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우리는 '오징어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1-10-18 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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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드롬...우리 삶의 이야기에 전세계 공감
현실은 소수만 살아남는 '극한 생존게임'의 연속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화제다. 넷플릭스 통계를 집계하는 83개국에서 모두 시청순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만든 드라마 콘텐츠가 세계인의 열광을 받고 있으니 기쁜 일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안과 밖을 살펴보면 마냥 우쭐해 할 일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 유행은 우리 사회의 병적 징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신드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극한 경쟁의 생존게임

'오징어게임'의 등장인물들은 한국인이다. 오징어게임, 달고나, 줄다리기 등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골목길 놀이들을 배치해 흥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현실은 지옥이다. 지옥보다 더한 생지옥이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살아남기 때문이고, 오직 한 사람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즉 드라마가 재현하고 있는 무대는 헬조선이라는 우리 삶의 무한경쟁의 현실이다. 이 현장에서는 절대 다수의 희생과 죽음 위에 소수가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한다.

오랜세월 지주와 탐관오리의 착취로 생존의 벼랑에 내몰렸던 전근대 사회나 식민지 수탈로 가난과 설움을 겪었던 일제시대에는 모두가 함께 고생했다. 여럿이 희생되기도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서로 끈끈이 연결돼 공생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자본주의적 경쟁의 극한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극소수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게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지옥은 얼굴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아니 어쩔 수 없이 몸을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바이벌의 생지옥은 현실과 오락의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버이벌 게임이 유행하는 데서 쉬 발견할 수 있다. 미스터 트롯, 트로트퀸, 나가수, 펜텀싱어, 댄스 배틀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현장에서 이뤄지는 각종 경연대회나 디베이트 토론 역시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오징어게임'이 담아내는 서사는 극한 생존게임에 내몰린 우리 삶의 현장 이야기이다.

◇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 내던져진 다중

이 드라마는 전 세계인의 마음에 공명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그들을 사로잡게 하는 어떤 공통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절대 다수의 지구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과 지역적 문화를 넘어 대다수 다중(the multitude)에게 오징어 게임은 먼 나라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스토리, 자기 삶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되자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 그 결과 무한경쟁의 전선이 입체적으로 그어졌다. 이전에는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이 자본과 노동 사이, 지주와 농민 사이, 부자와 부채인간 사이에서 선명하게 그어졌다. 이제는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살벌한 경쟁의 전쟁이 전개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오징어게임'은 456억원이라는 거금이 한명의 승자에게 주어진다. 확률은 456분의 1이다. 매우 낮은 확률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생존 확률은 현실에 비해 매우 후하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될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게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 게임에 뛰어든다. 그렇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안이다. 이 불안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실존적 불안이나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생존의 불안, 내 피부로 직접 체감하고 매일매일 모든 세포를 떨게 만드는 불안 말이다. 그것이 현실의 오징어게임을 가동하게 만든다. 이 불안 때문에 오징어게임에 뛰어들고, 오징어게임을 숙명적으로 선택한다. 우리는 이 게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


◇ 게임 해체하기와 룰 바꾸기

'오징어게임'은 픽션이지만 논픽션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리얼하다.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잔혹극이다. 마냥 웃고 즐기고 지나칠 드라마가 아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는 순간 시청자들는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적 심리 지배의 프로그램에 깊이 포획된다. 즉 '오징어게임'을 즐기면서 현실의 오징어게임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우리에게 풍자와 폭로로 웃음을 던져주면서 적잖은 심리적 해소를 안겨다 준다. 하지만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냉철한 현실인식과 극복에의 의지를 안겨주기보다는 이를 사소한 오락거리로 여기게 된다.

하나의 드라마 콘텐츠로서 '오징어게임'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깊이 해부하면 이는 로마 제국이 제작한 검투사 게임과 같은 계열의 오락거리다. 칼과 창을 들고 피를 튀기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검투사 대회를 통해 시민들과 식민지 백성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저항 심리를 마비시키는 오락거리와 같은 계열의 프로그램이다. 잔혹한 장면을 보고서 치를 떨어야 하는 순간 무심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기획은 현실인식과 공감 심리를 왜곡하는 심리적 조작의 효과를 자아낸다. 아니나 다를까 서구의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온갖 배틀과 헝거게임과 같은 서버이벌 게임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사람들이 승자독식의 규칙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오징어게임을 해체하고 모두가 상생하는 새로운 룰은 만들 수는 없을까? 모든 게임 참가자들이 각각 1억씩은 품에 안고 웃으며 환호를 터뜨리는 반전과 같은 서사가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오징어게임'은 풍자적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풍자는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안겨다 주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의 참상을 희화화하고 매섭게 폭로한다. 하지만 이 비극적 현실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탈주선을 제시하고 않는다. 안타깝게도 오징어게임은 변혁의 에너지나 탈구하는 힘이 없다. '오징어게임'의 후속편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런 것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오징어게임' 콘텐츠 역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콘텐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오징어게임'조차 오징어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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