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나의 눈길은 따뜻한가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8-01 13: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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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타자와의 관계와 삶을 좌우하는 요소
평등주의적 시선, 상호적인 눈빛을 나누어야

최근 초등학교 여교사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한 교장이 징역 2년에 처해졌다. 그는 몰카뿐만 아니라 휴대폰으로 21차례에 걸쳐 동료 교사들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다보니, 많은 여성들은 빌딩이나 공공시설 공용화장실 들어가면 몰카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또 벽에 난 구멍을 막기 위해 스티커를 갖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눈이 몰카뿐이겠는가.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접하며 생활한다. 그 시선과 눈빛들은 어떠한가? 충혈된 눈, 무관심한 눈길, 몸을 훑어보는 성적 응시, 무시하는 눈, 쏘아보는 눈, 하대하거나 경멸하는 눈빛, 의심하고 감시하는 시선, 공격적인 눈길, 배제하거나 혹은 압박하는 눈빛 등등. 이런 눈과 마주치면 난처하고 어색하다. 두렵고 피곤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불편해 하고 피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눈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다. 우리는 무심하고 거친 시선들에 지쳤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줄 모른다. 시선 과잉만이 아니라 시선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

◇ 우리는 시선의 투쟁 가운데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시선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선을 나타내는 것은 두 눈의 나를 향한 집중이다. 그러나 시선은 나뭇가지들이 스치는 경우,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가 뚝 그칠 때, 덧창이 빠끔히 열릴 때, 커튼이 가볍게 움직일 때, 마찬가지로 주어질 것이다. 기습작전 때, 수풀 속을 기어서 전진하는 병사들이 피해야 할 시선은, 두 개의 눈이 아니라, 언덕 위에, 하늘과 맞닿아 부각되는 한 채의 농가 전체이다."

누군가의 시선은 나를 살피고 대상화하고 평가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시선은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작용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선은 두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주체의 의식의 흐름이다. 따라서 시선은 하나의 힘이다. 그 시선-주체가 바라보는 것을 대상으로 사로잡아버리기 때문이다. 정반대의 힘도 작용한다. 나 역시 타인을 바라보면서 그를 대상화하고 나의 힘을 계량한다. 사르트르 철학에 따르면 시선은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선을 통해 그 무엇을 바라보면서 그 사물·사람을 객체화한다. 사르트르는 결국 나와 타자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대방을 사로잡으려는 '시선의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결국 불일치와 갈등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서구 지식인의 견해이지만 우리의 관계가 엇갈리는 이유를 근원적으로 해부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선을 주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고, 힘의 다툼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으며 온갖 감정의 불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 우리는 타자의 시선을 갈망한다

우리는 타자의 시선을 갈망한다. 다른 이들이 나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꾸민다. 개성있는 패션, 외모나 몸짓, 특정한 행동이나 글과 이미지 공개는 시선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가벼운 소셜서비스(SNS) 활동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작업과 활동들 대부분이 이를 겨냥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조율한다.

많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졌듯이 우리의 자아와 만족감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좌우된다. 라캉(Jacques Lacan)은 우리의 자아상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함으로써 형성됐다고 말한다. 이를 유아가 거울단계를 거치며 자아를 인식하게 되는 상상계라고 이름 붙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단숨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여하한 나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타인의 시선을 기대하고 갈망한다. 그래서 타인의 주목과 관심이 풍성할 때는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타인의 무관심과 냉담한 시선을 접하면 자기 연민에 빠지고 자신을 경멸하기도 한다.

다른 이의 시선을 원하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이므로 긍정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나만 인정받기를 바라는 좁은 마음을 벗어나 상호 인정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소중하다.

독일의 현대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투쟁이 현대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회복시키는 필요하고 정당한 투쟁이라고 말한다. 특히 개인적인 권리 관계나 가치 공동체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개인의 권리나 가치의 범위를 확장하여 건강한 '인정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 공존과 행복에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이를 위해 인정 분배를 불공정하게 하는 타당하지 않은 사회적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각 개인이 사회적 인정에 대한 과도한 갈망과 인정에 대한 굶주림이라는 미숙한 병리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 서로를 바라보며 인정해주는 공동체가 좋은 사회다. 내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다른 이를 인정해주는 태도가 소중하다. 빛과 조명이 나에게만 비추기 원하기보다 서로를 비춰주는 시선의 교환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게 공존할 것이다.

모로코 출신의 한 육상선수가 있었다. 열다섯살 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국내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을 했다. 세계대회에 출전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거절 이유는 합리적이었다. "세계 기록과 많은 차이가 난다. 입상하지 못할 바에는 대회 출전은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기록은 향상되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 때 체육학을 전공한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소질이 있어요. 최고의 선수가 될 거예요."

이 여성의 이름은 산드라(Sandra Inoa), 육상선수의 이름은 할리드 하루치(Khalid Khannouchi)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의 아내는 코치 겸 매니저를 자청했다. 기록이 점점 향상됐다. 1999년 하루치는 시카고 마라톤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기록은 2시간5분42초, 당시 마의 2시간6분대를 돌파해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경이로운 기록들은 마라톤계의 신화가 됐다. 그의 재기와 자기실현의 스토리의 이면에
는 한 여성의 섬세한 시선과 적극적인 인정이 있었다.

◇ 서로를 응시하는 눈

타자의 시선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려 감정이 마구 요동치는 허약함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누가 나를 인정해주기 전에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마음을 가져야 할지 않을까? 사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시선의 투쟁은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해부이다. 우리 일상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하나의 철학적 존재론을 설파한 것이다. 보통 우리 몸과 의식이 마주하는 시선들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경험된다. 호의적이고 밝은 눈빛을 만나면 우리는 마음이 열린다. 나의 눈길에 따스함을 담을 때, 맑고 투명하게 다른 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고 편해진다.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당당함과 넉넉함을 가질 일이다. 시선을 두려워할 이유도 피할 필요도 없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자유,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 에포케의 태도,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인간미, 따스하게 서로의 시선이 이어지는 것을 즐거워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시선을 바꿀 때 세상이 달라진다. 시선이 만날 때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열린다. 평등주의적 시선, 따스한 눈빛의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한양대 K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한 순간에 대해. 그분이 유학시절 프랑스 파리의 어느 공원을 산책했다. 잔디에 누워 오래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가만히 떴다. 그때 한 노인 부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부부는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황홀감이 몰려왔다. 고요히 눈길로 나누는 인사였다. 완전한 긍정과 수용, 동양에서 온 한 젊은이에 대한 환대와 축복이 담긴 눈빛이었다.

나의 시선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열려있으며 어느 정도 따스할까? 서로의 눈을 응시할 수 있다면 분명 그 사이는 아름다운 관계일 것이다. 아무런 긴장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시선과 따스한 미소를 담은 눈빛들이 가득한 사회는 아마 우리의 에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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