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용혜인 의원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8-18 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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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사회개혁 수준의 아주 큰 담론"
"K방역처럼 기본소득도 세계적 모델 될 수 있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뉴스;트리와 만나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하는 용혜인 의원


'공정'과 '성장'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을까.

극단적 양극화로 성장이 발목잡히고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지금, 주변적 담론에서 머물던 '기본소득'이 대선 경선 바람을 타고 정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시대를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대안을 내놓는 것이 정치"라고 규정하는 용혜인(31) 기본소득당 의원. 하나의 정책을 당명으로 내걸면 확장성이 없지 않냐는 질문에 "기본소득은 사회개혁 수준의 아주 큰 담론"이라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맞이할 핵심 의제들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없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이것은 공통부(토지, 데이터 등 개인이 혼자만의 노력을 통해 획득한 부라고 할 수 없는 것들), 즉 사회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부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정한 몫으로 배당받을 권리이며, 부의 재분배가 아닌 분배의 정의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임금이 낮거나 근무환경이 열악한 직업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다. 원하는 직업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실질적 자유'가 생긴다. 구직활동 대신 직업교육이나 훈련에 참여할 여건도 마련되면서 인적자본도 발달할 수 있게 된다. 창업 친화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경제성장의 발판이 마련된다.

'공정'과 '성장'의 딜레마에서 실험적인 대안으로 등장한 '기본소득'.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만히 멈춰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 대선공약으로 내걸리면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도 없지 않다.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뉴스트리가 용혜인 의원의 생각을 직접 들어봤다.


◇ 선별이냐 보편이냐···왜 양자택일 프레임?

Q 기본소득을 놓고 '선별이냐, 보편이냐' 논쟁이 심한데?

기본소득은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취약계층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과연 정의롭고 효과적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대안 중 하나다. 개혁 수준의 큰 담론이고 분배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복지제도 시각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면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질문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이낙연 대표가 영화 기생충의 이선균한테 8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냐 그것을 송강호에게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냐 이런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보편지급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새로운 분배시스템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면서 대응해야 양자택일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Q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과 유승민 전 의원의 '공정소득'···기본소득과 어떤 차이? 

안심소득과 공정소득은 기준선을 정해놓고 그 아래 있는 사람에게 기준선과의 거리에 비례해서 차등 지원하는 제도다. 반면 기본소득은 기준선없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즉 기본소득은 소득수준으로 선별하거나 차등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가구 단위가 아닌 개개인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안심소득과 공정소득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수급자들의 처지를 더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정치적으로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내년도 1인가구 생계급여는 58만3444원이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이 제시한 공정소득 모델은 1인당 최대 5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받는 생계급여보다 적다. 기본소득은 재원이 많이 든다고 비판하는데 공정소득도 마찬가지다. 큰 재원을 쏟아부으면서도 국민 대부분이 혜택을 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되면 정치적 동의를 받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Q 기본소득 재원마련 위해 탄소세 부과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탄소세는 기본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탈탄소 전환에 실패한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해외에서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 탄소세를 내느냐 해외에 탄소국경세를 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또 탄소세는 상품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그렇게까지 반발할 이유는 없다. 다만 세금인상 자체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한번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본소득과 연동된 상태로 세금이 오르면 앞으로 증세가 더 쉽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 탄소세'는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가는 역진적 성격을 해소하기 위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접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탄소세가 상품가격에 반영되면서 물가상승을 초래했던 프랑스와 호주는 강력한 소비자 저항에 부딪혔다. 반면 탄소세를 배당과 연동시킨 스위스는 조세저항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탄소세는 기본소득과 연동되어야 한다는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 성공한 국가가 없다?···"한국이 길이 될 수 있어"


Q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기존 복지제도부터 탄탄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후관계를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이나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들은 오히려 재정여력이 없다. 한국은 조세부담율이 굉장히 낮고 복지규모도 작기 때문에 조세부담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으로만 올려도 상당한 규모의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다.

물론 복지제도를 확충하고 후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의 전제는 '증세'다. 증세없이 복지제도를 확충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기본소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증세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야말로 기존의 복지제도를 확충하면서 증세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Q 기본소득 우리나라가 먼저 도입한다면?

기본소득 얘기하면 다들 아직 해외에서도 도입한 사례가 없는데 한국에서 말이 되느냐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의 위기, 경제위기 두 가지 측면에서 가장 우수하게 대처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다른 나라의 선례를 따라 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점점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한국이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간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K-방역'이 전세계의 좋은 사례가 됐던 것처럼 기본소득 정책도 전세계의 새로운 경제모델의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Q 데이터세와 로봇세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

아직 전세계적으로 연구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합의된 안이나 방향이 없는 것으로 안다. 로봇세의 경우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검토해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세의 경우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과세표준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를 두고 굉장히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소득 재원으로서 필요한 것인지, 개인들의 저작물을 활용해서 돈을 벌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에게 단순히 세금을 부과할 목적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한 금액이 별로 많지 않아도 데이터세 도입취지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 노동당은 국내총생산(GDP)의 1%부터 시작해서 데이터 배당을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OECD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도 구체적인 과세모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Q 기본소득당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과제는?

기본소득당의 평균연령은 24세다. 우리 당원들이 청년정치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코로나19 위기, 또 기후위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되는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대안을 내놓으려면 정치에 더 많이 진출해서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정치에 기대 머릿수만 채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정치적으로 구성해내야 한다. 과거 산업화세대나 386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기본소득당은 바로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는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본소득'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길 바란다. 왜 일 안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느냐는 반응도 없지 않지만, 안심소득이나 공정소득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크게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선은 정책경쟁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도 공약에 담긴 후보들의 정책을 보고 판단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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