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장례식'…사라지는 자연을 애도하다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10-12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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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따른 '생태적 슬픔' 표현
'자연의 죽음' 기리는 움직임 확산
▲2019년 설치된 아이슬란드 오크외쿨(Okjökull) 빙하 기념비. 아이슬란드 서부에 위치한 작은 만년설은 지구온난화로 2014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진=위키피디아)

기후위기로 인한 빙하 및 만년설의 붕괴를 죽음으로 정의하고 이를 애도하며 장례를 치르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이슬란드 오크외쿨(Okjökull) 빙하의 장례식 이후 2019년 스위스 피졸(Pizol) 빙하, 2020년 미국 오리건주 클라크(Clark) 빙하, 2021년 멕시코 아욜로코(Ayoloco) 빙하, 2021년 스위스 바소디노(Basodino) 빙하 등 전세계에서 일명 '빙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의식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잃는 슬픔을 다루었듯이, 의식이나 기념물 등을 통해 기후위기에 따른 '생태적 슬픔'을 표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8월 시메네 하우(Cymene Howe) 미국 라이스대학 기후학자는 동료 및 지역전문가들과 협력해 아이슬란드 최초의 빙하 오크외쿨의 장례식을 치렀다. 오크외쿨은 아이슬란드 서부에 있던 작은 만년설로 2014년 빙하학자 오두르 시구르드손(Oddur Sigurðsson)에 의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지구온난화로 죽어가는 빙하는 이뿐만이 아니다. 불과 지난달 스위스자연과학전문아카데미(SCNAT)는 현재 스위스 빙하의 녹는 속도가 100년 전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오크외쿨 장례당일 100여 명이 험난한 산행을 거쳐 장례식에 참석한 가운데 낭독 및 연설, 묵념, 추모패 설치가 진행됐다. 하우 교수는 그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강한 집단적 확신과 연대감을 지녔다"고 전했다.

장례식에 사용된 청동명판은 이후 빙하를 기리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하우 교수와 함께 오크외쿨 장례식에 참여한 도미닉 보이어(Dominic Boyer) 라이스대학 인문과학부 에너지환경연구센터 소장은 기존의 기념물이 대개 전쟁이나 특별한 위업으로 사망한 용감하고 용맹한 사람들을 기린 것과 달리 이 명판은 인간이 망친 것을 기린다고 강조했다. 해당 명판에는 "이 기념비는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해냈는지는 당신만이 알고있다(This monument is to acknowledge that we know what is happening and what needs to be done. Only you know if we did it.)"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하우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죽음, 손실, 소멸이 대중에게 깊숙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며 상실과정을 감정적으로 겪을 구조화된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빙하를 중심으로 자연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생태적 슬픔은 대개 죄책감을 동반한다. 애슐리 커솔로(Ashlee Cunsolo) 캐나다 메모리얼대학 북극·아북극연구학교 설립학장은 "사람들은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슬픔에 연루돼있다"며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원을 소비하는 사회자본주의적이고 착취적이며 파괴적인 식민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 및 죽음의 개념을 잘 다루지 않는 문화권에서 생태적 슬픔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예술가와 건축가를 중심으로 자연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박물관 및 극장, 생물다양성센터를 건립해 멸종위기에 처한 모든 종을 기억하는 '에덴포틀랜드프로젝트(Eden Portland project)'가 진행되고 있다. 세바스찬 브룩(Sebastian Brooke) 프로젝트 책임자는 "기념의 원칙을 동물까지 확대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프로젝트 취지를 전했다. 그는 지하터널에 일련의 석조 조각을 세워 방문객들이 "지구상 생명체의 멸종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나계 영국인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 경은 300m 높이의 나선형 석조구조물 '생물다양성표지(biodiversity beacon)'를 설계했다. 이 구조물에는 17세기 도도새 멸종 이후 멸종된 동물 860종이 새겨질 예정이다. 그는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져서 우리가 잘못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며 "추모는 이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베트남참전용사기념관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디자이너이자 조각가 마야 린(Maya Lin)은 환경 추모시리즈 'What is Missing?'을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과학아카데미에 거대한 확성기 모양의 원뿔조형물을 설치해 사람들이 지구에 귀를 기울이고 잃어버린 야생동물에 대해 반성하도록 격려했으며, 타임즈스퀘어의 광고 및 허드슨강박물관의 기억지도도 제작했다. 2021년에는 40피트 높이의 티오이데스편백 49그루로 유령숲(Ghost Forest)을 조성해 기후위기로 황폐해진 미국 동부해안의 삼림지대를 기념했다.

재닛 루이스(Janet Lewis) 기후정신의학 연합(Climate Psychiatry Alliance) 창립멤버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삶의 재투자와 일상적 삶의 리듬으로 위안을 얻지만 자연을 잃은 슬픔은 앞으로 다가올 더 많은 상실의 전조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모든 종류의 의식과 기념이 이러한 생태적 슬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이어 소장은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생태적 손실과 그 의미를 기념하는 지역사회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라며 "이러한 애도는 단순히 과거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정치방향을 제시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나에 제이콥슨(Danae Jacobson) 미국 콜비대학 환경사학자는 앞으로 자연을 기리는 기념비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역사 및 환경역사의 맥락에서 인류세(Anthropocene;인류의 환경파괴 및 지구온난화로 지구 환경체계가 급격히 변화 중인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자 기념비와 의식을 사용한 많은 선례가 있다"며 "기념비는 대개 과거의 상징물이나 때로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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