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트렁크 2개가 전재산인 대통령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1-20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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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살기 바라면서 대부분 주저앉아
멈춤과 성찰,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지혜


지난해 4월, 압둘 칼람(Abdul Kalam) 인도의 전 대통령이 타계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과학기술 투자나 핵개발, 인도 경제성장 등 그의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보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점은 청렴함이었다. 

그는 대통령 궁으로 들어갈 때 달랑 트렁크 가방 2개만 손에 들고 갔다. 퇴임하고 대통령 궁을 나올 때에도 짐은 트렁크 2개뿐이었다. 재임할 때 그는 청렴함과 강직함 때문에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은퇴 후에도 검소하게 살며 전 세계를 무대로 강연과 민간외교를 했다. 양 손에 든 가방 2개, 그것은 마치 그의 전 재산처럼 느껴졌다.

지금 우리나라 공직자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압둘의 '가방 2개'를 깊이 사유했다. 되새김질 했다. 이를 두고 정치쇼 혹은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종교적 배경을 추적하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았다. 그 '옷 가방 2개'는 압둘 칼람의 삶을 읽는 소중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다르게 살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고, 가짜 삶이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싶다. 가면을 벗고 싶다. 삶을 온전히 느끼고 향유하고 싶다. 하지만 대개 우리를 짓누르는 중력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다른 방식으로 살려면 무리의 흐름, 통속적 유행, 다수가 지배하는 질서와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삶을 바꾸는 계기들

사람은 어떤 경우에 인식이 전환될까. 먼저 '사건의 경험'이다.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충격적인 사고를 겪거나,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추방당하거나 벼랑에서 추락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질병이나 파산, 사회적 추방, 고립, 상실, 이별, 참혹한 현장목격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는 모리스 블랑쇼가 말하는 '바깥의 경험'이나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겪을 때 무너지지 않고 삶의 의미와 힘을 찾을 때 비로소 이 사건은 의미가 생긴다. 삶의 전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고통이나 충격적 사건, 예기치 않는 개인적 재난이 상처와 절망이나 자기 폐쇄와 같은 부정적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건은 우리를 뒤흔들고 삶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런 예는 적지 않다. 사건이 삶의 이정표가 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삶이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삶과 행동 그리고 기억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다. 좋은 책을 읽고 자신의 사유와 내면을 성찰할 수도 있다. 명상과 기도 및 관상과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살피는 이들도 있다.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공부하면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존재에 대해 깊은 물음을 던진다. 그들은 이렇게 결심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

다른 사람들과 만남을 계기로 삶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 어떤 노동을 하며 사는가, 사람들과 만나 무슨 대화를 하느냐, 어떤 관계에 놓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공부를 했는데도 판사와 변호사 그리고 검사는 스타일과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어떤 지위 혹은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행동패턴과 가치 판단이 크게 달라진다. '나'는 동떨어져 있는 독립적 주체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존재다. '나'는 그 누군가와 연결돼 있는 배치 관계에 놓인 하나의 항이다. 이 관계가 나를 끌고 간다. 특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다수적 질서를 벗어난 사람들일수록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 긴밀한 사람들을 통해 의미있는 삶의 방향을 공유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와 나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나는 바둑을 좋아한다. 가끔 바둑 TV를 시청하곤 한다. 프로 기사들은 바둑을 둔 후에 함께 복기(復棋)를 하는 것이 관례다. 그들은 게임의 흐름을 뒤바꾼 지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결정적인 패착을 발견해 낸다. 이런 의견 교환을 통해 더 나은 수나 최선의 수를 찾는다. 시합에 패배한 기사의 경우 식사도 거르고 처음부터 복기해 판 전체를 되짚어본다고 한다. 놀랍게도 승리한 기사 역시 복기를 한다. 복기만이 실력을 향상시키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복기의 습관과 복기 능력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시험을 치른 후 무엇을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확인한다. 오답 노트까지 만들며 체크한다. 반대로 공부 못하는 아이는 시험치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리려 한다. 성찰이란 삶의 복기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오답 노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 스스로 '스톱'이라고 말하기

다르게 사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다. 주류적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좋지 않은 변화요 일탈이자 실패로 보일 수도 있다. 성취나 성공의 도식으로 보자면, 다르게 사는 사람은 어리석어 보인다. 변화가 항상 해피 앤딩으로 끝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자신의 삶의 가치와 흐름 그리고 취향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에게는 남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매순간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충만함. '다름'이 아니라 '삶'이 더 중요하다.

지난주에 한 연구원에서 일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대화했다. 그는 지성적이고 유쾌하고 명랑한 분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PC를 기증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지난 한해만 그가 기부한 PC는 1400만원 어치에 달했다. 이 기부를 하기 위해 그는 PC 조립과 설치 기술을 익혔다. 먼 거리도 마다않고 달려가 PC를 설치해주기도 했다. 그는 이 일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고요히 연구작업만 해도 충분할 텐데. 그분에게 대놓고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감지했다. 그분은 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나아가는 곳, 나는 거기서 멈추어 선다.'

나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이 말을 좋아한다. 스톱(Stop)!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이는 종종 멈추어 선다. 그 자리에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탐색하기, 자신의 지도를 복기하기, 다른 길 찾기, 새로운 지도 만들기가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옆 자리를 둘러보며 미소 짓는다. 자신과 동행하는 벗들의 얼굴을 환히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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