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쉬의 모든 활동은 브랜드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이다."
러쉬코리아의 박원정 윤리이사(에틱스 디렉터)의 말이다. 에틱스 디렉터는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에서 설정한 윤리적 책임기준을 각국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박원정 이사는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윤리강령을 비즈니스에 융통성있게 녹여내야 하는 일에 대해 "항상 어렵고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대체실험, 공정성, DEI(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등에 대한 개념을 항상 공부하고 설명해야 하는 데다, 광고와 홍보대사를 일체 활용하지 않고 브랜드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러쉬가 했던 윤리적 실천들을 많은 기업이 따라한데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박원정 이사에게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러쉬의 브랜드 행동주의와 윤리경영을 직접 들어봤다.
◇ 포장재없는 제품에서 공병 수거까지
러쉬는 ESG 경영이 세계적 화두가 되기전에 윤리적 조달, 수작업 제조, 지역과의 연대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역농산물로 제품을 만들고, 원재료가 노동착취와 환경파괴가 자행되면서 생산된 것은 아닌지 날선 기준으로 검증한다. 이렇게 구입한 원재료는 모두 수작업으로 가공한다. 때문에 러쉬의 제조공장은 '키친(Kitchen)', 직원들은 '쉐프'라고 불린다. 앞치마가 유니폼이다.
제품을 포장하지 않고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러쉬가 시초다. 사실 러쉬가 포장재없는 '네이키드 제품'을 판매한데는 남모를 속사정이 있었다. 당시 자금이 부족했던 러쉬는 포장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네이키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러쉬를 대표하는 제품군이 된 것이다.
자원절약이라는 윤리적 가치와도 찰떡처럼 맞아떨어졌다. 고체 샴푸바는 플라스틱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동시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 박 이사는 "네이키드 제품은 현재까지 약 6000만개가 판매됐는데 이는 1억8000만개의 플라스틱 용기를 줄인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러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병을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순환경제'로 확대했다. 박 이사는 "한국에서는 폴리프로필렌(PP) 소재 공병을 연간 20만개 이상 회수해 자체 공장에서 재활용한다"면서 "공병을 마스크팩 등으로 교환할 수 있는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소비자 호응도 높다"고 했다. 다만 페트(PET), 유리병 등은 국내 재활용 기반이 부족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박 이사는 "한국에 해양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이 없다보니 공장 유치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넷제로 실현을 위해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러쉬는 원료 조달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자체 측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운 우선 운송, 탄소 인세팅(Carbon Insetting) 등도 실천 중이다. 브라질 통카빈이나 페루의 이차생장 농법, 인도네시아 혼합농업, 포르투갈의 코르크 팟 등은 탄소흡수원이자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코르크 팟은 하나 제작할 때마다 1.2kg의 탄소를 흡수해 '탄소 양성(Carbon Positive) 제품'으로 불린다.

◇ 광고 대신 캠페인···'말 대신 행동'
러쉬는 제품 광고를 하지 않는다. 광고비가 제품가격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신 인플루언서와 캠페인 중심으로 브랜드를 알리는데 주력한다. 제품홍보 역시 샘플이나 할인없이 체험 중심으로 이뤄진다.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써볼 수 있고, 심지어 머리까지 감을 수 있다. 박 이사는 "매장에서 제품을 설명할 때 '잔향이 좋다'와 같은 단순 서술식 설명은 가급적 지양한다"며 "제품 하나를 소개할 때도 스토리텔링과 고객의 경험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러쉬의 이러한 철학은 '냄새나는 콘서트'에서도 드러난다. 광고 대체수단으로 시작된 이 캠페인은 러쉬코리아가 설립 11년차에 시작돼 큰 호응을 끌어냈다.
박 이사는 "러쉬는 캠페인을 단순 홍보가 아닌 브랜드의 언어이자 철학이라고 본다"면서 "동물실험 반대, 대체실험 법제화, 난민 인권, 기후정의, 자원순환 등 근본적인 사회문제 해결에 힘쓰는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체실험 활성화 캠페인은 브랜드 최대 캠페인 중 하나로, 동물실험 규제 법제화에도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기후·탄소·멸종위기·재야생화(Rewilding) 등 글로벌 과제에 주력하고 있으며, ESG 보고서보다 실천에 집중하고 있다.
끝으로 박 이사는 "러쉬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념을 실천해온 브랜드"라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푸르게 만들기 위한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상을 더 러쉬스럽게'라는 러쉬의 비전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러쉬는 영국 비영리단체 에티컬 컨슈머와 함께 '러쉬 스프링 프라이즈'를 운영하며 도시재생에도 힘쓰고 있다. 러쉬 스프링 프라이즈는 훼손된 환경을 복원하는 개인·단체를 후원하는 글로벌 시상식으로, 올해는 국내 최초로 강원도 영월의 청년마을 '밭멍' 팀이 수상자로 선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이사는 "한국처럼 생계농이 기본이고 인구소멸이 심각한 지역에서, 청년이 환경과 지역을 동시에 살린다는 점이 러쉬의 철학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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