 개인 정보 사용의 불투명성을 들어 딥시크 사용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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